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없이 단번에 쓰는 글
57초 후에 화면이 꺼집니다
창문에 갇힌 하늘이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어
보일러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고 24도를 줄곧 유지한 채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오늘 놀이터에 누군가 씨앗을 심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43초, 42초,
우리는 볼륨 없이도 사랑할 수 있잖아
시키지도 않은 콥샐러드가 봉투 안에 들어 있고 수저가 없어도 손으로 먹을 수 있잖아
최후의 만찬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다가 우리가
발견되어도 좋아 먹은 것들이 그대로 바닥에 흘러
흐물거리는 양파가 그 위를 둥둥
물이 흐르고 화장실에는 팬이 새카맣게 돌아가고
최후의 향기는 밀실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28초,
너는 더 이상 수를 세지 않지만
그런다고 감자칩이 줄어들지 않는 건 아니야 있을 수 없는 일
팝콘은 이렇게나 많은데 말이야 한 움큼 쥐어 입에 가득 털어 넣어도 끄떡없으니
내 손은 자꾸 팝콘으로만 흘러
하늘은 걱정 마 튼튼한 창틀로 바꾸어 두었어 침대 밑도 장롱 안도
들여다보지 않아도 괜찮아 눈은 고정한 채
너의 손은 한 곳으로만 흐르면 돼
11초, 10초, 9초 후에 화면이 꺼집니다
숫자가 줄어들면 문장이 짧아진다
마지막으로 잠옷을 입은 게 언제였더라
아무래도 좋아 그게 여름이었든 초겨울이었든 반소매였지만 추웠던 기억이 없으니
나무는 불평 없이 자라고 이불속은 항상 미열(微熱)을 간직한다
뛰어노는 아이들이 없더라도 놀이터는 잠들지 않고
창문 속 하늘은 계속 파랗다 바깥은 분주하고
우리는 밀실을 사랑해 우리는 빈 화면을 사랑해
* <이방인>, 알베르 카뮈(김화영 譯), 민음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