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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Apr 28. 2022

맛집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

음식점은 요리의 맛과 음식을 먹는 공간을 합친 곳이다.

먹는 행위를 살피면 간단하다. 일단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대상을 손으로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이빨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던가, 아니면 나이프로 자른다. 혹은 젓가락으로 알맞은 크기로 집어 올린다. 그리고 입 안에서 씹어 삼키면 된다. 

행위 자체를 보면 여기에 감동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 혹시 모르겠다. 이 과정을 행위예술가의 퍼포먼스처럼 꾸민다면 조금은 다른 느낌이 될 수는 있겠다.

결국 우리가 흔히 '맛집'이라고 부르는 음식점, 그리고 감동받았다고까지 말하는 기준은 씹는 동안 입 안에서 느끼는 음식 '맛'에 달려 있다.(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의미는 없다. 엄청나게 매운맛이 목구멍을 자극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냥 통증이 아닐까.) 그런데 '맛'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니 당연히 주관적이다. 결국 음식점이 맛집으로 소문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는 평가를 내려야 가능하다. 다만 인공조미료와 강한 자극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많아졌고, SNS에서 내려진 평가에 따라 몰려다니는 사람이 많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될까 싶긴 하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5대 짬뽕' '10대 짜장면' 같은 말들이 제대로 된 평가 일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결국 미쉐린 가이드와 같은 소위 전문가 집단의 평가가 인정받는 것은 맛 평가를 왜곡시킬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제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익명의 미쉐린 평가원과의 일문일답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시스템은 세계 어느 도시나 똑같이 적용된다. 미쉐린 스타의 다섯 가지 평가 기준은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에 대한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이다. 이 기준을 바탕으로 모든 평가가 이뤄진다.

평가 기준은 오로지 음식의 맛이다. 이 음식이 맛이 있는가? 그런데, 맛의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세분화된 평가 척도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서비스, 분위기, 안락함, 기물 등이 별점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중요하긴 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포크와 나이프 픽토그램으로 따로 표시되며 별점 부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쉐린 스타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서비스가 훌륭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미쉐린 스타 한 개를 받은 싱가포르의 Hong Kong Soya Sauce Chicken Rice & Noodle의 경우 접시 하나에 음식만 내주면 끝이고 서비스가 따로 없는 노점상이다. 오로지 맛으로 승부해 미쉐린 스타를 받은 좋은 예다."


'맛'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는 것은 주변 환경에 의해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말과 통한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엄청 맛있는 카레를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먹는다면 맛이 있을까?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환경이고 여기에 더해 오염물을 휘젓는 시설이 바로 보인다고 한다면 어떨까? 이 상황에서도 카레가 정말 맛있다고 평가한다면 그는 맛의 신(神)이거나 정말로 독특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홍보에 성공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청주시 유튜브 홍보 동영상 같은 것이다. "국내 최초 하수처리장 먹방ㅣ극한 공무원 1탄".

그런데 홍보에 이용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는 비슷한 경우가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다지 위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그을음이 가득한 주방, 좁은 식당, 내부도 오래되어 낡았는데 이곳 된장찌개가 엄청나게 맛있다고 소문나는 경우다. 여기에 더해 종업원도 없이 할머니 혼자 주방과 접객을 하는데 친절함은 없고 '빨리 처먹으라'는 막말까지 하고 간간이 욕도 하는데 인기가 있는 경우다.


결국 음식 맛이 평균이거나 약간 높지만, 낡은 식당 분위기와 할머니 욕이 주는, 변형된 추억거리 혹은 이야기 가 합쳐져 맛에 상승효과를 준 것이다. 이런 경우 욕쟁이 할머니가 없어도 맛이 있다고 느낄까?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경우는 많이 있다. 허름한 집에서 팔던 어떤 음식이 있다. 그것은 그냥 돼지고기 일 수도 있고 된장찌개 일 수도 있다.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많은 사람이 몰린다. 주인은 힘들었지만 어쨌든 돈을 벌었다. 그래서 세 들어 살던 건물을 자기 것으로 만든 뒤 깔끔하게 재단장을 해서 문을 열었다. 개보수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었다. 결국 1000원 올려 받았다. 손님들의 평이 이어졌다. '돈 벌더니 돈독이 올랐나? 가격을 올렸네. 맛도 별로인데.'(사실 맛은 그대로다. 식당 분위기가 바뀌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깨끗해졌다.)

이런 경우에 나온 '맛' 평가라면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식당 환경이 깨끗해졌을 뿐인데 맛이 달라졌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맛 평가에 모순이다. 호텔 레스토랑처럼 고급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곳에서 파는 음식이 비싸기만 하고 맛없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은 이유가 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 맛과 접객 서비스 그리고 식당 내부 환경 등이 합쳐진 가격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경제사정과 맞지 않다면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도 맛을 문제 삼으며 말한다. 그 음식이 정말로 맛이 없거나 (최소한 10명 중 6명은 맛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혹은 접객 서비스나 환경에 큰 문제 있다면 문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음식 맛이 정말 좋다면 음식점 자체를 문제 삼으면 안 된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한식당이 있다.(2022년 4월 19일 개업했다.) 주방의 헤드 셰프인 박주은(33) 셰프 이름을 내건 식당이다.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36 경희당 빌딩 8층에 자리한 '주은'이다. 박주은 셰프는 조희숙 셰프(64세)가 오너 셰프로 운영하던 '한식 공간'에서 같이 일했던 경력이 있다. '한식 공간'이 문 닫으면서 이곳 주방 식구들이 함께 '주은'으로 옮겼다. '주은'은 고품격 투어 전문 여행사 ‘뚜르 디 메디치’ 서현정(55) 대표가 공간을 만들었다. 서 대표는 이곳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한국의 고급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조희숙 셰프가 오너 셰프로 운영한 '한식 공간'은 문을 닫았다.

조희숙 셰프에 관한 기사 둘을 링크해 둔다.

https://woman.donga.com/3/all/12/2108288/1

https://guide.michelin.com/kr/ko/article/people/michelin_guide_seoul_genesis_mentor_chef_award


식당 내부 인테리어를 한국 전통 공예품과 도자기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 (가구도 김윤관 목수가 제작했다.) 사실상 전시 공간 속에서 고급 한식을 즐기는 곳으로 만들었다. 한편에는 대형 보조 주방을 만들어 관심 있는 외국인 등이 한식 조리법을 배울 수 있는 학습공간으로 꾸몄다. 특별한 여행 욕구 지닌 고객 대상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서현정 대표의 경험이 이곳 한식당 경영에 스며 있다. 점심 12만 원, 저녁 20만 원. 술 페어링은 한국 술 8잔, 와인 5잔 각 12만 원인 가격은 고급 호텔 한식당 가격이다. 이런 스타일의 한식당이 점심, 저녁으로 항상 좌석이 가득 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중식당처럼 항상 붐빈다면 여유로운 식사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 관광객 대상으로 한 요리 교실 운영과 옥상에 지을 예정인 정자에  한식 잔칫집이라는 뜻의 ‘한연당 (韓宴堂)’ 현판을 건 뒤 한 팀만 받고, 때로는 가벼운 국악 공연 판을 벌이거나, 대관 행사도 계획한다는 서현정 대표 생각은 순수하게 한식당 경영 만으로 이익을 볼 생각이 아님을 엿볼 수 있다.

정식 개업을 하기 전 조희숙 전 한식 공간 셰프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사전 점검을 통한 평가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기 전 중앙선데이에 맛집 탐방 기사인 맛따라기 기사를 쓰고 있는 이택희 필자와 의견을 나누면서 이런 말을 전했다. '혹시 공간이 음식 맛을 압도할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서현정 대표가 기획한 내부 인테리어에 관한 말을 일부 전해 듣고 한 말이다. 한식 공간에서 먹었던 음식과 비슷했지만 느낌은 달랐다. 공간이 주는 영향일 수도 있고 주방을 담당한 셰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이곳에 처음 갔기 때문일 것이다. 내부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식탁 그리고 음식 그릇 등 모든 것을 작품 수준으로 준비한 곳이다.


보고 만지고 먹는 게 모두 예술품…‘국대 한식당’ 꿈꾼다 - 중앙선데이 2022년 4월 23일 자 기사.

이 기사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사진에 별도 설명을 하지 않은 이유다.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1980년대)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베어스타운(이게 맞나 싶다... 기억이 가물가물)이라는 생맥주 집이 있었다. 4층 정도 되는 건물 전체를 사용했는데 2층부터는 실내 벽면에 사진을 전시했다. 낮에는 사진 전시 공간이었고 저녁에는 생맥주를 팔았다. 처음 이곳에 갔을 때는 맥주 맛을 보기보다는 주변에 걸린 사진을 보느라 시선이 흩어졌고 이야기가 분산되었다. 자주 가게 된 뒤에야 맥주에 집중하게 되었다. 

'주은'을 찾은 외국인 손님이 공간을 채운 (작품성 짙은) 공예품에 시선을 뺏기면서 맛에 대한 감각이 둔해질까 살짝 걱정이 들었다. 코스 식으로 나온 메뉴마다 식당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주은 헤드 셰프의 고민이 맛에 스며 있었다. 플레이팅도 마찬가지였다. 그릇 하나하나, 그리고 마지막 후식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챙긴 결과물이었다. 

한 나라의 문화는 다양한 층위를 가지면서도 다채로운 변주가 있어야 더욱 관심을 끌고 인정을 받게 된다. 음악 분야만 보더라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살짝 B급 감성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BTS와 같이 전 세계에  강한 팬덤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조수미 같은 정통 클래식 성악가도 있고 김준수 같은 전통 소리꾼도 있다. 음식 문화도 마찬가지다. 해장국 감자탕 같은 서민적인 음식도 있지만, 임금만이 먹던 궁중 음식도 있다. 일제 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 와중에 희미해지긴 했어도 우리 음식 문화에도 다양한 위치에서 즐기던 문화가 있었다. 이곳 '주은'의 위치는 정식 개업 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평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필수 방문 식당이 되기를 바라는 서현정 대표의 희망을 응원한다.  [빈모]


[참고사항] 

서현정 대표의 남편은 금태섭 전 의원이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2/04/23/CXOASXBQ2FBPRFXC4F5D6NWRSY/

두 아들이 있고 큰 아들 금중혁은 의경으로 복무한 경험을 책으로 썼다.

https://brunch.co.kr/@shinis/25

금태섭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8%88%ED%83%9C%EC%84%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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