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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원 동기, 일명 조동은 오래간다?!

by 황금빛 Dec 19. 2024

 

"잠시 후 열 시에 순풍 산후조리원 2024년 11기 입소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안에 계신 산모분들께서는 조리원 공용 거실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출산 후 자연분만은 3일, 제왕절개는 5일 정도 입원을 해. 퇴원하면 조리원으로 향하지. 조리원에 입소하면 방안내와 조리원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은 후 휴식하고 다음 날 오전 입소식을 하지. 입소식에 모인 산모들은 이름, 나이, 아이 태명과 출산일 등 자기소개를 하며 안면을 트고 대표를 뽑아. 이때 모인 사람들이 바로 내 동기들, 일명 조동이야. 산후조리 기간 이 동기들과 산후요가, 초점책 만들기, 모빌 만들기, 성공적인 모유 수유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함께 식사하며 동기애를 다지게 되지. 입소식에서 뽑힌 대표의 주도하에 단톡방이 생기고 조리원 퇴소 후에도 정기적인 모임을 이어가. 가끔 번개를 하기도 해.



 여기까지가 내 상상 속 조리원 동기가 생기게 되는 과정이었어. 막상 애를 낳고 보니 조동은 조리원에 들어간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더라고. 첫째 때는 코로나 시기라 옆 방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코빼기도 본 적이 없었어. 당연히 조리원 동기가 있을 리 만무하지. 둘째 때는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그게 다였어. 나처럼 인간관계에 있어 수동적인 사람은 누군가가 나에게 연락처를 묻지 않는 이상 조리원을 나가면 다시 마주칠 일이 없으므로 관계가 지속되기는 힘들어. 정해진 식사 시간에 딱히 배가 고프지 않거나, 밖에 나가기 귀찮고 텔레비전을 보며 밥을 먹고 싶을 땐 방으로 배식해 달라고 하기도 해. 그럼 더더욱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없어. 조리원에서 제공하는 산후프로그램 중에는 그 프로그램에 집중하느라 생각보다 서로 말할 일이 없어서 식사 시간이 가장 대화가 활발한 시간이거든. 결국 둘째 때도 조리원 동기는 생기지 않았어. 딱히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어차피 복직하면 다른 엄마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럼에도 연락처를 주고받은 친구가 있었어. 둘째를 낳았다는 점, 엄마표 영어에 관심이 많다는 점 등등 공통분모가 있어서 말이 잘 통했어. 우리는 조리원 퇴소 후에도 엄마표 영어를 위해 스터디를 계속하기로 했고 실행에 옮겼어.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조리원에서 사귄 엄마들과 동기 모임을 하는데 언니도 나와보라며 나를 불러줬어. 앞서 말했다시피 첫째 때는 코로나 시국이라 조리원 동기가 뭔지도 몰랐고, 워킹맘이라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등·하원 시켜주셨기 때문에 아이 어린이집 엄마들과의 교류도 전무했고, 오픈채팅방이나 맘카페를 이용해 친구를 사귈 만큼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라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가 아예 없었어. 은근히 설레더라. 친구한테 나도 조동모임이 생길 거 같다며 자랑을 하기도 했어. 그때 친구가 그러더라. 조리원 동기들이 다른 엄마들 모임보다 더 끈끈하고 오래간다고.


 나까지 총 네 명의 멤버. 조리원에서 사람들을 분류해서 받았나 싶을 정도로 잘 맞아. 모두 둘째 엄마들이고 첫째와 둘째 터울도 2~3살로 비슷해. 조동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말이 정말 잘 통한다는 거야.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고 하잖아. 아이가 몇 개월 됐느냐에 따라 발달 단계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미묘하게 관심사가 달라. 예를 들면 생후 5개월 된 아이의 엄마는 이유식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11개월 된 아이의 엄마는 돌잔치에 신경을 쓰지. 그런데 조동들은 길어야 1~2주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이들 발달도 비슷하고 관심 주제가 비슷해서 공유할 정보도 할 얘기도 참 많아. 우리 모두 첫째가 있기 때문에 둘째로 인한 첫째의 퇴행도 도마 위에 많이 오르곤 해.


 몰랐던 육아 용품도 이 친구가 쓰는 걸 보고 바로 따라 살 수 있어. 우리 애보다 개월 수가 빠른 아이들 거는 아직 우리 아이가 쓸 때가 아니야. 늦은 아이들 거는 앗! 우리 아이도 이거 해줄걸, 이거 있었으면 좋았겠다 하고 후회만 하게 되지. 우리 둘째가 이유식을 너무 안 먹어서 고민이었는데, 동기 중의 한 명이 모유 먹는 아가들은 철분제를 따로 사서 보충해야 한다고 알려줘서 철분이 모자라도 이유식 거부가 올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실내에서 모였다가 밖으로 산책하러 가자고 나갔다가 찬바람에 아이가 감기 걸리는 거 아닌지 걱정하고 있으니, 아기띠에 고정할 수 있는 담요를 빌려줘서 아기띠 워머의 존재를 알고 바로 사서 요즘 요긴하게 쓰고 있어.

 또 아예 생각지도 못한 아이를 위한 활동을 하기도 해. 다음 모임은 베이비 수영장에 가자, 첫째 데리고 주말에 철도박물관 다녀왔는데 애가 환장한다, 등등. 사실 애들 데리고 어디 갈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거든. 베이비 수영장에서 친구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꼈잖아. 우리 딸내미가 물에 발가락도 못 담그고 나에게 착 붙어 있는 거야. 한 시간에 3만 4천 원짜리인데. 게다가 나 거기서 떡 뻥에, 이유식에 커피까지 사 먹었는데…. 나에게서 1센티만 떨어져도 울어 재끼는 딸내미…. 혼자 갔거나 남편이랑 갔으면 애 울리지 말고 그냥 가자 이러고 나왔을 거야. 근데 함께 간 엄마들과 같이 있으니 견딜 만하더라고. 수다도 떨고 마음이 편했어. 우리 아이를 안고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노는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야 하면서 수영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있었어.



 조리원 동기가 생겨서 너무 행복해. 사는 게 바빠서 시절 인연으로 남는다 해도 좋아. 이 친구들을 생각하면 좋은 기억들로 미소를 짓게 될 거 같거든. 이왕이면 이 관계가 나중에 우리 아가들 시집, 장가 보낼 때까지 쭉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너도 조리원에 들어가면 몸 안 좋고 힘들다고 방에만 처박혀있지 말고 나와서 다른 산모들과 말을 섞어봐. 같은 조리원에 있었다는 건 사는 지역이 비슷해서 퇴소 후에도 서로 만나기 쉽다는 뜻이고, 그 안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을 정도로 말이 잘 통했다면 힘든 시기에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거든! (단, 내 새끼 발달이 좀 빠르다고 자랑 금지! 느리다고 비교하고 속상해하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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