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대에는 이제 빈자리가 더 많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도 부쩍 줄었다. 줄어든 게 하나 더 있다. 사장님의 발길도 뜸해졌다. 가끔 들르시는 날에도 오류검증을 마친 파일이나 반납된 모자 몇 개만 챙겨서는 서둘러 나가신다.
가게에 있는 시간은 대부분 혼자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환기를 시키고 바닥과 진열대에 쌓인 먼지를 닦는다. 그리고 업데이트된 파일 몇 개를 프로그램에 넣어 돌리면 업무는 끝. 손님이 없는 작은 가게에 알바생의 손길이 필요한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점심은 주로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예의상 밥을 차려줄까 묻던 그녀도 몇 번 거절을 했더니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대신 매일 아침 식탁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씩 놓여있다. 아빠가 살아있을 때도 그녀에게 받지 않던 용돈을 아빠도 없는 지금 받는다는 게 좀 어색하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 그걸로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1+1 도시락을 사서 하나는 바로 먹고 나머지 하나는 다음날을 위해 가게 냉장고에 넣어둔다. 가끔 1+1 오렌지주스를 살 때도 있다. 하나는 도시락과 함께 먹고 다른 하나는 집으로 가져와 식탁에 올려둔다. 아빠가 살아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으면 깍두기를 씹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오도독오도독. 진짜 혼자가 된 것만 같다. 앞으로 쭉 혼자 살아갈 시간을 예행연습하는 기분이다.
강태경을 부른 건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강태경은 줄곧 가게에 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지금까지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이제는 사장님도 찾아오는 손님도 없으니 딱히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근데 여기, 진짜 휑하다.”
강태경은 마치 자기 집처럼 이곳저곳을 훑어보더니 마침내 냉장고 문까지 열었다.
“당장 이사 갈 집이래도 믿겠어.”
“그 정도야?”
“응. 그 정도야. 너희 사장님, 곧 가게 닫으실 건가봐.”
“어째서?”
강태경이 냉장고에서 도시락을 꺼내 마치 자기 것인 양 테이블에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단 진열대를 더 채우지 않고 계시지? 게다가 더 이상 찾아오는 손님도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이유는......”
강태경이 말을 하다 말고 제육을 잔뜩 얹은 밥을 입에 물었다. 뭘 먹느라 말이 끊어지는 거야 강태경에게는 흔한 일인데도 이번에는 괜히 애가 탔다.
“확실한 이유는? 뭔데?”
“냉장고가 비었잖아. 냉장고는 생명인데.”
강태경은 장난으로 한 말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 가게에 온 날만 해도 냉장고에는 토마토주스와 우유를 비롯해 음료가 잔뜩 있었다. 더 이상 고객이 오지 않는 것도, 사장님의 발길이 뜸해진 것도, 가게가 곧 문을 닫을 거라는 추론의 근거가 될 만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지금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은 어떤 곳일까. 거기가 어디든 지금 사는 집보다는 훨씬, 비교도 안 되게 작고 허름한 곳일 테다.
“어차피 방학도 곧 끝이잖아. 개학하면 그만두려던 거 아니었어?”
내 표정이 심각해진다고 느꼈는지, 강태경이 달래듯 말했다.
“그렇지. 곧 끝이지.”
내가 그 집에 사는 것도 곧 끝이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어쨌든 집을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는 어려울 테다. 지금 가진 돈에 곧 받을 월급을 보태 보증금이 저렴한 방을 어떻게든 구한다 치고, 그 다음은? 당장 들어갈 생활비며 대학교 등록금 같은 건?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걸 쓰면 그 노트북으로 내 생각이 전송된다는 거지?”
어느새 도시락을 다 비운 강태경이 진열대 앞에 서서 흰 야구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야, 내려놔. 때 타.”
“어차피 가게 문 닫으면 이 모자들도 더 이상 필요 없잖아. 아니다. 테스트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모자가게를 여시려나? 한번 여쭤보지 그랬어.”
“요즘 얼굴도 잘 못 봐. 무지 바쁘신가봐. 가끔 들르실 때도 필요한 것만 챙겨서 급하게 나가시거든. 마치 늦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서두르셔.”
“잠깐,”
강태경이 중요한 단서라도 찾아냈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너, 월급날이 언제야?”
“그건 왜?”
“너희 사장님, 혹시 누군가에게 쫓기고 계신 게 아닐까 해서. 그럼 아주 사라지시기 전에 네 월급이라도 챙겨야......”
내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굴자 강태경이 이번에는 내 얼굴 가까이 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들어봐. 네가 본 연구일지 대로라면 사장님은 1년이 넘도록 모자만 연구하신 거잖아. 거기에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겠어. 근데 그렇게 돈 들여 만든 모자는 테스트만 하고 제대로 팔리지도 않았잖아. 게다가 네 월급에 이 가게 임대료까지 꼬박꼬박 나갔을 테니......”
“팔리지 않은 게 아니라 테스트 기간이었어.”
“그게 그거지. 수입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황당한 얘기지만 이번에도 얼토당토않은 말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옥탑에 얻은 가게. 매일 같은 옷차림. 어쩌면 이 모든 게 사장님의 경제상황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건 혹시 피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일까. 며칠 전 편의점에서 우연히 본 사장님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강태경 말처럼 사장님께 어떤 문제가 생긴 거라면, 그래서 어디론가 사라질 준비를 하고 계신 거라면.
그러고 보니 프로그램이 마지막으로 업그레이드 된지도 사흘이나 지났다.
불안감이 불쑥 들었다. 전화 어플을 열어 사장님 번호를 불러냈다. 통화 버튼을 막 누르려고 할 때였다.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