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랑 한 달 살기 가능한 사람?
B의 기록
J : B 님, 시간 되면 같이 워케이션 가요. 제주도 어떰?
매주 진행하는 팀 미팅을 하던 중에 가볍게 던져졌던 제안이었다.
평소 나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 일지, 리스크는 없을지,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양한 방면으로 재고 따져본다. 비용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저 제안을 수락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단 1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한 결정의 이유에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내 일상을 깨고자 한 마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현재의 나는 리프레시가 필요한 상태임
and 나는 국내 워케이션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회사에 다니고 있음
and 팀에 같이 워케이션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음
and 그 사람이 나에게 같이 워케이션을 같이 가자고 함
이건 안 가는 것이 손해인 아주 귀한 기회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별다른 계산 없이 J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같이 가보지 않은 사람과 한 달 동안 같은 공간에 살면서 일과 여행을 같이 하는 결정을 이렇게 빠르게 내리고 실행한 것은 평소의 나답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사실 나는 워케이션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시점부터 속으로 그 동행자는 높은 확률로 J가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같이 워케이션 가고 싶은 사람'의 조건에 J가 딱 맞는 사람이었고 왠지 모르겠지만 J도 나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첫째, 장기간 여행을 가고 싶은 의지와 실행력이 있는 사람.
둘째, 자택이 아닌 공간에서의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
셋째, 긴 여행의 동행자로 삼고 싶은 사람.
세 가지 조건을 개별적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지만,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세 번째 조건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인데 J는 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와 J는 한 달 동안 같이 워케이션을 떠나기 위한 예행연습이 다 되어있었다.
기본적으로 직장 동료이기 때문에 재택 전에는 하루에 8시간씩 한 공간에 있으며 같이 밥을 먹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부터는 퇴근 후에도 종종 식사나 술자리를 가졌으며 해외 출장지에서는 자유 시간에 같이 쇼핑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연애사나 가족사와 같은 심도 깊은 주제의 대화도 나누어보았고, 심지어 1박 2일로 함께 템플 스테이를 다녀오면서 같은 공간에서 잠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또한 J의 집에 방문하여 그의 가족들과 인사한 적도 있다. 다양한 경험과 꽤 많은 시간을 함께 공유해온 우리에게 한 달짜리 워케이션이란 그저 우리가 늘 가져오던 사적인 그리고 공적인 만남의 연장선이었다.
누구나 ‘간다'에 대한 결정은 빠르게 내릴 수 있지만 우리의 워케이션은 빠른 실행도 함께 동반되었다. 이것은 J가 조기 착수 능력이 매우 뛰어난 동료였기 때문이다.
J는 원래도 해외 출장 일정이 정해지면 누구보다 빠르게 출장을 위한 항공편 및 호텔 예약을 진행했고, 격주로 진행되는 회의에서는 회의록이 생성되자마자 1등으로 달려가서 자신의 아젠다를 올려두는 사람이다. (40명이 넘게 참여하는 회의이고 매 회의마다 20개 넘는 아젠다가 등록되는데 1등 순서를 놓친 적이 거의 없는 엄청난 사람이다.)
제주도행에도 예외는 없었다. 내가 “좋아요. 가시죠.”라고 제안을 승낙하자마자, J는 대충 숙소 가격을 알아보겠다며 그가 찾은 숙소들을 여럿 나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아니 벌써? 이렇게나 빨리?’
시작부터 프리라이더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나는 J의 속도에 맞춰 반강제적으로 열심히 숙소와 항공편을 알아보았다.
상대적으로 마감이 다가올 때 생산성이 극대화되는, 조기 착수 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J가 정해주는 마감 일정에 매번 허덕이며 쓰고 있다. 이렇듯 나의 단점을 보완해준다는 점에 있어서 J는 매우 훌륭한 동료이자 동행자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추진력 덕분에 ‘이거 진짜 가는 건가?’하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이미 우리의 워케이션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