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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01. 2018

데카르트를 생각하는 주말(1)

어젯밤 강의의 주제는 데카르트였다. 스피노자 강의를 시작한 지 약 4주가 지났는데 스피노자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데카르트를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함이 목적이었지만 워낙 난해한 부분이 많아 수강자들은 어려워했다. 


2013년 연구년 동안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천천히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내용을 정리한 것을 본다. 지루한 비가 주말을 관통할 모양이다. 주말을 어찌 보낼까 걱정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가는 산에도 갈 수 없으니 말이다. 하여 지루한 데카르트에게 매달려 주말을 보내려 한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정리를 살펴본다.  



René Descartes(르네 데카르트)의 Discourse on the Method(방법 서설, 원전의 완전한 제목은 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erité dans les sciences :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여러 가지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


1부. Various considerations touching the Sciences

(학문에 대한 다양한 접근, 혹은 고찰)


2부. The principal rules of the Method which the Author has discovered

(데카르트가 찾아낸 학문 방법의 주요 규칙) 


3부. Morals and Maxims accepted while conducting the Method

(적용된 방법으로부터 용인되는 도덕 규칙)


4부. Proof of God and the Soul

(신과 영혼의 증명)


5부. Physics, the heart, and the soul of man and animals

(물리학, 심장,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영혼)


6부. he explains that for these reasons he has been slow to publish

(집필의 이유)


데카르트 프랑스 중 북부 앵 드르에 루 아르 주, 라 헤용 투렌(지금은 Descartes, Indre-et-Loire로 바뀜)에서 1596년에 태어났다. 서양 철학에서 그의 위치는 근대 철학의 시작점에 있다. 이전 시대가 플라톤을 위한 시대였다면 데카르트는 그 이후 시대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유명한 언명 Cogito ergo sum(프랑스어 je pense, donc je suis, 영어 I think, therefore I am)은 그 후 서양 철학의 근본적 명제로 자리 잡아 소위 “근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를테면 데카르트는 서양의 합리주의 핵심에 해당하는 “자아”에 대한 “의심”을 철학적 방법론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의 명저 《방법서설》은 6부로 편성되어 있다. 


1부. Various considerations touching the Sciences

(학문에 대한 다양한 접근, 혹은 고찰)


1부는 방법의 중요성, 책의 내용이 우화의 형식을 빌어 작성된 이유, 그리고 대학에서의 학문을 뒤로한 채 세상을 통해 진리를 얻으려 향한 이유로 구성되어 있다. 데카르트는 기본적으로 참과 거짓을 식별하는 양식(Good sense)과 같은 능력이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주어져있다는 전제하에 논의를 전개한다. 하지만 동일한 양식이 분화하는 것은 이성의 증감에 다른 결과라기보다는 사유의 방식이나 고찰 대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정신보다는 정신의 사용과 적용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 정신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덕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성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이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핵심적인 문제이다. 데카르트는 이성을 잘 사용하기 위해 자신이 겪어왔던 수많은 기존 학문들에 대해 고찰을 해본다. 그의 결론은 확실하고 명확한 근거에서 출발하지 않은 학문은 모두 부정의 대상이 되고 단 하나의 학문만이 살아남는데, 그것이 바로 수학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성을 잘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단지 데카르트는 자신의 경우를 이야기하면서, 이성을 어떤 방법으로 인도하려 하는가와 또 어떻게 인도해왔는지에 대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1부의 우화로 제시되는 데카르트의 자신의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학문에 회의감이 든 이유까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자신의 무지함을 더 일깨워 주었고, 하나의 참된 의견이 존재하지 않고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여러 의견이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배우기를 열망하게 하는 어떤 위대한 가르침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후 데카르트는 세상이라는 책에서 공부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이성의 힘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을 겪으며 학문의 주요 규칙을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하게 된다.


2부. The principal rules of the Method which the Author has discovered

(데카르트가 찾아낸 학문 방법의 주요 규칙) 


그가 찾아낸 방법의 규칙은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결코 진리라고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 규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증(명확한 증명)과 판명(그로부터 확연히 구분되는)이다.


명증은 간접적인 추리에 의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진리임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직관적으로 진리임을 인지할 수 없거나, 그것이 진리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진리가 아닌 것이다. 직관적으로 진리임을 알기 위한 선결요건은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불변하는 동일성을 가져야 한다. 진리의 동일성이 내포되어 있어야만 명증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판명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나눌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명확하게 나눠지지 않는 애매모호한 것들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검토 대상인 각각의 명제를 더욱 잘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한 잘게, 필요한 만큼 나누라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화학에서 가장 작은 부분인 원자로부터 검토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세 번째, 생각을 질서 있게 인도하라는 것이다. 즉 가장 단순하고 인식하기 쉬운 대상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점진적으로 가장 복합적인 것들에 관한 인식에 도달하고 자연적으로는 서로서로 전혀 앞선다거나 뒤선다거나 하지 않는 것들 중에라도 이러한 선후 질서를 상정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합리론, 즉 연역적 방법론이 등장하게 된다. 계단을 오르듯이 이어지는 논리 증명의 방법은 이 후 서양 세계의 학문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네 번째,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고 확실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완전하게 열거하고 일반화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검토하라는 것이다. 완전한 열거와 검토만이 체계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세계에 도달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3부. Morals and Maxims accepted while conducting the Method

(적용된 방법으로부터 용인되는 도덕 규칙)


제3장에서는 데카르트가 만든 네 가지의 격률(Rules of morality)에 대해서 소개한다. 격률이란 현실적 삶을 살아가는 수단으로써의 도덕적 규범을 뜻한다. 


첫 번째, 내 조국의 법과 관습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즉 신앙의 문제에서는 신의 은총 덕택에 내가 어릴 적부터 배워온 종교에 한결같이 충성을 다하고, 다른 삶의 문제에 있어서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 가장 좋은 판단력을 갖춘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가장 온건하고 가장 덜 극단적인 의견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데카르트가 태어나기 약 20여년전 프랑스는 대대적인 종교적 박해(카톨릭이 신교에 대한)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St. Bartholomew's Day massacre(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이다. 이 사건은 1572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전야에서 그 다음날 사이에 파리에서 있었던 Huguenots(위그노 - 칼빈파)에 대한 대학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미리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정치, 종교 상황이 빚은 필연적인 사건이었는데 이러한 소요사태는 앙리 4세의 낭트 칙령으로 마무리 될 때까지 약 20년간 지속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출생한 데카르트는 가능한 중도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유지하는 방법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법과 관습(카톨릭적인)에 복종하여야만 한다는 암묵적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퍼져 있었을 것이다. 


비록 1637년에 출판된 《방법서설》이었지만 그 내용에 대한 정치적 종교적 눈빛은 아마도 매우 엄중하였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온건한 의견은 실천하기에도 가장 편하거니와 무릇 모든 지나침은 나쁘기 마련이므로 가장 온건한 의견이 가장 좋은 의견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가능한 단호하게 행동(또는 판단)하고, 만약 가장 의심스러운 의견일지라도 일단 따르기로 결정된 다음에는 (어떤 의심도 없이) 확실한 의견을 따르는 것에 못지 않게 한결같이 따르라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제 3부는(실제 프랑스어 판에서는 제 2부 ; Deuxième partie) 거의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노선에 대한 데카르트의 견해로서 전체 《방법서설》중 철학적 논의에서 비교적 벗어난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언제나 운명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을 정복하고자 하며, 세상의 질서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스스로의 욕구를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즉 나 자신의 생각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내 힘을 벗어나 있다고 믿는 데에 스스로 익숙해져서 내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얻지 못한 외부의 것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끔 되라는 것이다.(데카르트가 당시 상황에서 얻은 처세의 방법으로 보인다. 마치 장자가 난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내부로 방향을 돌려 逍遙遊의 방법적 논의를 했던 것처럼 데카르트도 엄청난 외부 세계의 격동을 애써 외면한 채 자신의 내부로 방향을 돌리고자 했던 것이다.) 


네 번째, 가장 좋은 직업을 택하기 위해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온갖 직업을 한번 훑어보라고 충고한다. 요즘 대한민국 5포 세대와는 참 먼 이야기다.


다음 주말 아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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