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8)

by 김준식

노자 도덕경 산책(8)


입추! 24절기 중 13번째 절기로서 가을에 들어선다는 날이다. 기준이 중국의 화북지방이라 우리나라는 이때가 더위의 절정이다. 역시 오늘도 그 이름값을 한다. 34도를 넘는 더위다. 습도조차 높아 한증막이 따로 없다.


태양의 복사열로 올라가는 온도는 지극히 객관적이지만 그 온도를 느끼는 더위는 순전히 주관적이다. 나의 더위는 온전히 나의 것이므로 온도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이 내 주위를 맴돌며 나를 덥게 하지만 그 더위는 매우 주관적이다. 에어컨 냉기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내가 집중하는 곳에 늘 세상과 그 내부의 갈등이 있다. 내가 관심 두지 않는 곳은 언제나 평화요 자유며, 완전함이다. 뒤집어보면 내 마음이 모든 분란과 갈등의 원인이요 시작이다. 하여 마음잡아 두고 함부로 뻗치지 않게 해야 하는데 날이 더우면 그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온도가 올라가면 스스로 고급스럽다고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일순 무가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감정이란 온도와 습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함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의 느낌이란 따지고 보면 그 계절의 온도와 습도에 의해 자극되는 인간의 동물적 반응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대단한 인간의 고급 감정으로 착각하게 된 것은 오래된 우리의 문명과 교육, 그리고 습관 탓이다.


노자 《도덕경》 45장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躁勝寒 靜勝熱. 淸靜, 爲天下正.(조승한 정승열. 청정, 위천하정.)


조(躁)는 빠르다, 혹은 성급하다는 뜻이다. 성급하거나 빠르면 추위를 이긴다는 말이기도 하고 추위를 이기는 방법은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말로 의역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고요하면(靜) 더위를 이길 수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고 ‘더위를 이기는 것은 고요해지는 것이다’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성급’과 ‘빠른’을 제시하고 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고요함을 제시한다. 조(躁)는 정(靜)을 말하기 위함이다. 도덕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요함’이다. 더위를 이기는 것은 고요함인데 더위는 세상의 혼란이나 무질서, 나아가 혼탁한 사람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것을 평정하는 것은 고요함이다.


고요해지려면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가라앉아야 되는 시간, 조용해지는 시간, 멈춰 서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맑고 고요해진다.(淸靜)


문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시간이 없거나 또는 그런 시간적 여유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광포한 문명에 이미 영혼을 뺏긴 우리는 자동차 신호대기 시간조차 지루해하며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세상의 소식에 빠져든다. 하물며 그 짧은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는데 모든 것이 가라앉거나 조용해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노자가 살았던 2600년 전 당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느렸던 그 시대의 더위는 가만히 앉아 견디면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가만히 기다리기에는, 모든 것이 가라앉기에는 너무나 바쁘고 험하며 난감한 세월이다.


그래서 이런 더운 날 우리는 계곡을, 바다를 찾고 집에서 에어컨을 켜서 냉기를 한사코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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