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의 인식론(1)
20세기 초 영국의 철학자 스튜어트 뉴턴 햄프셔 경(Sir Stuart Newton Hampshire FBA , 1914~ 2004)은 그의 책 『The age of reason; the 17th century philosophers』(이성의 시대; 17세기 철학자들)에서 스피노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스피노자 연구를 역사적으로 검토해 보면 스피노자를 자유사상가이자 유대-기독교 신학의 파괴자로, 순수연역적 형이상학자로, 논증적 추리를 넘어서는 직관적 이해의 수준을 상상하는 준신비론자(near-mystic)로, 끝으로 19세기의 조잡한 물질주의자들과 세속적 도덕주의자들을 앞질러 보여주는 과학적 결정론자로 파악하고 있는데, 사실 이 모든 가면들이 그에게 씌워져 왔고, 이들 각각의 가면이 완전히 어긋나 있지는 않다.”(The age of reason; the 17th century philosophers, [New York] New American Library, 1956, 99쪽 이하)
‘기하학적 방법’에 의한 ‘윤리학’이라는 ‘에티카’의 연구 제한점은 데카르트가 만들어 놓은 다소 부실한 사유체계를 어떻게든 완전하게 해석해 보려는 스피노자 나름의 노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통설에 가깝다.
어쨌거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는 매우 뛰어난 철학자였으며 동시에 위대한 유대-기독교 신학의 파괴자임은 분명하다. 그의 에티카 속에 들어있는 인식론에 대하여 살펴보자.
1. 에티카의 불교적 이해
제1부-신에 대하여> 공리 4
4. 결과의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며 그것을 포함한다.
제1부-신에 대하여> 공리 5
5. 서로 아무런 공통된 것도 가지지 않은 것들은 서로 상대편에게 인식될 수 없으며, 또한 개념은 다른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여기서 공리를 다시 한번 더 설명하면, 공리(公理, Axiom)는 어떤 이론체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근거가 되는 명제命題다. 어떤 다른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한 전제로 이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가리킨다. 지식이 참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하나 근거를 소급해 보면 더 이상 증명하기가 곤란한 명제에 다다른다. 이것이 바로 공리이다.
즉 공리 4를 분석해 보면 결과와 원인은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불교의 연기緣起와 겹쳐진다.
하지만 공리 5는 공리 4의 이야기와는 매우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의도는 인연생기의 본질적 함의, 즉 무자성無自性((nir-svabhāva), 즉 고정 불변하는 자성自性이 없다. 모든 현상은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에 지나지 않으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티카 속에서 개념은 자아와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자주 발견한다. (신에 대하여> 공리 6. 참다운 개념은 자신의 대상과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어지는 정리(증명이 필요한 명제 중 증명이 완료된 명제)에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부연敷衍하고 있다.
제1부-신에 대하여> 정리 3
3. 서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물들은 그것들 중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만일 사물들 상호 간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면 그것들은 서로 상대방에 의해 인식될 수 없다.
이 말은 앞의 공리 5를 공리 4에 연결시키려는 스피노자의 노력으로 보인다. 데카르트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이원론은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늘 공격의 대상이었다. 스피노자 역시 데카르트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이원론의 함정을 넘어서려고 노력한다.
대상과 주체를 분리하고 그 분리 원인을 공통점이 없는 것으로 했는데 공통점은 역시 위에서 말한 연기가 될 것이며 전체적으로 공관의 태도를 견지한다. 공관空觀이란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이 없고 고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태도다.
2. 에티카의 인식론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인식론의 궁극목적은 사실 신을 어떻게 인식하는 가였다. 이점에서 신을 직관하는 목표였기 때문에 언제나 개념의 우위에 직관을 두려고 노력했다.
제2부 -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정리 19. 20
19. 인간 정신은 오직 신체가 받는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만 인간 신체 자체를 인식하며 또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인간 정신은 인간 신체의 관념이나 인식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육체와 정신의 논리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스피노자였지만 아직은 데카르트의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인간 정신을 이미 인간 신체의 우위에 놓고 설명하고 있다. 즉 직관과 개념의 층위를 인정한다.
20. 신 안에는 또한 인간 정신에 대한 관념이나 인식이 있다. 이것들은 인간 신체의 관념이나 인식과 같은 방식으로 신 안에 생기며, 같은 방식으로 신에게 귀속된다.
신이라는 실체 속에 내재하는 인간 정신을 인정하고 다시 그 모든 것을 신에게로 귀속시키는데 이것은 스피노자의 인식론의 정점이자 분명한 한계라고 생각한다.
‘마명’이 저술한 『대승기신론』에는 “일체 중생은 모두 진여를 가진다.”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그것이 불성이다. 이 불성은 불교의 일반적 이론에 의하면 여래(신)의 지혜 속에 있다고 한다. 정리 20의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
이런 면으로 추정해 본다면 앞서 햄프셔의 주장과 같이 스피노자는 직관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신비적이고, 형이상학을 추구했지만 아직은 여전히 데카르트의 연역적 독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