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껏 Aug 20. 2024

"저기 달토끼 두 마리가 떡방아를 찧고 있어."

아이의 말(4) 한없이 하찮아진, 그러나 여전히 신비로운 달이야기 

 6살 아이는 올해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 낮잠을 자지 않는다. 그러면 취침 시간이 좀 빨라질까(그에 따라 육퇴 시간이 좀 당겨질까) 내심 기대했건만, 밤 10시 전에 잠드는 일이 거의 없다. 지난주에는 심한 열과 기침감기에 시달렸는데, 하루종일 집콕을 하며 낮잠을 2시간 이상 자느라 매일 밤 자정이 될 때까지 침대에 누워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나도 엄마로서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잠들 때까지 말동무를 해준다며 옆에 누웠다. 


"엄마, 보름달이야."


 창밖으로 구름에 살짝 가린 보름달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우와, 보름달이 떴네." 호응하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을 텐데, 이 날은 적막한 방 안에서 할 일이라고는 하늘에 환히 뜬 보름달을 관찰하는 것뿐이었다. 달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가려졌다 다시 나타나는 달이 꼭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달님이 구름 뒤에 꽁꽁 숨었어도 주변 빛이 새어 나와서 어딨는지 금방 알겠네. 달님은 숨바꼭질을 잘 못하나 봐."


 내 말에 아이는 순식간에 술래의 마음이 되어 표정마저 장난꾸러기처럼 바뀌었다. "그러네. 달님 거기 있는 거 다 보이는데."하고 달을 놀려댔다. 아이와 하늘을 이렇게 오래도록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있었나 싶은 마음에 이 시간을 좀 더 지속하고 싶었다. 그 사이 달은 낮은 동쪽 하늘에서 점점 높아지며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는 달이 움직이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것도 재미있어. 옛날 사람들은 TV도 없고 전기도 없을 때 밤에 저 달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거야."


 영상을 그만 보라고 하면 난리를 치는 아이에게 나의 말은 그저 지겨운 어른(꼰대)의 감상으로 느껴지리라 당연 짐작했는데, 웬걸 아이는 내 말에 호응했다. 우리는 그렇게 침대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야외에서 캠핑하는 듯이. 바로 그때 달을 덮은 구름이 걷히고 보름달이 환하게 나타났고 아이가 외쳤다. 


 "저기 봐. 달토끼 두 마리가 떡방아를 찧고 있어."

"오! 정말 그러네."


 나는 격하게 동의했지만 사실 마음은 뜨뜻미지근했다. 나조차도 어렸을 때 달토끼를 억지스럽게 모양을 끼워 맞췄던 기억이 여전하건만, 아이 역시 동화에서 자주 들었던 '달토끼 떡방아' 이미지를 공식처럼 연상해 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억지로 끼워 맞춘 토끼 모양조차 도저히 찾을 수 없게 된 나의 눈이 문제겠지, 아이의 눈에는 달토끼가 잘 보일 거라며 스스로 감성을 끌어모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달보다 밝은 조명들이 한밤중에도 현란하게 세상을 밝힐수록 달은 점점 초라해졌다. 사람들이 달에게 품었던 신비로움은 이제 과학기술에 내어준 지 오래다. 아이에게 달토끼가 생생히 보이는 동심이 살아 있든 교육을 통해 이미 굳어버린 클리셰한 표현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억지 환상일지언정 지극히도 하찮아진 달의 신비로움을 품고 사는 마음만은 평생 지켜주고 싶었다.  


 아이는 대뜸 "엄마, 달 사진으로 찍어 볼래."라고 말하며 내 폰을 가져갔다. 나는 아이 손에서 폰을 빼며 "달은 사진을 참 안 받아서 사진으로 보면 하나도 안 예뻐. 달의 모습은 마음으로 찍는 거야."라고 속삭였다. 아이는 금세 수긍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조용하게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달을 마음 사진기에 담았다.    



 다음날, 우리는 백희나 작가의 『달샤베트』를 읽었다. "엄마, 어제 달에서 본 달토끼야." 정말 그 토끼들이 떡방아와 절구를 등에 메고 지구로 내려왔다. 뜨거워진 온도 때문에 달이 녹아내려 살 곳이 없어졌다고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오늘은 경희대 연구팀이 발견한 달 뒷면 지름 132km의 크레이터에 조선시대 천문학자인 남병철 이름을 신청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이 두 가지 이야기의 연결점은 역시나 달토끼다. 수많은 크레이터들은 아마 달토끼가 절구질을 할 때 생긴 흔적이지 않을까? 다음 번에 딸과 달을 바라볼 때는 달토끼 절구질이라는 오래된 전래동화 이야기에 크레이터라는 과학 이야기를 살짝 얹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이전 03화 "어른들은 휴대폰 없으면 못 살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