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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16. 2018

데카메론 그리고 보티첼리

약간은 공허한 이야기

 John Waterhouse 작 'A Tale from the Decameron'. Oil on Canvas. 1916 

데카메론(이탈리아어: Decameron 또는 Decamerone, 부제: "Principe Galeotto" Principe Galeotto는 킹 아더의 전설에서 원탁 기사 중의 한 명이었던 Galehaut를 말하는데 Galehaut는 아마도 Sir. Galahad경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됨. 그런데 왜 부제로 사용했는지는 모호한 구석도 있음)은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 ~ 1375)가 1350년경에 쓰기 시작하여 1353년에 집필을 마친 100편의 소설을 모은 책이다. 데카메론의 또 다른 표제인 "데카 헤메라이(deka hemerai)"는 열흘을 의미한다. 데카메론은 액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액자구조란 액자가 그림을 둘러서 그림을 꾸며주듯, 바깥 이야기(외부 이야기)가 그 속의 이야기(내부 이야기)를 액자처럼 포함하고 있는 기법을 말한다. 데카메론은 오락적, 문학적 인기를 넘어서, 14세기의 삶에 관한 중요한 역사적 문서이기도 하다. 


데카메론은 피렌체를 휩쓴 페스트를 피해 젊은 여성 일곱 명과 남성 세 명이 피렌체 교회 별장에 모여 2주에 걸쳐 열흘 동안 한 사람 씩 돌아가며 매일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써 총 100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근대소설의 규범이 되는 작품이다. 총 10일 동안 10편의 이야기 즉, 100편의 이야기로 되어있는데 그중 5일째 되는 날 8번째 이야기를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그림으로 그렸다. 이야기는 Nastagio degli Onesti(오네스티의 나스타조)의 이야기로서 네 장면으로 되어있다. 

프라도 미술관 소장

첫 번 째 그림


멀리 고요한 바다에는 범선이 몇 척 유유히 떠다니며 바람 한 점 없이 너무나 고요하다. 그러나 바다를 면한 숲에서는 끔찍한 장면이 펼쳐진다. 한 여인이 흰 개에게 엉덩이를 물려 비명을 지르고 있고, 개를 따라 말을 탄 기사가 붉은색 망토를 휘날리며 칼을 높이 들고 화면 중앙으로 맹렬히 다가온다. 개는 기사의 사냥 견이며 따라서 여인은 기사의 사냥감인 것이다. 한편 화면 왼편 가까이에는 붉은색 바지에 파란 줄무늬 상의를 걸친 두 청년이 서 있다. 


한 청년은 한가로이 사색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청년은 습격을 받은 여인을 구하기 위해 막대기로 개를 쫓으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두 청년은 옷차림으로 보나 생김새로 보아 동일 인물인 듯하다.(화면의 중첩-시간성을 보여 줌) 게다가 화면 가장 왼편 두 채의 화려한 천막 사이로 이 청년은 다시 등장한다. 


기이한 화면의 구성은 사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개의 천막 사이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숲 속을 산책하며 사색에 잠겨있는 중, 갑자기 사냥개에 물리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놀라 사냥개를 쫓으려고 막대기를 집어 들었고, 마침 뒤이어 그녀를 쫓는 기사가 나타난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 소장

두 번째 그림


두 번째 작품을 보자. 역시 고요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첫 번째 작품과 동일한 장소이다. 화면 뒤쪽의 여인이 맹렬히 추격하는 기사와 개를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하지만 이내 지쳐 숲 안쪽에서 붙잡힌다.(역시 시간의 경과를 보여준다.) 화면 중앙에 여인은 개에게 물려 그대로 쓰러지고 기사는 말에서 내려 쓰러진 여인의 등을 갈라 두 손으로 여인의 내장을 꺼낸다. 


기사가 사냥의 대가로 여인의 내장을 던지자 개들이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남자는 이 장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친다. 한가로이 물을 먹는 사슴들은 이 끔찍한 사건과 분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이 작품에서는 첫 작품과 반대로 남자는 한번 등장하는 반면, 여인과 기사가 두 번 등장하여 시간의 경과에 따른 행동을 보여준다.

프라도 미술관 소장

세 번째 그림


숲 속에서 귀족들의 연회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바다와 연회장을 구분해서 담벼락을 설치하였고 전면에는 나무들을 베어버렸다. 첫 번째 작품에서 보았던 천막이 오른편에 있으니 장소는 숲의 왼편일 것이다. 


여인과 그녀를 쫓는 사냥개와 기사, 그리고 남자가 여지없이 등장한다. 여인은 달아나다가 두 마리 개에게 붙들려 양쪽 허벅지를 물린다.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이 놀라 일어서자 테이블과 테이블 위 음식물을 담은 그릇들이 엎어진다. 그런데 남자는 이전 작품들에서 혼비백산하던 모습과는 달리 이번엔 침착하게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킨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이다.

피렌체 푸치 궁 소장

마지막 그림


이제 시리즈의 마지막 네 번째 작품을 보자. 바다와 숲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되던 그 끔찍하던 장면도 사라졌다. 개에게 쫓기는 여인도 기사도 보이지 않지만 모든 작품에 등장했던 남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는 여인들 틈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림 속 이야기의 진짜 이야기


이탈리아 북부 라벤나 지방의 귀족 집안 오네스티 가문의 상속자 ‘나스타조’는 ‘파울라’라는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자신보다 조건이 떨어지는 ‘나스타조’를 차갑게 대했다. 이에 ‘나스타조’는 절망과 슬픔에 방황하게 되고 얼마간 라벤나를 떠나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라는 가족과 친구들의 권유에 그는 라벤나를 멀리 떠나  숲 속에 화려한 천막을 설치한 후 친구들과 어울려 시름을 날려 버리려 애쓰던 중이었다.


이것이 첫 번째 화면의 천막과 남자의 장면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을 산책하며 상념에 잠겨있던 비극의 장면이 목격된다. 끔찍한 상황에 놀란 ‘나스타조’에게 기사가 다가와 여인에 관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사연의 내용은 이러했다. (기사는 이미 죽은 영혼이었다.)


기사 역시 ‘나스타조’처럼 생전에 화면 속 쫓던 여인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그 여인 또한 기사에게 차갑게 대했다고 한다. 이에 절망한 기사는 자살을 했고, 이후 여인도 죽음을 맞이하게 됐는데 이후 두 사람의 악연이 사후에 이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그림에서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중첩된 장면이다.)


사후 생전의 죗값을 치러야 함에 기사는 자살한 대가로 사랑했던 여인을 원수처럼 쫓아가, 스스로를 찔렀던 그 칼로 여인을 죽이고 내장을 개들에게 먹여야 하는 것이다.(거부할 수 없는 숙명의 관성으로)  또한 여인 역시 생전에 기사를 조롱하고 냉대했던 죄로 기사에게 쫓겨 계속 도망치다가 죽는 형벌이었다. 그리고 이 형벌은 매주 금요일마다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스타조’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다시 라벤나로 돌아온 ‘나스타조’는 금요일, 라벤나의 또 다른 아름다운 숲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파울라를 비롯해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가 무르익을 즈음 예상대로 여인과 기사, 개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놀라 혼비백산한다.(세 번째 그림, 이를테면 이 그림은 ‘나스타조’의 상상을 표현한 것) 이윽고 ‘나스타조’는 사람들에게 기사에게 들었던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들으며 두려움과 미안함에 마음이 변한 ‘파올라’는 그 날 ‘나스타조’와 결혼을 약속했다.(마지막 그림 흰 옷 입은 여자는 바로 ‘파울라’) 이후 둘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 드라마로 연작은 마무리된다.


알고 보면 약간은 허무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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