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이해하기<2>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여섯 살 때 처음 유치원에 들어간 나는 선생님의 “한 번 해볼까?”의 질문에 절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뒤로 물러나는 아이라 나와 내 동생을 키워주신 외할머니의 고민이 되곤 했다. 그 이후로도 새로운 걸 시작하려면 숱한 고민을 거쳐야 했고, 충분히 잘했음에도 ‘아니야’라며 스스로 위축해 버렸다. 부족한 자신감과 자존감은 한참 예민한 시기인 사춘기 때 증폭되고 말았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하니, 성적에 대해 자신이 없어 입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여드름은 또 얼마나 많이 나는지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후 대학에 합격하고, 동아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고, 조금씩 성취감을 느껴보며 점점 자존감을 회복하는 듯했다.
그렇게 낮은 자존감 극복!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인생의 변곡점에서 가장 저점을 찍을 때 나는 다시 ‘불안핑’이 되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특히 취준 시기의 갑자기 일어난 불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불어나 내 감정을 건들고, 부정적인 생각을 일으켰다. 아무리 모두가 힘든 시기라고 하지만, 왜 힘들 때마다 나는 불안해지고,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지는지 알다가도 몰랐다. 우울증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과도하게 감정으로부터 지배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내 말투와 신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파악한 낮은 자존감의 표시는 아래와 같다.
1. 눈치를 많이 본다.
2. 잘 삐진다. 아무런 의미 없는 말에도 공격이나 비난이라 생각한다.
3. 남들로부터 어떻게 비치는가, 평가받게 되는가에 대해 걱정이 많다.
4. 인정욕구가 높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지만, 완벽하진 않다.
5. 팔랑귀다. 내 말에 대한 확신보다 남의 말을 더 믿는다.
6. 칭찬보다 비난을 더 잘 흡수한다.
7. 생각이 너무 많다. 후회, 자책 자주 한다.
8.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9. 부정적인 말투를 갖고 있다.
10. 늘 뭔가를 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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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적으려면 더 적을 수 있을 정도로 내게 나타난 상태는 다양했다. 그중 제일 심각했던 건 ‘잘 삐진다’였다. 금방 풀어지곤 했지만, 사람들이 하는 사소한 말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해서, 혼자 상처받곤 했다. 상처받은 건 짜증으로 돌아갔고, 이는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심각하게만 받아들인다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물론, 이 말도 자존감이 낮은 내겐 상처로 돌아왔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 속 자존감
알랭드 보통의 <불안>에서는 불안의 원인을 5가지로 구분한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그중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는 ‘기대’에서 나온다. 보통은 하버드 심리학 교수의 제임스 이야기를 통해 자존감의 정의를 말해준다. 제임스 교수는 스스로 훌륭한 심리학자가 되는 것에 자존감이 높아서 만약 그보다 심리학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상대방을 질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어를 배운 적 없는 제임스가 플라톤의 <향연> 첫 줄을 헤맨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존감이 꺾이거나 괴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존감은 내가 존재하는 가치를 찾아내는 것과 동일하다. 내가 꼭 잘나지 않더라도,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걸 밀고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보통은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을 질투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낀다고 한다. 즉,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남에게 찾기 때문에, 남의 평가로부터 인정받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 <불안>에 등장한 제임스 교수는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2가지 알려준다. 첫째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을 줄이는 것이다. 그중 제임스 교수는 두 번째 방법을 더 추천한다. 바로 기대를 버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방법이다. 자존감은 ‘내가 이만큼 잘났어’를 나타내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자존감은 나는 사랑을 줄 때 이렇게 표현하고, 저렇게 행동한다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기도 하고, 일할 때 어떤 걸 중요시하고 진행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내 자존감은 아직 어떤 걸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내 의지와 가치에 부합하는지 잘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낮은 건 아니었나 고민하게 됐다.
여전히 사라진 자존감을 난 열심히 찾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등장한 그 말 “Love wins all”. 우리가 어떤 존재이든 나를 생각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늘 곁에 있다. 그 사람들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존감을 찾아낸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