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6) 손톱 먹은 들쥐 이야기 때문에 한밤중 공포에 떨었다
아이는 네 살 쯤부터 손톱을 뜯었다. 왜 뜯냐고 물었더니 "손톱 아래가 너무 간지러워서."라는 변명으로만 들리는 알 수 없는 이유를 댄다. 자꾸 손톱을 뜯으면 엄마처럼 손톱 모양이 못생겨진다고 겁박을 줘도 아무 소용없다. 그렇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30대가 될 때까지 손톱깎이를 잡아본 적 없을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을 이빨로 똑 끊어내서는 일자 선으로 사과 껍질 벗겨내듯 자란 손톱을 쭉 잡아당긴다. 일자로 잘려나간 손톱은 뱉어내고 앞니로 거친 부분을 긁어내면 매끈해지기까지, 셀프 네일케어가 따로 없다. 손톱 문제는 거의 이빨로 해결해 왔다고 해 될 정도니 아이에게 뭐라고 할 처지가 못 된다.
손톱 밑이 가려운 아이는 붉은 아랫살이 다 보일 정도로 바짝 열 손가락 손톱을 다 뜯어내서야 개운한 듯 평온을 찾는다. 가끔은 요가 니드라를 하듯이 발끝을 입에 가지고 가서는 발톱도 뜯을 수 있다는 시늉까지 하면서 엄마 골치를 아프게 한다.
어느 날 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다. 갑자기 아이가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왜? 무슨 일이야?"
"무서워~~"
"뭐가 무서운데? 엄마한테 말해 봐."
"응... 들쥐가... 응... 내 손톱을 먹어서 나로 변하면 어떡해? 엉엉 ㅠㅠ"
"아, 들쥐가 사람으로 변할까 봐 무서웠구나."
"응."
문제의 발단은 얼마 전 읽은 '손톱을 먹은 들쥐' 이야기였다. 아무 데나 버린 손톱을 먹은 들쥐가 그 손톱 주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전래동화인데, 역시 아이들은 이야기를 사고와 감정 전체로 흡수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생긴다는 공포가 무서웠구나, 충분히 공감해 주었다.
그런데 금방 그칠 줄 알았던 울음은 점점 커져서 대성통곡이 시작되었다.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펑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서운 일이 아니라며 달래자 아이는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들쥐가 나랑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서 엄마가 '진짜 나'를 못 찾으면 어떡해?"
그랬구나. 아이는 부모가 자신과 똑같은 여러 사람이 있을 때 자기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의 진짜 두려움을 알게 되자 제대로 된 위로를 해 줄 수 있었다.
"아니야. 엄마가 왜 못 찾아? 엄마는 우리 딸이랑 똑같은 외모를 가진 수백 명이 있어도 진짜 우리 딸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절대 걱정하지 마."
"진짜? 어떻게?"
"엄마는 딱 보면 알 수 있어. 무조건 찾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코 자."
아이는 진정되는 듯했지만 감정이 가라앉히기 쉽지 않았나 보다. 한동안 코를 훌쩍이다가 또다시 울다가를 반복하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우리끼리만 아는 암호를 만들어 보자, 몸에 어떤 표시가 있는지를 기억하자 등의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아이가 잠들고 나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나는 정말 딸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여러 사람 중에서 내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아이에게는 장담했지만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이를 똑같이 복제한다면 몸의 흉터도 같을 수도 있고 암호의 경우는 금방 노출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여러 명의 딸이 나타난다면 그 아이들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먹여볼 것이다. 요리라고는 관심도 재능도 없는 똥손으로 만든 내 요리에도 우리 딸은 "엄마 요리가 최고예요."라고 엄지를 치켜세울 것이다. 가짜 딸은 차마 맛있다고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잠에서 깬 부스스한 얼굴을 아이에게 들이밀며 "엄마 예뻐?"라고 물어볼 것이다. 만약 그때 "엄마는 공주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천사예요."라고 말해주는 아이가 진짜 딸이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진짜 우리 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손톱을 먹고 똑같은 모습으로 변한 들쥐 따위는 절대 알 수 없는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