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Ji Aug 18. 2022

싫으면 싫다고 말해주는 사람, B

너, 나의 룸메이트가 되어라!

J의 기록


나에게 회사는 일터였지만, 동시에 놀이터이기도 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비슷한 조직에 묶여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나 큰 편안함을 주는 요소였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사적 공간을 공유하는 많은 친구들을 회사를 통해 만났다.


회사에서 친구를 만나게 되면 좋은 점은 여러 가지다. 재택근무를 하지 않을 때는 업무 공간이 가깝고 퇴근 시간이 비슷하니 그날 느낌만 맞으면 신나게 놀러 나갈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이 생길 때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이 폭풍 리액션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하늘이 보우하사 지금 내가 속한 팀 또한 일은 물론, 사적인 즐거움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중에서도 B는 워케이션을 함께 하기에 가장 완벽한 팀원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와 같은 캥거루족이라 부담 없이 집을 떠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입장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던져진 나의 제안에 B는 바로  ‘좋은데요' 라며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나는 그 대답을  완전한 동의로 해석하여 조기 착수에 돌입했다. B가 발 빼기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그냥 예의상 하는 호응 정도에 너무 밀어붙인 것 아니냐?라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B의 그 정도 반응이면 아주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B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고 지나가고 싶다.


B는 우리 팀에 찾아온 빛과 같은 신입사원이었다. 지금은 사람도 늘어 신규 입사자 적응을 위한 가이드도 만들었지만, 그때는 '진행하시는 거 보면서 어떤지 살펴보고 일단 해 보시면 됩니다.' 같은 말로 퉁쳐지던 혼란의 시기였다. 그런 경력 꽉 찬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B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냈다. 신입이지만 신입 같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고 할까.


그렇듯 B의 첫인상은 차분하고, 조용하고, 빈틈이 없어 보였다. 큰 표정 변화 없이 새침하게 앉아있는 B에게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거리감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함께 사는 강아지 사진을 자랑했고, B의 견고해 보이던 장벽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B와 나는 강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 시점에서는) 근거 없는 신뢰를 서로에게 주었다.


B는 종종 자신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우며 선이 명확한 ‘어려운'사람이라고 묘사하곤 하지만, 나는 이상할 정도로 B가 편안했다. 나는 자신의 생각과 선호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B의 방식이 좋았고, 그 대상이 누구든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담백함과 당당함이 멋져 보였다.


그 매력을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순간은 해외로 출장을 갔던 어느 날 밤이었다. 팀과 함께 퇴근하는 길에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B는 신입으로 입사했고, 입사한 지 오래된 시점도 아니었다. 하지만 B는 자신은 오늘 쉬고 싶으니 호텔방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 이야기했다.


모두가 그러라며 기분 좋게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속으로 조금 놀라고 말았다. 지금보다 B에 대해서 잘 모르던 때라서일까, 아직 낯선 와중에도 주변의 분위기를 맞추기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그걸 밖으로 명확히 꺼내어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일에 대해서도 B는 장점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B가 정리한 문서는 얼마나 꼼꼼히,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며 고민했는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우려점이 떠오르다가도, 아마 B가 이미 확인했겠지,라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던 것도 여러 번이었으니 말이다.(그리고 언제나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만큼 B는 신중한 고민 끝에 의견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B의 작은 호응이 ‘수락'의 의미라고 100프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B가 함께한다고 했으니, 나로서는 그저 *이득! 을 외칠 수밖에.


물론 소소한 고민은 있었다. 나는 자취 경험이 없고, B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깝게도 둘 다 요리에는 취미가 없다. 제주는 6시만 넘어도 문 닫는 식당이 대부분이었으니, 잘못하면 제대로 밥도 못 챙겨 먹을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끼니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으니 우리는 어떻게든 굶지는(?) 않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짧은 자취 생활에 한줄기 빛과 같은 시판 소스와 냉동식품 등을 검색했다. 일단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생존본능을 믿어보기로 했다. 


B와 함께라면 그냥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내 필름 카메라로 찍은 B
이전 06화 같이 워케이션을 가자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