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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Aug 31. 2022

여행 아니고요, 살러왔습니다.

저 진짜 여행에 큰 흥미 없습니다. 진짜라니까요?


J의 기록


사람들은 보통 나를 외향적이고 활동인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인지 내가 여행을 좋아할 거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여행에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전 경험을 돌이켜봐도 친구가 가자고 했던 경우, 혹은 이미 그 나라나 지역에 살고 있는 친구나 친척을 만나러 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여행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의문스러웠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거야, 아닌 거야? 하지만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몇 번 쌓이다 보니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나는 '여행' 보다는 그곳에서 경험하는 '일상적인 삶'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편안한 차림새로 동네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늘어지거나 집에서 읽고 있던 책을 가지고 가서 마저 읽는 것 같은 행동이다. 


그다지 외지인이 찾아올 것 같지 않은 동네의 슈퍼에 들어가 보는 것도 포함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이 도시를, 동네를 조금 더 친근하게 느끼게 만드는 일종의 의식(?) 같은 행위라고나 할까. 이번 Workcation 장소인 선흘리에서는 한 달이나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으니 느긋한 일상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설렜다. 


제주는 서울보다는 따뜻할 거라 기대했지만 아직은 3월, 겨울이었다. 선흘리는 중산간지역이라 제주 내에서도 추운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난방을 맘껏 돌리기엔 난방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올 거라는 주인분의 경고에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온기를 나누고 난방비를 아끼는 전략이었다. 다행히 B도 나도 잠이 들면 큰 소음과 움직임이 없는 편이라 서로의 잠을 방해하지 않고 아침까지 곤히 잠들 수 있었다.


제주에 도착한 다음날 토요일 아침. 7시가 넘어가면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있던 나는 평소대로 일어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다행히 B는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와중에도 깨지 않았다.


1층에 내려온 내 눈에 펼쳐진 것은 바닥에 주황색 덩어리가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귤 밭이었다. 3월이면 노지 귤 수확은 끝나가는 시즌이라 나무에 매달린 귤을 많지 않았다. 그 옆으로 담장 역할을 하는 큰 나무들이 이어졌다. 꽤나 먼 거리에 있는 풍차도 눈에 들어왔다. 김녕 바다 쪽에 있는 풍차인가, 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지금 내가 제주, 그것도 선흘리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넓은 창이 있는 소파 쪽으로 가 자리를 잡고 짧게 명상을 하고 책을 펼쳤다. 조용한 제주의 아침. 상상만 하던 꿈같은 순간이었다. 조금 뒤에 위층에서 B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B님 잘 잤어요?"

"굿모닝..."


이 어디 직장동료 간에 주고받을 대화 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느릿느릿 내려온 B는 거실에 놓인 TV에 Youtube를 연결하고 음악을 틀었다. 나는 전날 사둔 요거트와 과일로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을 먹으며 우리는 잠시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탓이다.


선흘리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은 조용했다. 어색함을 깨우려 괜한 말을 덧붙이는 시도도, 분위기를 살피며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려는 모습도 없었다. 첫날인데, 이렇게 서로가 편할 일인가. 아니, 사실 이럴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함께 온 거였지. 혼자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스멀스멀 실감과 함께 신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뭐할까요."

"김녕에 빵집이 맛나다던데... 빵이나 먹으면서 생각해볼까요."

"가고 싶은데 있어요?"

"아녀..."


결국 '딱히 하고 싶은 것도 계획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우리는 유일하게 떠오른 빵집에 가보기로 했다. 제주도의 소금빵. 토요일 오전에 먹기에 적절한 메뉴가 아니던가. 한 달이나 있을 예정이니 급하게 뭔가 찾아 돌아다닐 이유도 없었다. (그래, 분명 이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각자의 소지품에 대한 정리는 어제 미리 끝냈던 터라 부산스러운 분위기도 없었다. 김녕 빵집은 꽤 이른 시간에 열리고,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사이에 할 일이 있었다.


"저 가는 길에 승마장 들러서 등록하고 가도 돼요?"


바로 승마 레슨 등록이었다. 옛말에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했고, 제주에는 저렴한 가격에 승마를 배울 수 있는 승마장이 많다고 했다. 오기 직전 체험한 원데이 클래스가 흥미로워 한 달 동안 제대로 배워볼 생각이었다. 마침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적당한 승마장도 발견했겠다, 서울에서 PT 받으러 다니는 것처럼 제주의 일상을 보내기에 아주 적절한 운동이 아닐까 싶었다.


"가는 길에 들리면 루트가 괜찮을 것 같아요."

"좋아요."

"그럼 9시에 출발할까요."

"좋아요."


물 흐르듯 편안한 토요일, 기분 좋은 제주 워케이션이 시작되었다.

 

모닝 BGM 고르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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