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완성하는 사람

어떤 자리에서든 우아하게

by 이화정

관계의 허망함에 시달리던 40대 초반을 지나며 일정이 없는 날은 홀로 카페를 찾아 시간을 보냈다. 2015년 큰아이가 고3이었을 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때면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에 대해 고심했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한 후 자취 생활부터 아이 둘을 대학에 보내기까지 30여 년을 서울에서 살았다. 2019년 12월, 서울을 떠나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이사를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일정이 없는 날은 동네 카페를 전전했다. 집에서는 책을 읽다가도 온갖 잡다한 집안일을 집적거리느라 채 한 시간을 집중하지 못했다.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계획을 짜거나 글을 쓰려고 해도 몸이 늘어지기 일쑤였다. 단지 앞 입구에 있는 카페부터 반경 500미터 안에 있는 카페가 10개가 넘는다.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탐험하듯 동네 카페를 다니기 시작했다. 일거리를 잔뜩 싸들고 출근하듯 자리 잡고 앉으면 3-4시간은 거뜬히 보낼 수 있다. 독서 모임 기획안을 짜거나 두 번째 책 원고를 쓰는 동안은 단지 입구 단골 카페에서 5시간까지 몰입해서 일을 한 적도 많다. 대부분 편한 차림으로 나서지만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고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나갔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고, 혼자 있더라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나를 의식하며 앉아 있으려 노력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며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혼자 고요히 지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카페에 머무는 시간은 혼자 있는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연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하느라 알게 모르게 썼던 가면을 벗고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면 비로소 내가 거기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이왕이면 그런 내가 근사해보였으면 했다. 무표정한 모습이 아니라 나를 향해 슬며시 미소를 지어주고 싶었다. 연둣빛 잎사귀가 귀엽고 예뻐서 함박웃음을 지을 때도 기뻐하는 나를 의식하며 즐겼다. 바짝 메마른 잎사귀를 그대로 매달고 있는 겨울나무를 바라보다 무성하고 풍성한 나뭇잎들만큼이나 정교하고 균형감 있게 뻗은 나뭇가지들을 보며 감탄하는 나를 좋아해주었다. 파란 하늘빛깔을 담은 우울한 마음도, 나뭇잎들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처럼 반짝거리는 마음도 생생하게 감응하려 노력했다.

탁자에 펼쳐진 고풍스런 일기장과 뚜껑 모서리가 낡은 만년필, 숲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책표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좋았다. 카페 안 작은 공간이나마 그곳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찰나의 충만감에 휩싸이곤 한다. 입에 착 감기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이 그 공간을 아끼게 된다.

소설가 오정희가 쓴 <마음의 무늬>라는 산문집에서 ‘탁자 위의 커피 한 잔은 단순히 기호품이 아닌, 그것을 앞에 둔 사람과 말없는 교감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89)이라는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카페가 많지만 가장 아끼던 공간이 있다. 2017년 2월의 기록을 찾아보니 한 공간에서 머물렀던 내 표정이 다채로워 오래 들여다보았다. 2019년 연말 모임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중 찾았던 그곳은 주인이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다시는 찾지 않게 되겠지만 소중히 간직해 둘 추억이 많다.

3년여 거의 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쉬던 곳이자 노란 불빛의 스탠드 아래에서 스산해진 마음을 달래던 곳이다. 남편이 자기만의 동굴에 숨고 싶을 때 어느 날 부터인가 같이 따라 들어가 쉬었던 곳, 아이 때문에 몹시 마음이 상한 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으면 괜찮아지던 곳. 가장 좋아했던 커피는 달콤 쌉싸름한 아이스 모카였다. 묵직한 다크 초콜릿, 신선한 생크림이 어우러진 황홀하기 그지없는 그 맛은 씁쓸한 마음을 씻어 내리는데 충분했다. 직접 만든 바닐라 시럽이 든 달콤한 바닐라 라떼 한 모금이면 까칠하던 마음도 어느덧 평온해졌다.

가장 나다운 모습, 제일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 머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위로가 필요할 때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마음이 따갑거나 이유 모를 심술이 나서 들키고 싶지 않을 때 숨을 자리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 자리가 세상 어딘가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그 자리가 기막히게 아름다운 여행지나 럭셔리한 리조트나 근사한 호텔 스카이라운지면 좋겠지만 자주 가보지도 못했고, 갈 수도 없으므로 언제든 가벼운 지갑 들고 만만하게 갈 수 있는 곳이면 족하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떤 장소가 부럽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은 아끼는 책 한 권, 달콤한 모카커피 한 잔, 나만을 위해 비추는 노란 불빛이 있는 이 자리면 충분하다. 그 공간이 아무리 번잡하고 소란스러워도 책을 펼쳐들고 몰입한 나로부터 사유의 향기가 고요하게 펴져나갔으면 좋겠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장소가 아니더라도 단정하게 노트를 펴고 글을 쓰는 내 모습으로 인해 그 공간이 꽤 괜찮아 보이는 상상을 해본다. 차림새와 상관없이, 읽고 쓰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품격으로 어떤 자리에서든 은은하고 우아하게 존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온전한 나로 충만히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여전히 나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새로운 카페를 물색하러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