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는 지가 발 뻗고 누울 자리를 마련하고 세상에 나왔어.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잖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크게 와닿는 건 없다. 와닿지 않는 정도가 아니고 '조이고 댄스', '여학생 조기 입학'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정책 혹은 대책들을 보면 화가 날 지경이야.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제도를 하나 꼽자면 아동수당, 부모급여, 보육수당 등 나라에서 지원하는 각종 육아수당이야. 둘째 낳고 육아 휴직 중이라 수입이 확 줄었는데 현금으로 받으니까 큰 도움이 돼. 하지만 이 수당 때문에 둘째를 임신한 건 아니야. 돈보다 더 필요한 게 뭔지 알아? 아이를 돌볼 손과 시간! 둘째 임신 중에 이게 해결됐거든.
첫째 키울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어. 새벽 여섯 시에 집을 나서서 일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일곱 시. 그때부터 육아와 집안일 시작이지. 주로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는 남편덕에 주말엔 독박육아. 어쩌다 주말에 남편이 쉬는 날이면 세 식구가 함께 하는 몇 안 되는 날이기 때문에 애 데리고 나가야 했거든. 혼자 보든 남편과 함께 있든 아이랑 함께 있는 시간에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놀아줬어. 아이와 함께 있어줄 시간이 적은 워킹맘의 죄책감이 내 맘속에도 디폴트값으로 깔려있거든. 그렇게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내 몸 안에 있는 에너지를 쥐어짜서 생활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어느 주말인가 아이랑 둘이 놀이터에 있던 날, 나처럼 아이와 단둘이 나온 여자를 본 적이 있어. 한 시간쯤 흘렀을까? 저 멀리서 크게 '여보~'하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는데 어떤 남자가 두 팔 벌려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라. 그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나처럼 혼자 독박 육아 중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그 여자가 '아빠 왔다~'하며 함박웃음으로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곧 남편과 와락 포옹을 하더라. 그 장면을 보는데 내가 왜 서럽던지...
그런데 둘째가 생겼대. 앞이 깜깜하더라. 내가 할 수 있을까? 근심 걱정으로 한숨을 푹푹 쉬던 날들이 이어지다 남편이 이직을 했어. 주말에 쉴 수 있는 직장으로 말이야. 회사를 옮기고 보니 직장 어린이집이 있대. 게다가 직장 어린이집이 생긴 지 얼마 안돼서 아직 정원이 다 차지 않아 첫째가 바로 입소할 수 있다는 거야. 바로 어린이집을 옮겼어. 출산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조산끼가 있어서 계속 누워있어야 했는데 첫째가 아빠랑 같이 출퇴근을 하니 나 혼자서 첫째를 볼 일은 없어져서 막달까지 잘 버틸 수 있었어. 오는 3월부터 둘째도 어린이집에 보낼 예정이었는데 첫째가 이미 다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둘째는 자동으로 합격! 우리 신랑 어린이집이 좋다고 사내에 소문이 나서 지원자가 정원보다 많아 떨어진 직원도 있다고 하더라고. 이러니 지가 누울 자리 마련하고 나왔다고 할 수밖에. 우리 부부는 우리 딸 덕분에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도 하고 좋은 어린이집도 만났다고 믿고 있어.
다만 첫째에게는 조금 미안했어. 아빠랑 매일 출퇴근을 함께 해야 하기에 아이가 매일 오가기에는 거리가 조금 멀고,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기니까. 전화위복. 근심과는 달리 매일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아빠와 조잘거리다 보니 부자 관계가 아주 돈독해. 요즘은 자다 깨면 엄마보다 아빠를 찾을 정도야. 집 근처 시립어린이집에 다닐 때에는 하원을 조금만 늦게 가도 우리 애가 혼자 남아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직장어린이집에서는 부모들이 전부 퇴근하고 데리러 가서 다 같이 늦게 가니까 아이가 '나만 혼자 늦게 가.'라며 속상해할 일이 없어.
신학기 오리엔테이션, 학부모 상담, 학부모 참여 수업 등등 각종 어린이집 행사는 보통 오후 4~5시에 진행해. 직원들이 어린이집 행사에 참여하고 바로 퇴근할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거지. 근무한 걸로 인정해 주는 건 물론이고 말이야. 첫째 행사 때는 연차를 써야 해서 스케줄 신청 기간이 아닐 때 행사가 잡히면 정말 난감했거든. 아이 키우는 엄마에게는 법정 연차개수 자체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는 애들 아빠가 일하다가 잠깐 참여하면 되니까 부모가 빠져서 아이가 서운해할 일도, 워킹맘/워킹대디가 일 빼려고 발을 동동 구를 일도 없어졌어. 어린이집 선생님들 분위기도 좋아. 등하원 때 선생님들을 마주하면 분위기를 알 수 있잖아. 아이들을 대하는 눈빛, 태도, 목소리에 사랑이 가득가득해. 정말이지 우리 신랑 회사는 나라에서 저출산 극복에 큰일 했다고 표창해줘야 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 계열사 중에는 사내 어린이집에 입소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 한 자녀만 다닐 수 있게 자녀수를 제한한데도 있다고 하더라고. 어떤 똥멍청이가 그런 사칙을 만들었는지 애가 없거나 있더라도 양육에는 1퍼센트도 참여하지 않았을 사람인게 분명해. 직장어린이집은 사랑이야. 그런 좋은 제도를 만들어놓고 이상한 규칙으로 훼손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보통 어린이집 등원 시간은 오전 9~10시. 하원 시간은 오후 4시. 부부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여섯 시에 퇴근하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한다면 형제자매나 조부모의 도움 없이 오롯이 부부 둘만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보통 엄마들이 전업으로 돌아서게 되는 순간이 오지. 나도 애를 낳아보니 여자들이 왜 아이를 핑계로 일을 그만두는지 알겠더라고. 그건 핑계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나는 시어머니께서 아이들 양육에 엄청나게 큰 도움을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애들을 보면 그만둬야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
내가 복직하고 나면 돌쟁이 딸과 한국나이 5세 아들을 혼자서 데리고 출근해야 할 신랑이 걱정되긴 해. 조금 많이 힘들겠지만 힘들어도 맡길 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