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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12. 2016

일상의 중심

아침과 밤.두 개의 음악

1. Antonio, Vivaldi : ViolinConcerto In A Minor RV 356 Op.3 No.6

                      "L'estro armonicoNo.6" - 1. Allegro

 

처음 30초 정도의 Down-bow는 마치 일상의 모든 것을 가르는 듯 선명하고 예리하다. 


이 곡 L’estro armonico (조화에의 영감)은 말 그대로 현악의 조화를 위한 음악이다. 관악의 협연이 더해지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악, 그중에서도 바이올린을 위해 나머지 악기들을 배치한 음악이다. 조화를 화성이라는 말로 바꿔도 무방하다. 和聲이란 높이가 다른 음들이 동시에 조화 있게 울리는 것을 표현하는 말인데 결국 조화라는 말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비발디의 의도든 아니든 ‘조화’라는 말에 특히 마음이 간다. 거기에 靈感이라니! 창조적인 자극이 없는 푸석거리는 50대의 삶에 조화와 영감이 가득한 이 음악은 언제나 부드러운 습기를 제공한다.  


이 음악을 작곡한 Antonio, Vivaldi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이탈리아의 음악가다. 베네치아 출신의 그는 서품을 받은 사제였다. 몸이 약한 관계로 미사 집전을 하지 않았고 거의 40년 동안 베네치아 자선 병원 부속의 여자 음악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그의 불후의 명곡 ‘사계’도 작곡된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중엽까지 활동한 그는 서양 음악사에 있어 거의 선구자였고 많은 음악가들, 특히 바흐에게 매우 큰 영감을 제공했다.


그의 작품 사계 중 “봄” 만큼 예리하고 선명한 바이올린을 가을 아침에 들으며 위대하고 단단한 일상의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 사찰 풍경



2. Anton Bruckner  Symphony no. 9, 1악장 Feierlich, misterioso (장엄한, 신비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또 하나의 산맥에 비견할 만하다. 낭만이 결국 로마풍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면, 브루크너는 현란하지만 조악한 낭만을 파기하고 다시 엄숙하고 장대하며 험준한 음악의 산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브루크너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음악이 정치적인 문제까지 확산될 수 있는 주제라는 것이 브루크너의 “바그너 논쟁”이 있는데 이야기가 제법 복잡하다. 


오랫동안 음악을 들어온 나로서 언제나 브루크너를 듣고자 했지만 나의 공력이 미치지 못한 탓에 50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그에게 다가갈 만큼 그의 음악은 매우 난해하다. 관현악곡이지만 다채로운 편성도 아니고 그나마 슈트라우스나 말러가 가지는 대중성의 흔적도 찾기 어렵다.


막막한 음악의 바다에 엄격한 대위와 화성에 중점을 둔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수도자의 자세를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9번 교향곡을 비롯한 모든 교향곡이 너무나 비슷하여 어떤 이들은 그의 교향곡 모두를 9번 1악장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이 9번 교향곡은 미완성이다. 하지만 이 모든 비난과 불리함을 뛰어넘는 위대함이 있다.


약간의 냉기가 스미는 가을밤, 일상의 무게를 견디며 듣는 이 난해하고 복잡한 구조의 음악은, 일상의 스펙트럼 안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는 불투명, 혹은 선명함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맨 위 그림은 독일의 화가 Caspar David Friedrich - Der Wanderer über dem Nebelmeer(여행자 너머로 펼쳐진 안개 낀 바다)  함부르크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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