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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Aug 05. 2022

3N살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온다.  

사춘기 아니고 N춘기

N춘기는 쉽지않다.

돌이켜 보면 그랬다. 남들보다 크게 잘나지는 않아도 크게 못하지도 않는 사람으로 사는 .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이었다. 너무 쫓기며 살기도 싫고, 그렇다고 뒤쳐지기도 싫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만든 기준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럭저럭 그 가이드라인 안에서 살아왔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알만한 기업에 입사했다. 가능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일을 하다보니 평가도 무난했고, 나름 만족스러운 연봉을 받았다. 그 시기에 연애도 하고 있었으니 그래, 이러다 결혼이나 하면 되겠네. 하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안정적인 줄 알았던 연애가 끝이 났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아슬아슬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뿐.


끝은 담백했다. 이별을 고하는 자리에서 ‘서로 선물했던 건 그냥 가지는 것 괜찮지?’라고 회의 마무리 멘트 비슷한 것을 내뱉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직업병인가?) 자연스럽게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후로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삶에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달라진 삶에 적응하느라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20년의 새해가 밝았고, 나는 한국 나이로 3N살이 되었다.


갑자기 빠르게 흐르기 시작한 시간에 당황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이야!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빨리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소개팅을 하고, 누군가를 찾고, 이다음 단계(그러니까 결혼)를 나아가라고 빌어먹을 세상이 이야기하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3N살이라면 나름 정리된 재테크 포트폴리오 정도는 들고 있어야 했다. 최소한 나처럼 팔랑팔랑 맛집을 돌아다니며, 저축 외에 재테크라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기업의 주식을 가끔 생각나면 사놓는 3N 살은 나뿐인 것 같았다. 외면하던 현실이 다가와 내 등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참 웃긴 일이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대체로 제 멋대로 사는 걸 선택한 지인의 비중이 높았던 탓에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부모님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시점에 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신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홀로 끝없이 고뇌했다. 조미료처럼 뿌려지는 SNS와 미디어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 주기적인 탄식이 입안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부단히 노력해왔던 것도,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 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상관없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트랙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만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런 심난한 나의 마음 상태와 별개로 코로나는 점점 더 거세졌다. 각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고군분투했고,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큰 변화의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회사의 전면 재택근무 전환이었다. 회사의 지정석은 사라지고, 원하는 사람만 출근할 수 있는 환경이 빠르게 만들어졌다.


하이브리드 형태로 시작된 재택근무는 어느새 타지에서의 근무까지 허용했다. 이 제도가 시작될 시점에는 회사 지원으로 타지 재택근무 비용을 지원하는 파일럿 프로그램까지 운영했다. 많은 사원들이 두 손 들고 회사의 결정을 환영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제도가 공식화되기 전에 이미 타지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SNS에 심심찮게 ‘워케이션'이라는 단어가 거론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한 번은 제주의 코워킹 스페이스 겸 숙소에서. 두 번째는 제주에 사는 지인 부부의 집이었다.

왜 회사에서 공식 허가를 하기 전에 먼저 떠나버렸느냐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물론 1차 조직장과 협의하고 떠났다.)


스스로 건강한 몸과 정신! 을 외치고 다니고, 자타공인 건강한 멘탈의 소유자로 불리던 내가 가라앉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N살 미혼이며 예정된 결혼 계획 없고 집도 없음.'이라는 타이틀을 견딜 힘이 없었다.

그야말로 나가떨어졌다.  그래, 나가떨어져 바닥으로 굴러버렸다.


내가 나를 불만족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정말이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나는 내가 불만족스러웠고, 불안했다. 그제야 안 것이다. 나는 사회에서 문제없다고 평가받는 나로 사는 것에 안심했다는 것을.


이 틀 안에 있는 한 나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고, 누군가한테 지적받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를 보호해주던 갑옷이 바스러지기 시작했고, 나는 날 것의 상태로 다시 세상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나는  생각하기보다 움직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선 몸을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에 머리를 쓴다.


몸에 잔뜩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났다. 머리를 잡고 뜯으며 고뇌하던 짧은 시간을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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