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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30. 2016

일상을 바라보다.

우리 옛 그림 5.

송계한담도                                                               김수철,  종이에 수묵담채, 33.1cm  44cm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지배세력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난 수 세기 동안 우리 역사에서 기층 민중이 일으킨 혁명이 성공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단 한 번도 바뀌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중심세력이 가지는 기치가 선명해야 하고 그 세력을 따르는 혁명세력이 견고하게 조직되어야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의 혁명은 이 두 가지를충족하지 못한 채 어설픈 혁명으로 안타까운 기층 민중의 희생만 있었다.



2016년 이 나라의 모습은 수 세기에 걸친 지배세력의 부패와 오만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썩은 그들의 악취가 천지를 진동해도 우리 민중들은 다만 고개만 돌릴 뿐, 먹고사는 문제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만다.



조선 말기 화가로 알려진 김수철은 생몰연대도 불분명하고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 제목은 〚松溪閑談圖(송계 한담도)〛이다. 풀이하자면 소나무가 있는 계곡에서 한가로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소나무 잎은 간결하게 처리하고 먹을 번지게 해서 풍성한 느낌을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배경은 안개로 처리하여 세상과 유리된 느낌, 마치 그 옛날 위 ․ 진 교체기의 죽림칠현처럼 조선말의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고자 했던 작가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한담이 사실은 한담이 아니라 불만이었을 것이며 자조였을 것이다. 마치 지금처럼.



준법은 섬세하다. 조선 말기의 준법은 대체로 섬세해지고 부드러워지는데 그림은 더욱 부드럽고 섬세해졌다. 미점(점으로 표시한 풀, 나무 표현법)은 농담을 달리하여 풀과 나무의 변화를 표현했다. 채색으로 강조한 것은 사람들인데 옷 색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보아 신분이 다르거나 어쩌면 나이가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는 매우 다르다. 반쯤 누워있는 사람부터 서거나 앉은 다양한 자세로 보아 서로 매우 자유로운 사이였을 것이다.



조선말은 세도정치의 폐해로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그 시절 지식인들이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은 곡학아세 하거나 아니면 세상을 등지고 자연에 의탁하는 방법 외에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 상황을 김수철은 잘 표현해내고 있다.



소나무는 조선조부터 선비의 절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였는데 그 이유는 항상 푸르며 쓰임새가 많은 나무이고 그 향이 고고한 데다가 자태 또한 웅장하고 곧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조선조에서는 의도적으로 송림을 많이 조성하였고 그 송림은 자연히 선비들에게 유흥의 장소가 되어 예외 없이 송림에 정자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사실 이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계급적이 않은가?



작가의 삶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탐관오리들의 학정에서 벗어나 자연의 넉넉한 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장면에서 상황만 분리해보면 오늘날의 상황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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