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오는 불안을 어떻게 잘 넘겨낼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글쓰기였다. 나는 한국에서 흔하다면 흔한 사람 중 하나다. 한국의 정형화된 교육과정을 마친 후 대학을 다녔고, 짧지 않은 취준을 겪었으며, 어느덧 직책도 생긴 직장인이 되어 30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에서 일어난 수많은 고민과 걱정, 불안은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하나만 툭 쳐도 나를 불안정하게 만들곤 했다. 이런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평탄하게 잘살고 있는데, 대체 무엇이 그렇게 네 마음을 갉아먹는지에 물어보곤 했다. 한창 공부할 땐 대학 입시, 대학 졸업 전엔 취직 문제 같은 굵직한 불안이 있었지만, 이외의 사소한 불안들은 사라지기는커녕 눈덩이처럼 쌓이기만 했고, 더 이상 타인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지 내 별명은 걱정인형으로 굳혀졌다.
불안은 다양한 모습으로 불쑥 찾아오곤 한다. 행복한 순간에도, 어딘가에 몰두하고 있다가도 혹여 자신을 까먹지 않았느냐는 듯 불안이 ‘똑똑’ 문을 두드린다. 모두 이 정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받으면서 살겠지 싶어 그냥 무시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나조차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날 밤, 나는 비로소 불안과 손잡기로 했다.
글을 쓰면서 본질적인 불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는 왜 불안하고, 무엇이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지부터 시작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이라는 주제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일상 무대 속에서의 내 모습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사람과의 관계, 사회생활 그리고 지금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걱정을 쓰기로 했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는 각양각색의 얼굴을 한 불안의 모습과 그래서 이 불안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담겨있다.
매사 야기되는 불안을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거진 생각들은 오히려 더 많은 걱정과 불안을 불러왔다. 나는 걱정과 불안을 씹어보기도 하고, 걱정상자에 넣어보기도 하고, 하루종일 머릿속에 굴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생각해 봐도 내게 득이 되는 건 별로 없었다.
약간의 불안은 내게 도움이 되어도 ‘걱정인형’으로서 살아가는 건 내 몸과 마음에도 좋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다채로운 인생 무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적당한 걱정과 불안을 수용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튼튼한 채로 지금을 잘 빛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썼다. 바쁜 현생에서도 누구보다도 더 잘 살고 싶은 그러나 한층 더 나아질 나를 탐구하고, 타인과 세상에 다정해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