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심난한 J를 막을 수 없다.
J의 기록
그래, 그럼 무엇을 해볼 것인가?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은 이직이었다. 멈춰 선 기분이 불안하니 이동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7년 가까이 일했던 작업물을 주섬 주섬 긁어모아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지인들의 친절하지만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으며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여기저기 인터뷰를 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많은 회사에 지원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인이 일하는 회사에 지원서를 넣어보고, 링크드인에 방치했던 HR의 메시지에 답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지금 회사를 떠날 마음은 크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지?라는 생각이었다.
면접의 과정은 나에게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려주었다. 사람들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점에 동의하기도 하고, 내가 그다지 가치를 두고 있지 않던 점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머리를 싸매도 보이지 않던 나의 장점과 단점이 점점 명확해졌다.
하루하루를 가쁘게 살아가다 보면 손에 쥐고 있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다. 가끔은 멈춰 서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숨을 고르는 것이 필요하다던 수많은 영상과 책들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쓸모가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했다. 깊은 안도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의 한계인가 싶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벗어나는 게 무서운 시점에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받는 인정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위안이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팀에 그대로 머물기로 결정했지만 또 다른 움직임을 위한 힘을 얻어낸 의미 있는 시도였다.
두 번째 시도는 거주지의 변화였다. 다른 곳에서 일해보기로 한 것이다. 인생을 통틀어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거의 전무했기에 환경을 바꾸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워케이션의 첫 시작이었다.
인생에 대한 막연하디 막연한 고민에 사로잡혔던 밤, 충동적으로 숙소를 예약했다. 비행기표까지 이어서 구매하고 나니, 나는 무조건 ‘가야만 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저질렀으니 멈추는 것은 내 사전에 없다!라고 중얼거리며 그날 꽤 늦은 시간까지 노션을 켜놓고 씨름했던 것 같다. 그곳에 가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돼서 올 것 같은 순진한 기대감에 불타올라서 말이다.
가서 어떻게 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리했다. 워케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협업하는 사람들이 집과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예를 들면 빠른 와이파이, 일하기에 충분한 책상, 듀얼 모니터, 소음 없이 회의가 가능한 환경 정도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은 제한적이었고(로또 되고 싶다.) 위에 나열한 조건을 포함하는 숙소는 혼자 지불하기에 부담이 되는 가격이었다. 결국 백 프로 만족스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은 포기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숙소를 따로 예약하고, 근무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용했다.
그렇게 떠난 첫 번째 워케이션. 제주의 바다가 훤히 보이는 업무 공간은 좋았지만 모르는 이들이 오가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불안했다. 비용 부담으로 오랜 시간 머무르지 못한 것도 아쉬움의 이유였다.
첫 시도의 아쉬움을 채우려 나는 두 번째 워케이션에 도전한다. 이 때는 은혜로운 지인 부부의 집에 묵으며 무려 방 하나를 사용하는 호사를 누렸다. 가족처럼 편안한 사람들이었지만 일하는 나를 배려해 방에 살짝 문을 열고 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이 불편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무너졌던 기둥이 세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해 나가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은 체감의 밀도가 달랐다. 조금 더, 조금 더 나아가 보면 막연한 불안감이 정리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느끼며 두 번째 워케이션을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워밍업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생각하는 워케이션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시간 말이다. 돌아온 후에도 내 머릿속에는 다음 워케이션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아보며 더욱 나은 경험과 몰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뭔지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숙소였다.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하며 가장 오래 머물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주기적으로 공유 숙소 앱을 켜고 적당한 가격대의 장소들을 훑어봤다. 혼자 부담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의 숙소부터 눈에 들어왔다. 방법이 없을까,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때 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에서도 공식적으로 타지에서의 근무를 승인할 즈음이었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팀에서 누군가 함께 간다면, 최소한 숙소와 자동차 렌트비에 대한 부담은 반으로 줄어든다. 이 얼마나 좋은 생각인가! 그랬다. 이렇게나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팀 위클리 미팅 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제주도에 가서 한 달 일하다 보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