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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Sep 05. 2022

워케이션 아니고, 심신 단련 수련회 왔습니다.

근데 이제 헤르미온느 시계를 곁들인

B의 기록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나서 약 2년 사이에 나는 체중이 6kg이나 늘어버렸다. 20살 이후로는 몸무게 변화가 거의 없었던 나에게 6kg이라는 수치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먹는 것은 똑같은데 집 밖을 나가지 않아 운동량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기에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나보다 내 드레스룸에 걸려있는 청바지들이 더 먼저 내 몸이 무거워진 것을 알아챘다. 신축성이 없는 청바지들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아, 이거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건강검진 센터로부터 몸무게 6kg 증가, 체지방률 5% 증가라는 처참한 자기 관리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나는 그대로 집 근처 헬스장에 가서 PT를 결제했다.


약 한 달간 PT 수업을 받으며 운동과 식단관리에 대한 습관을 들이고 있던 와중에 제주도로 떠날 때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PT 선생님은 나에게 협박성 짙은 멘트를 날리셨다. “1kg이라도 쪄오면 각오하라”라고. 그의 협박이 꽤나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는지 제주도에 도착한 날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찍어먹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내 양심이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는지 그 이후로도 입으로 뭘 넣을 때마다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J에게 같이 있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홈트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제주도까지 와서 샐러드에 닭가슴살을 먹고 싶지는 않았고 대신 많이 움직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J는 5초 정도 고민하고 “좋아요. 매일 운동 도전!”하고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나는 솔직히 매일이 아닌 주 5회 정도로 J가 타협안을 제시해주길 바랐다. J가 네고 없이 쿨하게 그대로 제안을 수락해서 약간 당황했지만 제안을 무르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어서 J는 “그러면 운동 끝나고 명상까지 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제안했다. J는 평소에도 명상을 즐겨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명상이란 굉장히 추상적이고 동 떨어져 있는 단어였다. 하지만 새롭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주도에 온 만큼 평소 하지 않았던 것을 해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여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제주도에 도착한 둘째 날 <빅씨스>라는 유튜브 채널의 홈트 영상을 하나 해치우고 명상까지 완료했다. (이날부터 우리의 워케이션은 빅씨스 언니와 함께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와 너무 뿌듯해. 근데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저녁 루틴에 스트레칭을 추가했다. 확실히 스트레칭까지 하고 명상을 하니까 몸이 더 이완되면서 명상에 집중하기 쉬워졌다. 첫 일주일 간의 명상 경험에 대한 나의 짧은 감상을 공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도대체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까.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까.

N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고문이다.


생각하는 것을 멈출 줄 모르는 나는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명상을 했다. 이걸 명상을 했다고 표현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하긴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명상이 편해지기는 했다.


PT 선생님의 협박에서 시작한 매일 홈트 하기 챌린지는 스트레칭과 명상까지 붙으며 약 한 시간 가량의 저녁 루틴으로 꽤 그럴싸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아직 안 끝났다. 우리에겐 아침 시간이 남아있다.


J는 아침형 인간이다. 출장 때도 아침 7시에 호텔 조식을 먹고 기어이 근처 카페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출근을 하는 사람이다. 그와 반대로 당시 나는 9시 30분에 겨우 눈 뜨고 세수해서 출근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참에 J를 따라 아침형 인간을 지향하는 인간 정도가 되어보고자 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둘째 날 아침부터 예외 없이 J는 일찍 일어나서 무언가 사부작사부작거리고 있었다. 뭘 하나 보니까 글을 쓰고 독서를 했다. 그래서 나도 오전에 일찍 일어나서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하고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근데 일단 나에게는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가 챌린지였다. 목표는 8시에 일어나기였다. 알람을 9시부터 5분 단위로 4개씩은 설정해두어야 겨우 마지막 알람을 듣고 겨우 일어나는 내가 과연 8시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처음 몇 번은 역시 세 번째 알람에서 눈을 떴다. 그런데 점심 저녁 다 해 먹고 집안일하고 저녁 루틴까지 돌리고 잠에 들다 보니 하루하루가 피곤했는지 잠을 매우 잘 잤고 그러다 보니 점점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개운해졌다. 나중에는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그냥 눈이 떠지기도 했다.


내가 J를 뒤이어 일어나 씻고 나오면 J는 하던 것을 멈추고 아침을 만들어줬다. (매우 스윗한 룸메가 아닐 수 없다.) 주로 그래놀라와 과일을 곁들인 요거트였다. 아침을 먹으며 각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출근을 하기 전에 나의 의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생소하면서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하루의 본격적인 시작이 ‘회사 업무’가 아닌 ‘나의 시간’이 됨으로써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사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패턴이 며칠 유지되고 있던 시점에 또 뭔가 아쉬움을 느낀 J가 아침에도 스트레칭을 하자고 제안했다. 해서 나쁠 것이 없으니 당연히 좋다고 말했다. 루틴에 항목이 하나씩 계속 추가될수록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심신 단련 수련회를 하러 온 것 같다고 느꼈다.


‘갓생 루틴'에 중독된 우리는 최종적으로 아래와 같은 오전 오후 루틴을 완성했고, 이 루틴은 우리가 헤어지는 날까지 그러니까 약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졌다.


업무 시작 전

아침 먹기

독서/글쓰기

스트레칭


업무 종료 후

빅씨스 언니와 함께하는 홈트

스트레칭

명상


업무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밥도 다 해 먹어야 했던 꽤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룸메이트이면서 동시에 회사 동료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 내일 8시에 일어날 거예요."라고 J에게 말하면 그걸 어기고 싶지 않았다. J는 나한테 부지런하고 성실한 룸메인데 내가 그에게 불성실한 룸메로 비춰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어쨌든 같이 지키기로 한 루틴인데 나 때문에 루틴에 빈틈이 생기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마치 나의 잘못으로 업무 진행에 차질이 생기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J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사적인 요소와 공적인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는 우리의 관계는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최소한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가족과 지내는 것보다 몸이 편하지는 않았겠지만 하루하루를 알차고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오전에 일찍 일어나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 후 업무를 시작하는 습관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이번 워케이션의 경험으로 얻은 많은 것 중 가장 값진 것이다.


업무 시작 전의 루틴. 둘다 이북리더기를 챙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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