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사람 수집가 같기도 하고…
B의 기록
나는 어떤 사람을 새롭게 알게 될 때 그 사람과 내가 눈이 마주친 그 첫 순간을 아주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갖게 되는 그에 대한 첫인상과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았을 때의 실제 모습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비교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것을 비교해보면 첫 만남에서 어떤 부분을 봐야 그 사람의 실제 성격이나 가치관에 대한 예측도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쌓이게 된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먼저 만드는 썩 좋지 않은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이 들어맞으면 묘하게 쾌감이 있고 너무 재밌어서 멈출 수 없다.
이제 J와의 첫 만남으로 돌아가 보겠다. J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한 2019년 1월이었다. J는 내가 배정받은 팀의 멤버였다.
J에 대한 첫인상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아주 밝고 맑은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팀 멤버들과 인사하는 티 타임 자리에서 그가 나를 아주 호기심이 가득한 맑은 눈빛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웹툰이나 만화 속에서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바라보는 캐릭터의 눈은 ‘반짝반짝’이라는 의태어와 함께 올망졸망한 그림체로 표현되고는 한다. 당시의 J의 눈빛은 나에게 딱 그와 같은 모양새로 기억되고 있다.
J를 알게 된 지 약 3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J에 대한 나의 첫인상을 평가해보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첫 번째로 그가 사람에게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느 정도 정답이었다. 그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많다. 그니까 사람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약간 연구 대상으로 보는 느낌이랄까. 그러한 시선으로 사람을 지켜보다가 흥미로운 지점을 포착하면 집요하게 그 사람을 파고든다. 나는 J가 그렇게 사람을 파고드는 것을 ‘사람을 수집한다'라고 표현한다. 옆에서 보면 뭔가 자기 컬렉션에 한 명 한 명 ‘재밌는 사람’, ‘좋은 사람’ 이렇게 라벨링 붙여서 모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J와 하는 대화는 늘 생산적이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예요’와 같이 항상 내 의견과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묻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저 질문들을 던지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생각해요.’, ‘원래 그랬어요.’와 같은 무성의하고 재미없는 답변을 내놓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 사람과 대화를 할 때면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의 사고 과정을 돌아보면서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 고찰해보고 그가 충분히 만족스러워할 만한 수준의 답을 내놓기 위해 노력한다.
두 번째로 그가 아주 밝고 맑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조금 정정이 필요하다. J는 언뜻 보면 항상 밝고 감성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주 웃고 활동적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주제들로 대화를 나누면서 J는 자주 분노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원래 밝은 사람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들을 극복하고 다스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또 어떨 때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차갑고 냉철한 면모를 알게 되고 나서 J에게 더 많은 호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난 태생적으로 지나치게 밝고 감정적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약간 알러지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J는 종종 자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를 깊이 알기 전에는 “응? 누가 봐도 외향적인데요. J님 약간 자기 객관화 안되시는 것 같은데요?”라고 반응했지만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한다. 사람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만큼이나 자기 내면을 가꾸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또 그렇게 단단해진 내면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이런 성향을 가진 J와는 사내 어학 교육 프로그램을 같이 들으면서 점심시간을 같이 보내고, 또 입사 초반에 같이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같이 한 달 동안 여행을 갈 정도로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둘 다 ‘동물’과 ‘소비’라는 키워드에 열렬히 반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동물 좋아하는 사람은 다 착해”, “예쁘고 귀여운 건 최고야”, 그리고 “이건 사야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J와 내가 메신저로 나눈 대화를 살펴보면 서로의 반려견 사진을 공유하면서 주접을 떨거나 서로가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을 공유하거나 혹은 이미 구매한 물건을 자랑하는 내용의 대화다.
동물 좋아하는 돈 잘 쓰는 사람. 안 친해지는 것이 더 어려운 조합이었다.
제주도로 떠나기 전에 걱정되는 것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일단 당시 J는 채식 지향 주의자였고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독히도 육식주의자이다. 그 와중에 우리는 둘 다 요리를 못했다. 제주도는 배달도 잘 안되고 저녁에 가게 문도 일찍 닫는다던데 제주도까지 가서 쫄쫄 굶다 오는 것이 아닐지 걱정됐다.
둘 다 자취 경험이 없었기에 집안일이 미숙하다는 점도 걱정되는 요소였다. 같이 붙어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증가할 테니 소소하게 부딪히는 일이 있지는 않을지, 개인 시간이 부족해서 스트레스받지는 않을지, 업무 하기 불편하지는 않을지 등 원래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으로서 언급한 것들 외에도 101가지의 걱정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J가 일을 하는 모습을 3년 넘게 옆에서 봐 오면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봐왔고 또 그가 어떤 문제든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잘 될 거다’라는 근거 없는 낙천성을 갖고 사는 사람이었기에 ‘문제 상황은 당연히 언제든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