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껏 Jul 30. 2024

"어른들은 휴대폰 없으면 못 살아요?"

아이의 말(3) 어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에 대해

 저녁 운동을 다녀와 잘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는 요리 놀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양념으로 쓸 설탕을 만든다고 하얀 휴지를 잘게 찢어 엄지와 검지로 돌돌 말아 차곡차곡 설탕통에 쟁여 놓았다. 그때 갑자기 아이가 던진 말,


"엄마! 어른들은 휴대폰 없으면 못 살아요?"


 같이 휴짓조각 설탕 만들기를 돕고 있던 내가 고개를 번쩍 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방 저편에서 남편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말에 깜짝 놀란 이유는 이건 특별한 날의 풍경이라기보다 매일 우리 집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 역시 바쁠 때면 아이와 역할 놀이를 하면서 한쪽에서는 휴대폰 터치를 쉬지 않고 하기도 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타박하기보다 엄마의 '몰래 폰 사용'을 정말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 왔다. 물론 가끔은 "엄마 아빠 그렇게 핸드폰질 하다가는 '멍해 괴물(책에서 본 캐릭터로 TV나 폰에 중독될 때 나타나는 괴물)' 나타난다"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냥 웃고 넘겼다.


 이 날의 말은 너무나 덤덤하게 흘러나와 오히려 내 마음에 돌덩이 하나를 쿵 하고 던져 놓았다. 마치 긴 성찰 끝에 정말로 '어른들은 휴대폰이 없으면 숨을 멈출 수도 있는 건가?' 하는 심오한 궁금증으로 다가왔다.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야. 휴대폰이 없어도 살 수 있어."라고 말하기엔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외출했다가는 정말 숨도 못 쉴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던 나 자신이 떠올랐고,  "그럼. 휴대폰 없으면 어른들은 못 살아."라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휴대폰이 현대 시대의 산소 호흡기와 같다고 차마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휴대폰의 노예로 살지언정 적어도 우리 아이만큼은 휴대폰을 그저 유용한 도구로만 거리두기 하며 살기를 바라는 그저 평범한 모순 덩어리 부모였기에.


 이 일이 있기 2주 전,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보다 훨씬 습하고 뜨거운 날씨도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가장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은 바로 '언어'였다. 온통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한자로 가득한 문자들 때문에 시야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평상시라면 부담이 됐을 영어조차 일본에서 마주치면 한국어 보는 것만큼 편안해졌다. 그런데 아이는 한국에서와 똑같은 정도로 자연스럽게 쇼핑을 하고 자신의 취향대로 음식을 선택했다. 며칠 지나서야 깨달았다. 문자를 모르는 아이에게는 한국어나 일본어나 그다지 신경 써야 할 정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걸 깨달은 순간 아이가 진심 부럽기까지 했다. 문자로부터 정보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바로 내 눈앞에 있다니.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는 "문자 없이도 잘 사"는데 반해 우리는 조그만 화면 속 "휴대폰 세상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다. 과연 어느 쪽이 더 깊은 감각으로 세상과 호흡하는지 나는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문자 없이도 잘 사는 바로 너, 네가 없으면 엄마는 정말 못 살아."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보탠다.


 "앞으로는 휴대폰이 없어도, 가장 소중한 네가 커서 나를 떠나게 되어도 잘 사는 사람으로 성장해 갈게."




이전 02화 "똥꼬라고 말하는 사람이 똥꼬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