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9) - 天長地久, 그리고 Ethica-
에티카 제4부는 Part IV. Of Human Bondage, or the Strength of the Emotions.(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중 48, 49 정리(Proposition)는 이러하다.
Prop. XLVIII. The emotions of over-esteem and disparagement are always bad. (과대평가와 비난의 감정은 언제나 악이다.)
Prop. XLIX. Over-esteem is apt to render its object proud. (과대평가는 사람을 쉽게 자만하게 만들 수 있다.)
340여 년 전 스피노자의 이야기에 전율을 느낀다.
이 나라 중앙정부의 집권세력, 지방정부의 집권세력, 그리고 지방교육권력까지…… 스피노자의 이 말은 마치 총알처럼 이런 세력들의 실체를 관통하고 있다.
48에서 말하는 ‘과대평가’와 ‘비난’은 주관의 악마성에 기인한다. 대체로 과대평가는 자신을 향하고 비난은 타인을 향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자기 기준이다. (기준의 문제는 또 다른 많은 논의의 기초가 된다.)
자기 기준의 폐해弊害를 스피노자는 49에서 ‘자만이라고 말한다. 자만은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풀이된다. 이 말을 들으니 나 역시도 가끔 이럴 때가 있으니 부끄러워진다.
스피노자보다 2300년 전에 중국의 노자는 이 말을 또 다르게 말했다.
도덕경 7장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천지는 영원한 것, 천지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나만 살아야 하겠다’ 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니, 이로 인해 영원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는 不自生(부자생)이다. 부자생은 다른 말로 하면 무사無私, 즉 ‘사사로움이 없다.’ 또는 ‘자신을 높이거나 잘난 체하여 얻고자 하는 이득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자만심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또는 누구나 인정하는 위치에 올라 자신을 높이지 않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겸양’과 ‘겸손’을 갖춘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으로만 가능하다. 사실 ‘겸양’과 ‘겸손’할 수 있는 바탕은 끝없는 ‘자기 혁신’과 ‘자기 확신’에 근거한다.
노자의 이야기와 스피노자의 이야기는 엄밀하게 통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해 놓고 보니(오로지 나의 견해일 뿐이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처께서도 사만(四慢 – 비하卑下, 사邪, 증상增上, 아我)을 경계하였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가지는 한계를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