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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세상에서 가장 나쁜 친구는 바로 나

by 먼지잼

하루아침에 3년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3년이라는 세월이 쌓였던 만큼 이유도 많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함께 일한 동료들도, 하다못해 마지막을 고한 나의 상사도. 그렇지만 오직 나만은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왜 진작 열심히 하지 않았어?
왜 그때 그런 실수를 했어?
이렇게 될 걸 예상하지 못했어?
예상했으면서 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어?


자신에게 쏟아내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고스란히 맞았다. 한편으로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내가 나에게 왜 그렇게까지 잔인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이렇게 혹독하고 잔인하다는 건 인지하지 못했다. 퇴사 후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이 이런 날 보며 이야기했다.


언니, 언니는 자신에게 너무 모진 것 같아요.
왜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죠?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 취향에 대해, 그리고 내 감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나인데... 내가 나를 잘 돌보지 못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상담사가 내게 번아웃이라고 말했을 때도, 전 번아웃은 아닌 것 같아요. 아직 의욕이 넘치는걸요!라고 대꾸했다. 인정하기 싫었던 게 아니다. 단지 뭘 인정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거다.


동생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지쳤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번아웃과 함께 일 년 여 동안 우울증이 함께 왔음도 인정하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었던, 자꾸만 가라앉는 자신을 견뎌낼 수 없어서 자신의 멱살을 잡고 끌고 다녔던,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벽에 부딪히기만 해서 죽음을 떠올렸던 날들. 나에게 있어 최악의 친구는 바로 나였다. 그 누구보다 날 잘 알면서도, 그 누구보다 날 혹독하게 대했으니까.


이제라도 나를 돌보고 또 다른 누군가를 돌아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계획에 없던 번아웃에 대한 기록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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