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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Oct 29. 2019

Street English가 뭐예요?

길(street)에서 길(way)을 찾다

누군가 내게 물어왔다. 'Street English (길거리 영어)'가 뭐냐고.

음…… “그게 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사용하는 영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제가 실전에서 영어를 배웠던 방법입니다.” 


흔히 길거리 음식을 street food 혹은 road food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적어도 나에게 Street English는 생활영어이면서 생존 영어와 동일어다. 뜻만 통하면 되는 언어의 본질에 지극히 충실한 소통의 도구인 셈이다. 이전 글인 ‘좌충우돌 영어 학습기 #1’에서 언급했듯 소통은 완벽한 문법이나 고급스러운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긴 영어 문장을 폼 나게 주저리주저리 읊어대지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바디랭귀지로 하든 짧은 단어를 이어 붙이든 서로 의사 전달만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이다. 


별 볼 일 없고 지지부진하던 내 영어실력이 그나마 좀 나아진 이유도 따지고 보면 길(street)에서 길(way)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미국 유학 시절의 얘기다. 미국 뉴욕서 대학을 다니면서 주말이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합법적인 취업을 할 수 없는 유학생 신분인 데다가 버벅대는 영어 실력 때문에 내가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란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첫 아르바이트 직장은 한인슈퍼마켓이었다. 한국인을 주대상으로 하는 가게에서 고객 차량 주차나 매장 정리와 쓰레기 청소 등 허드렛일이 주 임무였다. 




1년 남짓 후, 뉴욕 생활이 자리를 잡고 학교 공부에도 재미를 붙여갈 무렵, 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에 위치한 Village (빌리지)에서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조그마한 가게였다. 주로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가죽 가방이나 지갑, 액세서리, 가죽 옷 등을 팔았는데, 주말이면 늦은 밤까지 흥청대는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곤 했다. 유명한 재즈 카페나 커피숍,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과 술집, 코미디 클럽, 타투샵, T-shirt 판매점, 19금 성인 대상 샵 등 뉴욕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명소 중 하나로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었다. 


주로 관광객인 외국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다는 것, 그것도 어쭙잖은 영어로?…… 그것은 엄청난 도전이자 색다른 경험이었다. 찰나에 방문 고객의 의도와 관심을 알아채야 했고, 제품의 장단점을 어렴풋이나마 꿰고 있어야 엉터리 영어로라도 설명이 가능했다. 고객의 얼굴 표정이나 시선, 그리고 손발의 순간 움직임을 보고, 이 고객이 살 것인지 아닌지를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 때론 분위기를 봐가며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과감하게 디스카운트를 외치곤 했다. 

“OK~ok. How much?” 

이러면 나가려던 고객 중 십중팔구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고객과의 본격적인 밀당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나에겐 그런 밀당이 상당히 재미있는 게임 같은 것이었다. 결국 작은 가죽 동전지갑 하나라도 손에 쥐어 내보냈을 때의 성취감이란……!! 


이 가게에서의 경험으로 최고봉은 뭐니 뭐니 해도 난장을 꼽을 수 있다. 영미권에서 ‘STREET FAIR’라고 불리는 난장은 뉴욕에서도 손꼽히는 명물로 통했다. Street Fair는 매 주말마다 자동차가 다니던 대로를 막아놓고 여는 임시시장이다. 이 난장에는 이동 트럭을 이용하거나 가판대를 펼친 많은 가게들이 참가하는데, 다양한 국적의 음식이나 특이한 제품들이 등장하고, 신나는 음악이 더해져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엄청난 수의 뉴요커와 관광객들이 길거리에 몰려나와 도심 한복판에서 시끌벅적하게 벌어지는 축제를 즐기는 것도 에너지 넘치는 뉴욕다웠다. 


내가 일하던 가게도 주말이면 이 Street Fair에 수시로 참가하곤 했다. 이런 Street Fair에서의 영어 구사 포인트는 눈치와 순발력이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객이야 그래도 약간은 관심이 있어서라지만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누가 누군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 사람이 고객인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전수받은 노하우가 바로 눈 맞추기 전략이다. 일단 지나가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하면 무조건 반갑게 인사부터 한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마치 오랜 친구에게 하듯이 말이다. 


“Hey man, what’s up!” 

“Hey, long time no see!” "What's going on?" 

"Hey, good to see you man!' (언제 봤다고... 하이파이브까지 한다) 


또 좀 젊잖은 중년의 신사나 숙녀를 보면, 무조건 칭찬부터 하고 본다. 

“How are you doing, sir?” 

“Nice hat~” “Hey, you looks great~!” 

"Beautiful shirts~ madam!" 


적어도 눈인사라도 한번 나눈 사람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괜스레 눈빛을 진열대 쪽으로 한번 돌리거나 물건을 뒤적이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가면 일단 30%는 성공이다. 그러면 이런저런 얘길 둘러대어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고, 혹시 관심이 있을만한 제품이 있는지 넌지시 떠보기도 하고 권해도 보고 그러는 것이다. 


현금박치기가 대부분이므로 할인을 대폭 해주더라도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사방이 뚫려 있는 상황이라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고객’이 되어버린다. 이 경험 덕에 간결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짧은 구절 위주의 영어를 구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어차피 길게 말하지도 못하는 영어 구사 능력인지라, 몇 마디 단어와 짧은 문장을 갖고 속전속결로 풀어가는 대화 방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물론 이때 다소 과한 미소와 바디랭귀지는 최고의 도우미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의 교육방식은 토론과 발표가 주를 이룬다. 버벅대는 영어 때문에 한껏 주눅이 들어 있던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셨던 교수님이 있었다. 발표한다고 앞에 나섰다가 시원찮은 발음으로 반 친구들에게는 웃음보따리를 잔뜩 안겨 주었지만 나 스스로는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던 참이었다. 그때 그 교수님은 따로 나를 부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If other people don’t understand what you are saying, don’t worry." (만약 다른 사람들이 네가 얘기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걱정하지 마라) 

"It is not your problem but their problem." (그것은 너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So, just say to them." (그러니까 그들에게 말해) 

"What’s wrong with you guys?" (이봐 도대체 자네들 뭐가 잘못된 거야?) 

"How come you don’t understand what I am saying?" (왜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그때부터 던가? 난 영어로 대화하면서 점점 뻔뻔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문법이나 발음, 고급 단어가 아니라 소통이란 것도 배웠다. 


적어도 내가 아는 영어는…… 좀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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