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와 법성게

by 김준식

에티카와 법성게


Part I. Concerning God.


공리(Axiom)


2. That which cannot be conceived through anything else must be conceived through itself.(영어)


2. Id quod per aliud non potest concipi, per se concipi debet.(라틴어)


2. 다른 것에 의하여 파악될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에 의하여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전 중에 궁구 하다가 오후에 글을 쓴다.


1. “다른 것에 의해 파악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다른 것’(anything else)은 ‘어떤 것’이라는 의미로 바꿔 쓸 수 있다. 라틴어 ‘concipi’는 ‘concipio’가 원형으로서 영어 ‘conceive’와 비슷하지만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다. ‘상상하다’ 혹은 ‘생각하다’가 영어 ‘conceive’의 뜻이라면 라틴어 ‘concipio’는 ‘사로잡다’ ‘받아들이다’ ‘잉태하다’의 뜻이다.


영어 단어 자체로는 능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영어 번역에서는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다. 라틴어는 단어 자체가 수동적인 의미다. 수동태의 표현이 아니라면 영어 ‘conceive’는 특정의 대상물에 대해 내가 품는 생각이고, 그 특정의 대상물이 나(우리)에게 주는 이미지가 라틴어 ‘concipio’다. ‘내가 특정 대상물을 파악하려고 하는데 그 대상물이 파악되지 않는다면’과 ‘나에게 특정 대상물의 이미지가 다가왔지만 쉽사리 그 대상물이 파악되지 않는 것’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그런데 이 말의 대 전제(즉 제목이)가 ‘신’이라고 본다면 신에게 다가오는 특정 이미지인지 아니면 신이 보고자 하는 특정 대상물인지에 대해 우리는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전자든 후자든 파악되어야 한다. 문제는 ‘다른 것에 의해’라는 표현이다. 이를테면 비교 대상이 없는 특정 존재는 쉽게 파악이 어렵다. 따라서 오로지 신에 의해서만 파악된다. 그런데 그 신은 또 다른 대상, 혹은 존재로서의 신이 아니라 파악되는 대상 그 자체의 본성을 말함이다. 우리가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보는 ‘God’는 거의 이런 의미이거나 또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자신에 의하여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


스피노자는 왜 결연한 어조로 반드시 파악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표현을 썼을까? 영어 해석만 그런 것이 아니라 라틴어도 비슷한 의미다. ‘debet’가 ‘반드시’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즉 “자신에 의하여 반드시 본질적으로(‘per se’) 파악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알려고 하는 것이 ‘파악될 수밖에 없다’로 이해할 것인지, 아니면 조건 없이 ‘파악될 수밖에 없다’로 이해할 것인지 애매하다. ‘파악되어야만 하는지’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까? 스피노자의 생각에 다가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다시 맨 처음 ‘신’을 정의한 대목으로 돌아가보자.


1. 나는 ‘자기 원인’이란 그것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또는 그것의 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Per causam’(라틴어, 자기 원인)과 마주한다. 이 문제에 대한 위대한 철학자들의 논의는 편의상 건너뛰고 용감하고 순수하게 나의 생각을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자면,


‘나’의 본질(‘나’라고 인식될 수 있는 이미지, 혹은 정신)이 이미 ‘나’의 육신(‘나’라고 표상되어 있는 실체)을 포함한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인데(정신이든 실체든 모두 ‘나’이므로 분리시켜 생각하기 곤란하다.)……스피노자는 아마도 데카르트의 생각(정신과 육체를 분리한 이원론)에 경도되어 이렇게 논리를 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문득 ‘법성원융무이상’이 생각났다.


3. 법성원융무이상


화엄경의 종지宗旨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통일 신라의 고승이었던 의상은 화엄경에 대한 이해를 ‘화엄일승법계도’로 남겼다.(이른바 법성게法性偈로서 화엄경의 요약본이다. 용수 보살의 약찬게略纂偈와 함께 화엄경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화엄일승법계도’는 화엄경에 대한 의상 스스로의 깨달음을 7언 30구의 게송으로 도해한 것으로서 첫 구절은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으로 시작하여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로 끝난다.


법성法性이란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존재가 본래 원리를 그의 성품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것에 의하여 파악될 수 없으니 그 자신에 의하여 파악되어야 한다는 스피노자의 이야기가 비슷하게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이 법성에 따르니 이것을 불교에서는 '제법諸法, sarva-dh-arma'이라고 표현한다.


무상無常한 존재 속에 불변하는 법성法性이 있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이나 이것은 법성에 어떤 구체적 형상이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추측과 억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법성은 생멸 변화하는 모든 형상으로부터 초월하여 존재하므로 만약에 어떤 형상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존재와 그 생멸 변화에 일관하여 존재하는 상주 법성은 아니다. 자기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또 그 법성을 일체 존재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봐서도 안 된다. 전혀 다른 것이라면 일체 존재의 생멸 변화에 그런 법칙성으로 나타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법성과 존재는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또 완전히 다르다고도 할 수 없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상은 이것을 그의 법성게 첫 부분에 ‘법성원융무이상’(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다.)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다시 처음 궁구했던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다른 것에 의하여 파악될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에 의하여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성은 원융하므로 선후를 따져 증명할 수 없으니 두 모습이 아니다. 즉, 그 자신에 의해 파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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