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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껏 Jul 09. 2024

"똥꼬라고 말하는 사람이 똥꼬야."

아이의 말(2) 나쁜 기운을 담은 말을 하면 안 되는 이유


유치원을 다녀와서 샤워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말장난을 시작한다.


"똥꼬라고 말하는 사람이 똥꼬야."


무슨 말이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동어반복 식의 문장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질문을 던지니 아이는 답할 생각은 없고 계속 말장난에 빠져 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끼리 주고받는 소위 요즘의 유행어인가 보다.


"발꼬락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발꼬락이야."

"못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이 못생긴 거야."

"코딱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코딱지야."


나도 발동이 걸려서 단어들을 계속 생각해 냈다. 아이가 계속 부정적인 단어만 붙여 쓰는 것 같아 좀 더 긍정적 느낌의 단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 문장을 생각해 냈다.


"꽃이라고 하는 사람이 꽃이야." 스스로도 뿌듯했다. 꽃으로 단어를 바꾸면 아이에게 교육적인 효과도 좋겠단 생각을 하며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하는 거야?"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이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엄마, 꽃은 좋은 뜻이잖아. 그래서 쓰면 안 돼."


아하.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야  "똥꼬라고 말하는 사람이 똥꼬야."가 어떤 말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좋지 않은 말을 남에게 하는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을 자신에게 뱉은 거나 다름없다는 뜻이 내포돼 있는 문장이었다.  '누워서 침 뱉기'라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한다. 그것을 아이들의 방식으로 가장 직관적이고도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똥꼬라고 말하는 사람이 똥꼬야."인 것이다.


놀랍다. 진지한 교훈이나 거창한 커뮤니케이션 이론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말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문장을 발견했다. 나쁜 기운을 담은 말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 역시 명심하자.


같은 단어가 반복되니 말의 운율도 절로 생겨, 요즘 말장난을 할 때 자주 이 문장 구조를 사용한다. 이번에는 내가 했던 긍정의 단어를 붙여서 문장을 만들어본다. 나쁜 기운의 말이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면 좋은 기운 역시 내 입을 타고 나에게 올 터이니. 역시나 효과는 거의 없다. 아이는 '똥꼬', '응가', '꼬랑내' 이런 자극적인 단어를 붙여야 말맛이 있나 보다. 엄마의 문장은 계속 무시당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꽃', '사랑', '천사'라는 단어를 문장에 실어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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