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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19. 2017

대학을 위한 고등학교 교육


대학을 위한 고등학교 교육의 현실.


인구 40만도 미치지 못하는 중소도시 시내 인문계 고교에 2017년 올해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는 나는 요즘 참으로 생경스런 풍경을 자주 목격한다. 오늘도 이런 일이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학기 중에 ‘공로상’을 준단다. 이유인즉 고3들이 학년말이 끝나고 공로상을 받으면 대학 진학에 불리하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란다. 형평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1, 2학년은 1학기 말에도 ‘공로상’을 받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공로상’은 말 그대로 1년 동안 학급 및 학교에 공로가 있는 학생을 시상하는 것인데 학기 중에 그것도 1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공로상을 시상하는 것은 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형태인가 의심이 간다. 


초ㆍ중등교육법, 제45조에 의하면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이것이 현행 고등학교 교육의 법적인 목표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이미 대학 진학을 위한 하위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법 조문에는 ‘대학 진학을 위해’라는 말은 단 한 구절도 없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해’ 봉사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대학 진학이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교육목적을 지배하는 지금의 기이한 구조이면에는 자본의 논리가 숨어있다. 자본의 논리란 교육행위와 교육목적을 자본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처럼 자본의 기준에 의해 모든 교육적 행위를 調整하고 裁斷해버린다.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극명한 예는 바로 교육을 단기간의‘성과’로 측정하는 데 있다. 즉, 고등학교 교육의 성과는 “대학 진학을 많이 했는가?” 또는 “얼마나 좋은 대학에 진학했는가?” 가 그 기준이다.


방학 중 교사 대상 연수 제목의 대부분은 “배움 중심”,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이 단어는 현 경상남도 교육감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육감은 얼마 전 초, 중등 교감 연수에서 자신의 지난 3년 동안의 공, 과를 말하면서 수업의 변화를 특히 강조했다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경남교육청은 경상대학교 대학 진학 박람회에 대학에 잘 가는 ‘학생부 전형 토크콘서트’를 주관하여 대학에 잘 가는 방법을 설명했다. 수업을 바꿔 좋은 대학을 가자는 것인가? 아니면 대학을 잘 가기 위해 수업을 바꾸자는 것인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선진 교육, 즉 다양한 수업방법의 변화와 교사의 변화를 요구한다. 무엇을 위해? 지금의 분위기라면 좋은 대학을 위해서인 모양이다. 입시 교육이 살인적이라고 말하면서 한쪽으로 대학을 위해 모든 것을 바꾸고 또 한쪽으로는 수업방법과 교사의 변화를 촉구하는 지금의 이 상황이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인 내게는 매우 비 논리적인 풍경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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