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되는 스피노자의 생각

by 김준식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되는 스피노자의 생각


실존하는 것에는 거의 이름이 있다. 동시에 그 이름은 실존하지 않아도 남게 된다. 그렇게 존재와 이름 사이에는 분명 틈이 있다. 여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그 틈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마침내는 그 틈이 너무 커져서 공간이 되고 그 공간으로 인해 이름과 존재 사이의 상관관계가 모호해지는 단계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처음 명명된 실존의 이름이 사실 그 실존에 부합하는지 조차 애매해지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것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신’의 문제다. ‘신’이라고 명명된 존재와 ‘신’이라는 이름 사이의 공간은 우주만큼 넓거나 명명된 이름 그 자체일 수 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그는 ‘에티카’의 첫 부분을 Concerning God.(신에 대하여)로 했는지 모른다.


스피노자는 ‘에티카’라는 책 제목 뒤에 ‘기하학적 순서에 맞춰(Demonstrated in Geometrical Order)’라는 부제를 달았을 정도로 모든 문제를 수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심지어 그들의 ‘신’조차도. 그리고 더 이상 논증이 필요 없는 각 정의, 정리, 공리의 끝에 Q.E.D.(수학적으로 증명이 완료됨)이라는 표시까지 해 두었다.


그 기하학적 장치 중 하나가 바로 Axiom(공리)이다. 공리公理란 어떤 이론체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근거가 되는 명제命題이다. 즉, 다른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한 전제로 이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가리킨다. 참된 지식(이 자체도 매우 애매하지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근거를 소급하고 소급해 보면 더 이상 증명하기가 곤란한 순간(명제)에 다다른다. 이때 이것(상황)을 나타낸 것이 바로 공리이다. 증명이 필요한 명제 중 공리에 의해 증명이 완료된 명제를 정리(Proposition)라고 스피노자는 부른다.


1부. 신에 대하여> Axioms VII. If a thing can be conceived as non-existing, its essence does not involve existence.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된다면, 그 본질에는 존재가 포함되지 않는다.)



기가 막힌 스피노자의 정리가 아닌가! 이 공리에 있는 '어떤 것(thing)' 대신에 ‘신’을 넣어보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되면 ‘신’의 본질에는 존재가 포함되지 않는다. 즉 ‘신’은 ‘존재’ 혹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뭐라 반박할 수 없는 명료함이 있다. 하지만 명징하고 교묘한 논리 뒤에는 반드시 뭔가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따른다.


그 공허함을 도덕경이 메우고 있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났고 유는 무에서 생겨났다.”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도덕경 40장 일부)


스피노자가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에 골몰한 반면, 존재를 바로 ‘무’로 환원시켜 버리는 다소 비약적인 때론 혁명적 생각이 바로 노자께서 한 말의 핵심이다.


노자의 말을 좀 더 생각해 보자. 먼저 모든 '존재(有)'는 만물의 생성 근거라고 이야기한다.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만물’과 ‘有’는 동의어가 아니다. 여기서 ‘有’는 스피노자의 '본질'에 가깝다. 스피노자의 '본질'에는 '존재'와 '존재 아닌 것'들이 섞여있는 '혼돈'의 상태다. 그 '혼돈'의 상태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들이 바로 '천하 만물'들이다.


그 바탕이 되는 '존재'와 '존재 아닌 것'들의 근원이 '무無'라는 이야기다. 본래 '무'는 처음부터 '공백이 아니라 있다가 없어진 상황을 나타내는 한자다. (수풀이 우거진 모양 + 火, 즉 완전히 타서 없어진 상태) 그러니까 '존재'의 형식을 가졌거나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 가득한 곳에서 '有'가 분리되어 나왔으니 '有'의 속성은 존재와 존재 아닌 것들의 혼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有'로부터 천하 만물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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