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환은 동이 트기 전에 출근했다. 깨끗한 행주로 식기와 테이블을 닦고 지난밤 손질해둔 떡과 어묵, 양배추, 파를 손에 닿기 좋은 자리에 배치했다. 육수도 주전자에 옮겨 담았다. 아침이 서서히 번져오고 있었다. 떠오르는 햇살에 어제 건 간판이 반짝였다.
- 마음을 읽는 떡볶이 삼촌
간판 아이디어는 은경이 주었다. 겨우 포장마차에 무슨 간판이냐며 주환이 머쓱해하자 은경은 발끈했다.
“‘겨우 포장마차’라니?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않아?”
대기업에 다니는 은경이 겨우 포장마차를, 아니 포장마차 사업체를 운영하는 남자친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추켜세워주니 주환은 그저 고마웠다.
마케터인 은경의 말에 따르면 포장마차는 이미 오래전 수명을 다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요즘은 배달앱을 이용해 꽤 먼 거리의 분식점 떡볶이도 30분이면 받을 수 있으니 굳이 길거리에 서서 떡볶이를 먹을 이유가 없다는 거다. 하지만 주환에게는 제대로 된 가게를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거듭되는 취업실패 끝에 들어간 선배의 게임회사는 알고 보니 빚더미에서 겨우 연명하는 중이었다. 작업 중인 게임을 어떻게든 완성해보고 싶었던 주환은 한도껏 대출을 받아 투자금 명목으로 선배에게 빌려줬고 그로부터 1년이 채 안되어 회사는 문을 닫았다.
이제는 받아주는 직장도 더 이상 대출이 나올 구멍도 없는 주환에게 포장마차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대학 때부터 자취생활을 해온 주환은 적어도 떡볶이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떡볶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은경의 주장이었다.
“배달 떡볶이를 주문하는 대신 여기로 오게 할 뭔가가 필요해.”
“그게 뭔데?”
“학교 뒷문 우동집 기억나?”
“사람들 항상 줄 서서 기다리던 곳? 거기 맛있는지 잘 모르겠던데.”
“거긴 우동을 먹으러 가는 데가 아니거든.”
“우동집에 우동을 먹으러 가는 게 아니면?”
“거기 사장님이 사람의 운명을 보거든.”
주환은 은경을 배려해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운명이라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하지만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그 맛없는 우동집에 손님이 늘 북적인 건 사실이었다.
“어쩌냐. 난 운명을 볼 줄 모르는데.”
“운명을 보는 건 우동집 하나로 충분하지. 여기서는 다른 걸 볼 거야.”
“뭐?”
“마음.”
은경은 사람들이 입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 주환의 포장마차를 찾게 만들자고 했다. 주환처럼 다른 이의 마음을 잘 공감하는 사람도 드물다면서.
은경이야 오래 알아온 사이라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지만 처음 만난 손님의 마음을 무슨 수로 알고 공감하느냐고 되묻는 주환에게 은경이 무언가를 건넸다. 헌팅캡이었다. 팀장님 마음을 읽으려고 구한 모자인데 이제 필요 없어졌다며, 모자 가게마저 문을 닫아버렸으니 가게가 자리 잡을 때까지만 쓰자고 말하는 은경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잔뜩 묻어있었다.
환영합니다. ‘마음을 읽는 떡볶이 삼촌’입니다.
입구에 걸린 모자를 쓰시면 떡볶이 삼촌이 마음을 읽어 드립니다.
의도치 않게 비밀을 들킬 수 있으니 동의하시는 분만 쓰세요.
은경은 손수 안내판을 써서 메뉴판 옆에 나란히 걸었다. 손님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모자와 안내판에 관심을 보이는 걸로 보아 은경의 전략은 이번에도 통한 듯 했다.
손님이 모자를 쓰면 은경이 미리 주환 쪽을 향하게 세팅해둔 모니터 위로 끊임없이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환은 ‘마음을 읽는 떡볶이 삼촌’이라는 가게 이름 때문에 메시지를 하나도 놓쳐선 안 된다는 책임과 부담을 느꼈다.
모니터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음식을 앞에 두면 대부분은 먹고 있는 그 음식에 대해 생각했다. 손님들이 밖에서 어떤 시간을 겪었든 일단 포장마차에 들어선 후에는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지나온 시간을 잠시나마 잊는다는 걸 알고 주환은 내심 뿌듯했다.
손님들의 생각 데이터는 떡볶이에 대한 실시간 리뷰이기도 했다. 양이 너무 많다거나 한 접시를 다 먹고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거나 하는 피드백이 거침없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덕분에 주환은 손님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요구사항을 먼저 챙길 수 있었다.
- 너무 매워,
라는 메시지가 모니터에 떠오르면 말없이 어묵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건넸고,
- 참아야지. 집에 갈 때 붕어빵이라도 몇 마리 사가려면.
이라는 메시지를 떠올리며 열었던 지갑을 닫고 어묵 하나만 주문하는 남자에게는 뜨끈한 순대 몇 점을 서비스로 건넸다.
손님들은 자신이 직접 모자를 쓰고도 어떻게 제 마음을 알았냐는 듯 눈이 동그래졌다. 그때마다 주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안내판을 가리켰다.
주환이 만든 떡볶이를 먹으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손님도 있었다.
- 그때 거기 떡볶이 진짜 맛있었는데.
거기가 어디냐고 묻고 싶은 걸 주환은 애써 참았다. 손님의 얼굴에서 지나온 시간을 추억할 때의 아련한 행복이 묻어났고 주환은 그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주환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식이었다. 때로는 알아도 모르는 척 가만히 있어줄 때, 상대방은 되려 이해받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는 걸 주환은 알았다.
하지만 오늘 손님은 달랐다. 알아도 모르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오후 두시 무렵 혼자 온 여자손님이었다. 들어오면서부터 몸을 심하게 떨었다. 주환은 따뜻한 어묵국물을 먼저 건넸다.
감사합니다, 작은 소리로 인사하고 메뉴판을 찾아 헤매던 손님의 시선이 안내판에 먼저 닿았다. 곧이어 손님은 고개를 돌려 입구 근처에 걸린 모자를 봤다.
주환은 주문을 재촉하는 대신 잠시 기다려주기로 했다. 손님에게 조금의 온기라도 더해주려고 잠시 꺼두었던 떡볶이 냄비와 순대 찜솥에 다시 불을 붙였다.
“저기,”
움찔, 하며 주환이 하던 일을 멈추고 손님을 향해 섰다. 손님 손에 헌팅캡이 들려있었다.
“이 모자 써 봐도 되나요?”
다른 손님들처럼 재미삼아 써보려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눈앞의 손님에게는 추위를 쫓을 용도만으로도 모자가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손님들을 위해 담요와 손난로를 준비해둬야겠다고 생각하며 주환이 대답했다.
“그럼요. 편하게 쓰세요.”
손님이 모자를 쓰자마자 주환의 눈이 반사적으로 모니터를 향했다.
- 우주
모니터에 떠오른 건 단어 하나였다.
- 우주는 날, 언제쯤 받아줄까?
메시지의 내용으로 미뤄보아 손님은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모양이었다. 손님이 유난히 추워 보인 건 상대가 자기를 받아주지 않아서 느끼는 외로움 때문일까?
주환은 곁눈질로 손님을 찬찬히 살폈다. 검정 블라우스에 크림색 코트. 헌팅캡도 무난히 소화해내는 또렷한 이목구비. 큰 키. 서류철이 거뜬히 들어갈 크기의 브랜드가방. 주환은 문득 처음 본 손님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손님의 옷차림과 분위기가 은경과 꽤 닮아있었다. 은경처럼 손님도 대기업 회사원일까.
주환은 문득 ‘우주’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손님이 대기업 직장인이라면 손님이 짝사랑하는 남자도 비슷한 직업을 가지지 않았을까. 번듯한 직업에 어울리는 좋은 차도 가졌을까? 그래야 앞에 앉은 손님과 어울리지 않을까?
주환은 자신의 상상력이 처음 본 손님의 짝사랑 상대에까지 뻗친 걸 깨닫고 번뜩 정신을 차렸다. 손님 앞에 놓인 종이컵에는 어묵국물이 줄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죄송해요. 얼른 주문할게요.”
손님을 미안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으므로 주환은 손사래를 쳤다.
동시에 모니터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 커피는 별론데.
“와, 저도 그런데.”
“네?”
“저도 커피는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주환은 무심결에 대답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모자를 쓴 게 마음이 속속들이 꿰뚫어 보여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을 읽어준다는 게 사실이네요? 제 마음은 뭐라고 읽히나요?”
뇌리에 박힌 건 ‘우주’라는 이름뿐이었지만 어쩐지 그 이름을 꺼내기는 조심스러워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커피를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손님이 그게 전부냐는 표정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주환은 준비된 말도 없이 다시 입을 열어야 했다.
“저도 커피는 질색이거든요. 시큼하고 쓰잖아요. 전 가끔 커피를 만든 사람들이 세뇌시킨 게 아닐까 의심해요. ‘벌거벗은 임금님’ 아시죠?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이라고 세뇌시켜서 모두가 임금님의 옷이 보인다고 말하는 동화. 커피가 맛있다고 세뇌시켜서 먹다보니 사람들이 그 맛에 적응을 해서 맛있다고 착각하게 된 게 아닐까요?”
풋, 잠자코 듣던 손님이 웃었다.
“저는 그 정도로 싫어하진 않아요.”
가볍고 옅은 웃음이었지만 주환은 내심 뿌듯했다.
손님이 진정된 듯 메뉴판을 훑었다. 모니터에 몇 가지 메뉴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마지막에 떠오른 건 떡볶이였다.
“혹시 지금도 제 마음이 읽히나요?”
손님이 이번에는 호기심이 약간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떡볶이, 로 드릴까요?”
“네. 신기하네요. 조금 무섭기도 하고요.”
“마음이 읽히는 거요?”
“음, 그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은데.”
“이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마음을 봐버리면 더 이상 모른척할 수가 없잖아요.”
주환은 손님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방금 전 모니터에 떠오른 손님의 마음을 읽어버린 바람에 지금 주환은 메뉴에도 없는 ‘매운맛 떡볶이’를 만드는 중이었다.
- 맵게, 더 맵게, 떡볶이를 핑계 삼아 울어도 되게.
주환은 잘게 다진 땡초를 고춧가루와 섞어 팬 한쪽 귀퉁이에 풀었다. 그새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 골똘히 빠진 손님 앞에 떡볶이 접시를 놓고부터 주환의 손길은 분주해졌다. 먼저 모자와 연결된 모니터의 전원을 끄고 난로에 기름을 채웠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찌꺼기를 정리하고 종이컵도 보충했다. 상대방이 울어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종이컵에 이어 휴지까지 보충한 후에도 손님은 떡볶이가 앞에 놓인 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좀 드셔보세요.”
주환의 목소리에 손님이 그제야 접시를 내려다봤다.
“떡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보면 턱뼈와 연결된 뇌에서 맛있는 생각들이 떠오를지 모르잖아요.”
“맛있는 생각이라는 게 어떤 거죠?”
“여기 떡볶이 괜찮네. 단골이 돼야겠다, 뭐 이런 생각?”
손님이 이번에는 풉, 소리 내어 웃었다.
생각보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손님이었다. 평소보다 고춧가루를 두 배나 넣었는데도 끄떡없었다. 주환이 분주한 손길을 거두고 손님의 접시를 확인했을 때는 떡볶이가 다 비워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