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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Oct 27. 2024

우주

사장님에게서는 그날 이후 연락이 없었다. 지니가 떠난 것도 나는 병실이 비워진 걸 보고야 알았다. 사장님과는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며칠째 찾아오는 손님도 업데이트되는 데이터도 없어 나도 더 이상 가게에 나가지 않았다. 며칠 후 내가 계산했던 것보다 많은 액수의 월급이 입금되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방을 알아봤다.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은 예상대로 많지 않았다. 다세대 주택의 작은 방 하나, 혹은 냉장고와 책상과 침대를 레고처럼 끼워 넣은 고시원 방이 전부였다. 방은 창문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화장실이 내부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창문 하나에 5만원, 화장실 하나에 5만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방은 고시원으로 치면 최상급이었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막막해졌다. 학교를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야했다.


오랜만에 가게에 간 건 이력서 파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금방 또 필요해질 줄 모르고 모자가게에 입사하자마자 이력서를 삭제해버렸다. 내가 제출한 이력서 파일이 사장님 노트북에 저장돼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사장님을 만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장님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가게는 내가 마지막으로 나올 때 모습 그대로였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은 가게는 스산한 기운마저 풍겼다.

다행히 노트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력서 파일만 찾아 얼른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트북 전원을 켜자마자 내 시선은 습관적으로 정렬된 폴더로 향했다. 초록색으로 바뀐 폴더가 하나 있었다. 

jini_11. 

그 손님이 가져간 모자다. ‘모기’가 반복된다고 씩씩대며 찾아왔던 손님, 사장님 눈이 퉁퉁 부어있던 날 모자를 반납하러 왔던 손님. 그때 같이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다가 대화를 주고받다가 정작 손님의 모자를 돌려받는 건 잊은 채 헤어진 게 떠올랐다.

무심결에 폴더를 끌어다 프로그램에 넣었다. 꽤 많은 분량의 텍스트가 떴다. 전송된 생각데이터의 생체신호가 각기 달랐다. 모자를 쓴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뜻밖의 상황에 나는 이력서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도 잊고 홀린 듯 스크롤을 올렸다. 눈에 띄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

 우주


내 이름이다. ‘우주’는 텍스트 전반에 걸쳐 꽤 여러 번 반복되었다. 나는 텍스트 파일의 맨 위로 올라가 ‘우주’라고 검색해보았다. 화면은 jini_11의 데이터에서 맨 처음 ‘우주’가 등장한 지점을 보여줬다.


- 우주는 날, 언제쯤 받아줄까?


뒤통수가 저릿해졌다. 거기서부터 나는 같은 생체신호로 표시된 사용자의 데이터를 읽기 시작했다. 단어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히 읽었다. 데이터는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모두 다.

jini_11의 데이터에는 또 한 가지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었다. 그건 생체신호와 상관없이 모든 사용자에게서 반복되고 있었다.

‘떡볶이’

‘마음을 읽는 떡볶이 가게.’

인터넷에 검색하자 누군가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이 떴다. 눈에 익은 헌팅캡과 안내판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 입구에 걸린 모자를 쓰시면 떡볶이 삼촌이 마음을 읽어 드립니다. 


포장마차 외부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주변 가게 상호를 검색해 떡볶이 가게 위치를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이력서 따위 까맣게 잊고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탔다.

포장마차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바람을 가르듯 급하게 나오는 남자와 마주쳤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옮기면 포장마차 안이었다. 두터운 방한비닐 너머 누군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방한비닐 사이를 가르며 들어섰다. 

내가 이곳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앉아있었다.

“......”

“......”

“네가 여긴 어떻게?”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었다. 내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놀라서 내뱉는 혼잣말 같았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여러 생각이 두서없이 떠올랐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할지는 준비해두지 않았다. 곧 봄이지만, 여전히 공기는 차가웠고 입은 얼얼했다.

머뭇거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마차에는 볼일이 있는 척 들어갈 화장실도, 내 방도 없었다. 그렇다고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돌아나갈 수도 없었다. 

상대방도 달리 시선을 둘 데가 없다는 듯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한 적이 없었다.






“뭐야, 겨우 꺼낸 말이 은행에 같이 가달란 거였다고?”

강태경이 남은 폴라포를 입에 털어 넣으며 파랗게 물든 입술을 실룩거렸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월급이 든 통장은 이체한도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걸 풀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포장마차에서 서로를 마주 볼 수밖에 없는 어색한 상황에서 마침 그게 떠올랐고 나는 같이 은행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대화를 나누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엔 우리는 너무나도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좀 더 그럴듯한 대화를 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럴듯한 대화가 어떤 건데?”

“뭐, 계속 같이 살고 싶다거나…….”

눈치 없는 강태경이 어쩐 일로 내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대꾸 없이 가만히 있자 강태경은 한 번 더 내 눈치를 쓱 보더니 물었다.

“같이 살고 싶은 거 아냐?”

“...... 잘 모르겠어. 옆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좀 무섭긴 해.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는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봐. 안 무섭겠냐.”

나도 모르게 나온 진짜 속마음이었다. 여태 방을 구하지 않고 계속 알아보기만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은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워서일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떠날 마음을 접지 않은 건 그럼에도 결국 혼자가 되어야 한다면 남는 쪽이 아니라 먼저 떠나는 쪽이고 싶어서였다. 일방적으로 남겨지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야, 서우주. 나 조금 서운한데? 네 옆에 아무도 없긴 왜 없냐. 내가 있잖아.”

“네가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왜 의미가 없어? 이런 식이면 조금이 아니라 많이 서운한데?”

“우리는 어떤 걸로도 묶여있지 않잖아. 언제든 멀어질 수 있는 사이지. 쉽게, 또 가볍게.”

“와,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는 달리 생각할 방법이 있냐고 되묻듯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너랑 멀어지기 싫어.”

강태경이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최대한 무심해보이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우리도 묶인 거야. 꼭 가족 같은 걸로 묶여야 묶인 거냐? 가족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거야? 서로 마음도 모르는 가족이 얼마나 많은데.”

틀린 말은 아니다. 고객들의 데이터만 봐도 그랬다.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가족들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서로에게 더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여겨지는 가족이 세상에 꽤 많이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진짜 가족과 헤어진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건 아니다.


나는 말과 눈물을 동시에 삼켰다. 지금은 차라리 가벼운 농담을 툭 툭 던져줄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강태경이 너무 진지하다.

“내가 아침마다 모닝콜 해 줄까?”

“생사확인용이야?”

“풉, 뭐 그렇다고 하자.”

“너한테 여자친구가 생기면? 싫어할 수도 있잖아.”

“뭘? 널?”

“뭐, 질투할 수도 있고.”

“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어째서?”

강태경이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역시나 그럴 일은 없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없어. 걱정 마. 걔는 널 질투하지 않아.”

“너 지금 그 표정 무슨 의미냐? 왜 질투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데?”

“그거야 네가......”

“내가 뭐?”

“아냐. 나중에 얘기하자. 아줌마랑 만날 시간 되지 않았어?”

강태경이 키득거리며 먼저 일어나서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나도 뒤따라 나왔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만나기로 약속한 은행이었다.

“근데 있잖아. 은행에 같이 가면 네 통장에 얼마가 들어있는지도 다 알게 되시는 거 아냐?”

“아마도 그렇겠지?”

“어디서 났는지, 그걸로 뭘 하려던 건지 물으면 솔직히 말할 거야?”

“응. 사실은 그래서 은행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한 거야. 같이 살자는 말은 도저히 못하겠거든.”

“응? 뭐라고?”

거리의 소음 때문에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강태경이 되물었다. 나는 조금 전 날 놀린 데 대한 복수로 다시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도로 건너에서 날 먼저 발견했다. 허리 언저리에서 주춤하던 손바닥이 머리 높이까지 올라가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주머니에 들어있던 손을 꺼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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