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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Oct 27. 2024

지니, 진이

병원은 가게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정문까지는 15분이지만 중환자실이 있는 건물까지는 가게 뒤 골목길을 통하면 10분 안에도 갈 수 있었다.

사장님은 며칠사이 더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모자를 전해드리자마자 서둘러 병실로 다시 들어가셨다. 병실 문에는 위아래로 긴 투명창이 나 있었다. 창 너머로 사장님이 보였다. 침대에 누운 사람은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인형처럼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사장님이 미동도 없는 그녀에게 모자를 씌웠다. 조금 전,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하신 분홍색 털모자였다.

강태경과 나는 병실 옆 복도에 나란히 붙어 섰다. 이대로 가버리면 안될 것 같았다. 병실 옆에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강진이(18)’이라고 적혀있었다. 

몇 발자국 떨어진 다른 병실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그들도 사장님처럼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옆에 선 강태경이 잔뜩 긴장한 게 느껴졌다. 


“너 이제 가. 학원 늦잖아.”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얼른 가.”

“넌? 언제까지 있으려고?”

“난 지금 알바 중이잖아. 마치는 시간까지 있어도 돼.”


강태경이 마지못하듯 돌아가자마자 나는 쪼그려 앉았다. 사장님 얼굴을 보고 갈 생각이었다. 전화 너머 사장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빠를 보내던 날 내 마음에서 들리던 소리 같았다. 날 떠나는 아빠가 너무 힘들어할까봐 애써 숨겨야 했던 두려움과 떨림. 사장님 목소리에서도 그런 게 느껴졌다.

그날,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였든, 혼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힘이 되었다. 사장님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내가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가까운 곳에 한명쯤 있는 게 혼자인 것보단 낫지 않을까.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병실 문이 열렸다.

“아직 안 갔어요?”

사장님이 눈가를 훔치며 다가왔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딱히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막상 사장님을 마주하니 그냥 갈걸 그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저렇게 큰 딸이 있는지 몰랐죠?”

“......”

“다들 그랬어요. 딸이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곤 했죠.” 

나 역시 놀랐다. 언젠가 강태경에게도 말했지만 사장님에게 가족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게 새삼 미안해서 나는 이번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바쁘게 살았거든요. 연구원이에요. 신경과학 쪽.”

“네......”

“연구원으로 일하는 동안엔 집엘 거의 못 들어갔어요. 연구실에서 늦게까지 일하다 그대로 잠드는 날이 많았죠.”

“......”

“지니는...... 어릴 때부터 뭐든 혼자서 잘 하던 애였어요. 엄마가 잘 챙겨주지 못하니까 스스로 터득했죠. 씻는 법, 가방 챙기는 법, 늦지 않고 학교에 가는 법, 숙제하는 법,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까지도.”

아빠와 둘이 살 때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그래도 아빠는 밤이면 집에 왔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는 신경을 거의 못 썼어요. 지니는 알아서 잘했고 나는 나대로 바빴으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애 키우느라 쓴 시간을 보상받으려고 기를 쓴다며 수군거리는 것도 알았어요. 근데 틀렸어요. 보상받을 시간 같은 건 없었어요. 연구실에 있을 때 나는 스스로가 아이 엄마라는 것조차 잊고 살았으니까요. 그날, 도 그랬던 거예요.”

‘그날’이라는 단어를 발음한 후 사장님은 잠시 숨을 골랐다.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아파트에 불이 났어요. 새벽에, 지니가 혼자 있을 때.”

사장님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마스크를 끼고 계셨지만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힘들면 그만 말씀하시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어쩌면 사장님이 이 얘기를 꺼내시는 게 처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jini_11 고객의 말이 떠올랐다. 물처럼 마음도 오래 한 자리에 고여 있으면 곪아서 주인을 병들게 한다는 말. 그러지 않으려면 마음이 어디로든 움직여야 하고 그러려면 누군가 물어주고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jini_11 고객이 그녀의 팀장님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장님 마음에 구멍을 내어 줄 역할, 내가 해주기로 했다.

“많이, 놀라셨겠어요.”

사장님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날 밤 지니는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사장님은 연구에 집중한 나머지 진동이 울리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지니가 연기를 피해 베란다 문을 열고 뛰어내린 건 소방차가 도착한 직후였다. 지니는 곧바로 구급차에 실렸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깨어나지는 못했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밥을 먹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고 2년째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전화를 받으셨더라도...... 막을 수 있는 사고는 아니었을 거예요.”

나는 조심스레 용기를 냈다. 그건 내가 오래 전부터 듣고 싶던 말이기도 했다.

내가 아빠에게 더 잘해줬다면, 아빠 말을 조금 더 잘 들었다면, 아빠가 아침마다 챙겨준 과일주스를 양보했다면, 아빠가 조금만 일해도 되게 욕심을 덜 부렸다면, 아빠에게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이라도 받아보라고 단 한번이라도 말했다면...... 그랬다면 아빠는 아프지도 그렇게 갑자기 죽지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심 누군가 해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미 일어나기로 예정된 일이 일어났을 뿐이야.


“맞아요. 전화를 받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었을 거예요. 지니처럼 뛰어내리지 않고 구조를 기다리던 옆집 사람들도 연기 때문에 죽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있었다면 적어도,”

사장님은 목이 메는 듯 침을 한번 삼키셨다.

“적어도 지니가 조금은 덜 무서웠겠죠.”

“아......”

“난 그 애 마음을 잘 헤아리는 엄마는 아니었어요. 그랬다면 지니를 늘 혼자두지도 않았겠죠. 실은 마지막으로 대화한 게 언제였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요. 지니가 평소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뭘 좋아했는지, 엄마인 내게 뭘 기대했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엄마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혹시, 그래서......”

“네. 그래서 마음을 읽는 모자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잠자듯 누워만 있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욕심이 났죠. 아이와 못 나눈 대화를 이제라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동료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어요. 지니의 뇌는 이미 생각하는 기능을 잃었다고요. 물론 사고 후 뇌 기능 대부분이 손상되긴 했죠. 하지만 완전히 손상된 건 아니었거든요. 때때로 하품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가끔이지만 자극에 반응하는 모습도 보였죠.”

“모자로 대화를 나누려 하신 거네요.”

“네. 하지만 그 전에 확신이 필요했어요. 모자에 결함이 없다는 확신이요. 모자에 결함이 있다면 지니의 생각을 왜곡할 수 있잖아요. 지니는 맞다 틀리다 말할 수 없는 아이니까요. 뇌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으니 뇌파도 약했어요. 그만큼 뇌파를 읽는 센서의 민감도가 높아야했어요. 그게 테스트를 진행한 이유였죠. 지니의 상태는 좋아지지도 않았지만 더 나빠지지도 않았거든요. 급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두렵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장님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며칠 전 갑자기 심장박동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가게에 있을 때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주 잠깐이지만 심장이 멈췄었다고요. 그 전화를 받고 바로 가게에서 뛰쳐나왔어요. 언제든 지니 옆에 있으려고 가까운 곳에 구한 연구실인데도 그날은 너무 멀더라고요. 지니한테 가는 길이.”

“그래서 요즘 가게에 못 나오셨던 거고요.”

“네. 그날부터는 지니 옆을 한순간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지니의 심장박동이 느려질 때마다 내 심장박동은 끝없이 빨라졌죠. 의사선생님이 그랬어요.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지금 스스로 하는 것들...... 호흡 같은 것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바로 몇 시간 전 들은 얘기에요.”

“아.”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지체할 수가 없었죠. 진작 준비가 되었지만 사실은 두려워서 미루고 있었던 그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사장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삼키느라 숨소리만 거칠어졌다.

나는 복도 끝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아와 건넸다.

“괜찮으세요?”

물을 마시고도 진정이 안 되시는 듯 숨을 고른 후 사장님이 휴대폰을 열었다. 마음을 읽는 모자 어플이 실행 중이었다. 사장님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휴대폰을 내게 건네셨다. 직접 확인해보라는 의미 같았다.


지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짧은 순간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왜 이제야 자기 마음에 귀를 기울이냐며 원망했을까, 아니면 살려달라고 애원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기는 괜찮으니까 엄마더러 울지 말라고 했을까. 

나는 긴장한 채로 전송된 메시지 보관함을 눌렀다. 어쩌면 여기 저장된 생각은 죽기 전 며칠간 아빠가 떠올린 생각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알 방법이 없는 아빠의 생각들. 뭐였을까.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니가 털모자를 쓴 걸 분명 봤는데.

내가 의아한 눈으로 사장님을 쳐다봤다. 

“오류......인가요?”

사장님이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들 말이 맞았어요. 지니는 사고 후 생각하는 능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잠자듯 숨을 쉬고 가끔 하품도 하지만 아무 생각도 못한다는 말이 옳았던 거예요.” 


빈 화면처럼 내 머릿속도 텅 비는 기분이었다. 지금껏 사장님이 모자를 연구하고 개발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지니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그 기대가 좌절돼 버린 거다. 사장님을 어떤 말로 위로해야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장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다행스러워서.”

“다행......스러워서요?”

“네. 다행스러워서요. 나는요. 지니 마음을 읽는 게 사실은 두려웠거든요.”

“......”

“지니가 아파하고 있을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혹시 더 살고 싶다고 생각할까봐, 움직이고 말하고 엄마를 보고 싶어할까봐. 그건 내가 아무리 애써도 해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근데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외로워하지도 않았다는 거잖아요. 적어도 그 애가 더 이상 아파하고 있지는 않다는 거니까...... 그게 너무 다행스러워요. 이제야 마음이 놓여요.”

사장님은 그 말을 끝으로 울음을 참는 것도 포기하셨다. 주저앉은 채 무릎에 파묻은 고개를 한참이나 들썩이셨다. 그러면서도 울음소리는 끝내 참으셨다. 혹시나 벽을 넘어 지니에게까지 들릴까 두려운 듯.

나는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은 오늘도 같은 신발을 신고 계셨다. 앞코가 닳은 검정색 단화였다. 오른쪽과 왼쪽이 바뀌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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