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
지난 2013년에 개봉된 영화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감독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주연)가 이야기하는 위대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본다.
무중력 상태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다. 즉, 자유낙하를 전제로 하여 자유 낙하 중에 있는 물체들 사이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무중력 상태이다. 예를 들어 우주선에서 느끼는 무중력이란 우주선이 지구를 향해(중력의 방향대로) 자유 낙하할 때 그 우주선과 동일한 속도로 자유 낙하하고 있는 우주인과 다른 물체들이 무중력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약 90분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지상 600km 상공, 그 극한의 공간에 있는 두 명의 주인공(그나마 영화 상영 40여분 만에 한 명의 주인공이 사라지고)을 만나게 된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절대적이지만 매우 사소한 일상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가지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삶의 과정에서 상처 하나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 말 많고 유쾌한 임무지휘관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의 물음에 허블 망원경 수리 임무 당당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는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상처를 말한다. 우주라는 공간에서 그것도 이제는 지구로 돌아갈 가망이 없어 보이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드디어 말하는 스톤 박사가 가진 삶의 상처.
우주까지 가기 위해 많은 훈련을 함께 했을 것이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을 그들이지만 거의 삶의 마지막 순간쯤에야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이 지독한 아이러니. 이것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죽음에 다가선 우주공간보다 더욱 고립무원의 장소는 오히려 중력이 있는 지구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장면이다.
어느 순간 혼자가 된 스톤 박사는 삶을 포기하려 한다. 삶을 포기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었다. 이렇듯 일상의 삶을 그리워하는 스톤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소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이러한 메시지는 영화의 제목 ‘중력’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확연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지구에서 너무 사소하여 거의 잊고 사는 우리의 일상 저 깊은 바닥, 우리를 유지하게 하는 그 절대적 무엇에 대해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무엇’을 표현하는 말은 매우 다양하지만 늘 표현된 말과 그 ‘무엇’의 실체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사소한 ‘일상’이라고 표현한 그 어떤 상황과 이 영화의 제목 ‘중력’에서 미세한 일치감이 들기도 한다.
우주에서 산소부족으로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스톤 박사가 소유즈 캡슐 속으로 들어와 산소를 마시고 평온을 찾은 뒤 우주복을 벗어버리고 취한 자세와 어머니 자궁 속의 태아의 자세와 닮아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태아에게 어머니의 자궁은 안락과 평화의 쉼터다. 스톤 박사가 거친 우주공간에서 다시 평온을 회복했으며 지구에서의 호흡, 그 사소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가에 대해 이러한 장치로 말하고 있다.
스톤 박사가 긴급구조를 위해 열어놓은 무전에서 개소리, 아기 자장가 소리가 들린다. 지구에서 그 소리들은 사소하다 못해 거의 소음에 가깝지만 죽음이 가까워지는 주인공에게는 생명의 소리요, 동시에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황을 인식하게 하는 절망의 소리다. 그 소리에 반응하는 스톤 박사의 느낌을 주인공역을 맡은 산드라 블록은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코왈스키 스스로 줄을 끊고 우주로 멀어지면서도(곧 죽음) 스톤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용기를 주며 심지어 농담까지 던진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할리우드의 영웅을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장면은 비현실적인 장면일 수도 있고 또는 이전의 할리우드의 영웅주의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장면일 수도 있다.
엄청난 추위, 전쟁, 불길, 파괴, 재난의 현장에서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장면이 아니고 오히려 평온해 보이는 우주에서 코왈스키의 희생은 그리 극적이지는 않다. 극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우주는 위의 모든 것을 합친 재난보다 더 극한의 공간임에도 관객들은 눈으로 그 상황을 느끼지 못한다. 거기에는 관객의 특별한 지식과 그 지식에 기초한 상상이 부가되어야 하는데 감독은 이런 것들을 넌지시 요구하고 있다.
마침내 지구에서 스스로 일어나 땅을 딛고 선 주인공을 카메라 앵글은 최대한 자세를 낮춰 위로 잡아낸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그 사소하고 위대한 힘을 느끼는 주인공을 보라, 그리고 사소하지만 위대한 우리의 일상에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