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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17. 2016

일상의 깊이

스피노자 에티카

이제 단풍이 시작되고.
석양이 질 것이다.

하루 종일 날씨가 흐릿하다. 50대 중반의 우울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하더니 오후에는 거의 우울에 빠질 뻔했다.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면 나를 흔들어야 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에티카’를 또 빌렸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이라 오늘 저녁 읽을거리를 장만함과 동시에 스피노자라는 위대한 철학자를 다시 만나 허접한 나의 우울을 날리고자 함이었다.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현재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신이다. 네덜란드의 유대인 공동체 소속이었던 스피노자는 유대 문화에 대단히 정통하였다. 하지만 그는 유대교의 몇 가지 교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시했고, 이로 인해 유대인 랍비들은 스피노자를 그들의 공동체에서 제명한다. 마침내 스피노자가 23살 되던 해에는 스피노자를 그들 유대 사회로부터 영구히 추방한다. 동시에  스피노자의 모든 저작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금서가 되었다.



유명한차이와 반복 Différence et répétition》의 저자인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철학의 왕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스피노자는 철학자들의 ‘예수’이자 ‘왕자’인 존재이다. 그는 매우 혁명적인 태도로 일생을 살다 갔다. 그가 원하기만 했다면 충분히 주어질 수 있었던  명예와 부를 단호히 거절한 채 안경알을 깎는 일로 삶을 유지하다가 44세라는 다소 빠른 나이에 표표히 세상을 떠나갔다. 



그의 力著인 에티카(정식 명칭 : 기하학 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 - 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를 출판할 때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진리는 주인이 없다” 이 얼마나 위대한 말인가? 17세기 여전히 엄혹했던 종교적 사회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그 거대한 담력은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일까?

그의 책 에티카의 내용은 매우 방대하고 동시에 매우 정교하다. 제목이 말해 주듯 수학적 논리로 사물의 실체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히 논리적으로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인 증명 과정과 같은 기하학 적인 질서를 통해서 극복하고자 하였다 *. 핵심 내용은 당연히 제일 처음 존재와 실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전적으로 기하학적 용어들로 사유하고 있으며, 그것의 각 부는 공리와 정의에서 출발하여 수학적 증명을 통해서 결론으로 나아간다. 제목이 말해 주듯이, 이 책은 단지 형이상학 논문을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스피노자에게는 인간의 본성, 인간의 행위 그리고 인간의 운명도 똑같이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이 문제들도 기하학적 방식으로 다룰 수 있으며, 거기서 도출되는 해답은 수학의 기본법칙과 같은 확실성과 필연성 그리고 보편성을 가지리라고 그는 믿었다. 로저 스크러턴, 스피노자, 정창호 옮김, 시공사, 2000, pp. 50 ~51.


* 실체란 그 자체 가운데 있고, 또한 그 자체에 의해서 생각되는 것, 바꾸어 말하면 그 개념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존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존재’하기(exist)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부터 존재하여야 한다. 이것을 ‘자기 원인(causa sui)’이라고 부른다.(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서 단자 - Monad 의 정의가 여기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원인은 “그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존재를 원인으로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자기 원인으로서의 사물이 실체(Substance)이다. 실체는 정의상 “자기 안에 있는 것”이다. ‘안에 있다’는 것은 인과적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자기 원인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존재론은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내부적인 여러 수단을 통해 증명해내야 하는 함정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에티카는 매우 난해 하지만 불교의 宗旨와도 언뜻 통하는 면이 있다. 법화경에는 제법 실상(諸法實相)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제법(諸法)은 모든 존재이고, 실상은 실체적인 모습이다. 곧 모든 존재의 진실상(相), 또는 만법의 참된 모습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말하는 존재의 실제적 모습, 존재의 실체란 무상(無常)이며, 무아(無我)이며, 공(空)이다. 무아와 공은 존재의 실상에 대한 규명이다. 그 취지는 존재를 똑바로 보자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영원한 것인가? 하는 언명을 통하여 진리(해탈)에 다가가자는 것이다. 즉, 무아와 공(空)은 불교적 관점에서 관찰한 존재론이다.



장자의 敎義와도 전혀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장자는 그의 책 “장자”에서 언제나 실체와 실존의 관계에 집중한다. 호접몽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의 아내가  죽는 장면에서 장자의 행동, 그리고 숙과 홀의 혼돈의 이야기에서 그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그 세 가지 존재의 실체에 대한 생각이 에티카에서 스피노자가 정의하는 실체의 개념과 거리가 멀지 않다.  



절대적인 진리는 동서고금이 없는 모양이다. 밤이 되어 복잡해진 머리에는 우울이 흔적도 없다. 아 나는 얼마나 미미한 존재란 말인가! 스피노자에 감탄하며 깊어지는 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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