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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18. 2019

러시아 미술 이야기

이콘화

이콘화 이야기 (1)


서양에서 '타타르'란 몽골과 '튀르크 계'가 혼합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 전부를 일컫는다. 


하지만 13세기경 러시아에서는 '타타르'란 단어는 조금 다르게 인식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타르타로스(고대 그리스어: Τάρταρος)'는 지하의 명계(冥界) 중 가장 밑에 있는 나락의 세계를 의미하며 지상에서 '타르타로스'까지의 깊이는 하늘과 땅과의 거리와 맞먹는다고 한다. 주신(主神)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티탄 신(神)' 일족이나, 대죄를 저지른 '탄탈로스', '시시포스', '익시온' 등과 같이 신을 모독하거나 반역한 인간들도 이곳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곳은 안개가 자욱해 신들조차 기피하는 공간으로서 '포세이돈'이 청동의 문을 만들었고 그 주위는 청동의 벽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누구도 도망갈 수 없다. 


그런데 이 '타르타로스'에서 탈출하여 나온 종족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타타르'란 것이다. '타타르'는 공교롭게도, '타르타로스'와 발음이 매우 비슷했던 것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이러하다. 몽골인이나 튀르크인이 "카프카스 산맥 지하의 타르타로스(Tartaros)에서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기어 나왔다."는 황당한 전설이 12~4세기 러시아에서 널리 퍼졌다. 당시는 바로 몽골제국이 유럽을 정복하던 시기였고 가장 피해를 직접으로 본 민족이 바로 당시 키예프에 거주하던 러시아 사람들이었다. 키예프 사람들에게 몽골인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마치 ‘툴킨’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악마의 땅 ‘모르도르’에서 끝없이 기어 나오는 ‘오크’, 또는 ‘우르크하이’ 같은 존재가 바로 '타타르'였던 것이다.


12세기 몽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블라디미르 수즈달 공국으로부터 그 뒤를 이은 노브고르도 공국 그리고 몽골인이 지배했던 킵차크한국(Golden Horde), 다시 몽골인들이 물러가고 러시아가 세력을 회복한 모스크바 대공국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사람들의 삶은 몽골인들과의 전쟁에 따른 피의 역사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 예술이 바로 러시아 '이콘화'이다. 


러시아 예술에서 '이콘화'는 '아케이로포이에타(Acheiropoieta; 손으로 그리지 않은 그림)'라고 부른다. 서유럽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이콘화'의 전통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들은 '이콘화'를 단순한 그림이 아닌 지상에 신의 세계를 옮겨진 것으로 생각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이콘화'가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가장 신성한 곳, ‘크라스니 우골(성소)’이라고 불리는 집 안의 동편에 '이콘화'를 놓아두고 그 앞에서 늘 기도를 했다. '이콘화'는 신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므로 감상의 대상인 예술작품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이며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기적의 힘을 갖고 있는 성물이었다. 훗날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는 이 전통을 이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실 동편에 걸어두게 하기도 했다. '타타르' 즉, 몽골을 격퇴시키고 러시아를 지켜 낸 기적의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콘화 「블라디미르의 성모」는 러시아 중세 미술뿐 아니라 비잔틴 미술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 중 하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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