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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19. 2016

일상의 유지

차별 침식

차별 침식


1. 늦게 뜨는 달


달이 조금씩 늦게 뜬다. 만월이 넘은 달은 이튿날 대낮에도 서쪽 하늘에 걸려 있다. 늦게 뜨는 달은 가을 초 저녁을 어둡게 한다. 밤이 어두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달이 없는 밤은 달이 없어 어둡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 인가에 우리는 늘 탓을 하고 스스로는 그것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아마도 밤 10시가 넘어야 달이 떠오를 것이다. 새벽에는 구름이 없기를 빈다. 4시쯤 일어나면 어쩌면 환한 가을 새벽달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절묘한 대비와 순환의 세상을 나는, 매일 살고 있다. 그리고 우주의 위대하고 동시에 거대한 질서 속에 나는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하현달, 구글에서 가져옴


2. 현실


현실은 언제나 촘촘하다.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불안정한 태도가 늘  이 촘촘하고 정교한 현실 앞에는 여지없이 무너지곤 한다. 그 무너짐이 인생의 과정이며, 죽음이란 그 과정 중에서 가장 극심한 또는 가장 큰 무너짐일 것이다. 그 순간까지 늘 우리는 이런저런 것으로부터 무너지고 회복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러한 촘촘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도 우리는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거기에는 욕망과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욕망과 집착은 스스로의 불안정을 보지 못하게 하고, 촘촘하고 정교한 현실을 제멋대로 해석하게 만든다. 마침내 여지없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을 깨닫는다.



3. 적응


당연한 모든 것들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 완벽한 오류인데도 우리는 늘 당연함에 몸을 맡기고 있다. 세상에 당연함은 거의 없다. 어쩌면 절대로 없을지도 모른다. 당연함이란 변화 없음이요, 동시에 부패의 시작이다. 언제나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당연히 존재하고, 타인의 사랑과 헌신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가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절망한다. 하여 늘 당연함이라는 마취에 적응하지 않기를 ……. 그리하여 늘 변화에 준비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빌뿐이다.


구글에서 가져옴

4. 차별 침식


학교 뒤편 강둑 길은, 강 둑과 산의 절개지가 만들어 놓은 길이다. 따라서 산 쪽으로는 높은 벼랑이 있다. 벼랑에는 오랜 세월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또 여러 잡초들이 자리를 잡아 겉으로 보기에는 절개지의 속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절개지의 단면은 암석의 종류에 따라 차별 침식이 일어나 매우 울퉁불퉁하다. 각기 다양한 성질의 암석과 수천 수 만년의 차이를 두고 각기 다른 시기에 형성된 지층이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풍화되어 일어난 차별 침식을 보면서 내 삶을 반추해본다. 내 삶의 절개지에 일어나는 차별 침식에 대하여.


연약한 부분은 이미 많이 패어 속살이 드러났을 것이고 강한 부분은 그나마 그 형태를 유지할 것인데 나라는 존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  두 분이 비교적 균등하게 일어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침저녁, 그리고 수시로 일어나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 나는 어쩌면 어떤 준비도 없이 침식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균형을 잃고 무너질 것인데, 다만 극심한 차별침식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막연히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피동적이지 않은가? 


표지 사진은 비온 다음 나무 등걸에 핀 버섯을 직접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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