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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n 30. 2024

무계획형 인간이 하루를 사는 법

52 걸음

MBTI에 따르면 난 F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F]eeling. 즉 쉽게 말하면 기분파라고 할 수 있겠다. 추가로 [P]erceiving적인 부분도 크다. 뭔지 잘 모르지만 살펴보니 무계획형 인간이라고 표현하더라.


현대 사회에서 MBTI는 이미 유사과학의 한 장르처럼 여겨지기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그래도 재미 삼아 살펴 보는것도 나름 흥미가 생겼달까. 그래도 솔직히 혈액형으로 세분화시키던 거보다는 좀 더 나아진 느낌이긴 하다.




가끔 오해를 산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는 날 보며 계획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그렇게 보이도록 유도한 건 있지만. 그래도 몇 가지 원칙이 있긴 하다.


1. 내 머리를 믿지 않는다. 절대로‼ 2. 그러기에 모든 일과 관련된 일정은 공유 캘린더에 기록한다. 3.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언제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무한 알림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4. 주기적으로 통계를 내고 시시비비를 따져가며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한다. 5.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실수를 수정하기 위해 자체 비판 시간을 가진다.


"무계획이라더니 이것저것 뭔가 원칙이 있네요?"


진짜로 무계획이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초단기기억상실증을 앓는 수준은 아니지만 난 스스로의 머리를 잘 믿지 않는다. 단지 잊어버리지 않을 백업 장치가 여기저기 필요했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알려줄 수 있는 수많은 장치가 필요하다.


나와 관련된 모든 일은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편이다. 정말로 피치 못하게 특정 기간 내에 마무리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보통은 이런 형태로 진행됐다.




'어? 저 사람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어? 괜히 좋아 보이는데?'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 만났던 그의 모습 중 내 걸로 만들고 싶은 모습이 머릿속을 맴돈다.


'어떻게 하면 내 것처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랄 것도 사실 필요 없는 게 30분 안짝으로 할지 말지를 정해버린다. 해서 망하면 안 하면 되고 해 봤는데 괜찮으면 지속하면 되는 거니까. 잠깐.. 이렇게 따져보니까 "나. 상당히 타인의존적 성향을 가졌네?"


유식하게 메타인지.. 아니 [나 자신을 아는 여정]을 통해 최대한 안 객관적인데 객관적 인척 하며 셀프 평가해 봤다.


'남의 좋은 점을 따라 하고 싶다는 거잖아? 스스로의 정체성은 어디다 두고? 계속 따라쟁이로 살 텐가?'


이런 생각도 잠시해보다 이내 접었다. 생각이란 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한번 질문을 시작하면 아메바 같던 크기의 녀석은 어느새 고질라 수준으로 커질 게 뻔하다.


"뭐 어때. 내가 나쁜 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본받을 모습 좀 내 것처럼 해보겠다는데."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눈치는 엄청 본다. 여하튼 그렇게 시작한 일 또는 루틴은 갑작스럽게 결정된 나님의 결정에 따라 거부권도 없이 실행된다.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철저하게 사전 계획되고 큰 그림을 그려서 진행해야 할 일에서는 가끔씩 실수를 하게 된다.


나름의 해결책이 있긴 하다. 엄청나게 많은 실수와 경험을 통해 "이렇게 하면 망하는구먼!"이라고 체득하고 기록해 놓는다면 다시 실수할 확률이 줄어든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유한하고 경험할 수 있는 일의 폭도 제한적이다. 무한한 삶이 지속되는 회귀자와 같은 삶이 아닌 이상 모든 걸 찍먹 해보고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는 건 불가능이라는 얘기.


"저기.. 지금 그래서 무슨 말을 전달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지를 도통 모르겠는데요?"


무계획형 인간의 전형적인 글쓰기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핑계가 좋다.)


이 글을 쓰기 전에든 생각은 "무계획형 인간이 어떻게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가?"에 대해 써보면 재밌을 거 같았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지치기되더니 지금의 방향이 돼버렸다. 이 상태에서 방향을 다시 잡으려면 지금처럼 누군가가 개입해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정신 차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회사에 다닐 때도 그다지 계획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참 많이 괴로웠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관리자로서 생활을 할 때는 무계획적인 성향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저기.. 이거 일 어떻게 진행해요? 같이 논의해서 방향 정하기로 했잖아요."

"아 맞다! 그랬지. 미안해요. 다른 거 하다 보니 그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면 주로 하고 싶은 일에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었는데 모름지기 관리자란 해야 할 일에 대한 정확한 일정 수립 및 계획을 잘 세워서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좇아 사는 성향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많이 피를 봤다.




"그러니까 지금. 무계획적인 성향에 대한 비판으로 방향을 틀은 거죠?"


정신없게 써서 미안하다. 그냥 이렇게 쭉 생각의 흐름처럼 나열하다 보면 어떤 한 결론에 다다를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쓰고 있는 중이다.


오호!! 그렇구나. 항상 이런 식이지. 내가 하는 일이 곧 지금 글을 써온 느낌과 상당히 비슷하다.


1. 뭔가가 떠올랐다.
2. 일단 시작해 본다.
3. 방향을 잃고 생각한 것과는 달라졌다.
4. 그래도 계속 써본다. (혹은 실행한다.)
5.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6.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써본다. (마치 인디언 기우제)
7. 질보다 양‼️ 100번을 하다 보면 그중 1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응. 아님.) 8. 그러다 새로운 뭔가가 떠올랐다. 9. [1-7]을 반복한다.


무한루프. 프로그래밍에서 의도된 무한 루프는 바이러스의 형태가 되고 의도되지 않은 건 버그로 불린다. 무한루프는 시간이 흐르며 컴퓨터의 자원을 과도하게 사용하게 되고 결국 과부하를 일으키며 시스템 다운을 비롯한 각종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무한루프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 [탈출조건]이 있으면 된다.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건 스스로를 루프 상태로 만드는 날 정상으로 만들 수 있는 탈출조건만 만들어 놓는다면 어떻게든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하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의도된 무한루프에 가깝다. 물론 개인의 한계라는 게 분명 있기에 내 몸과 정신의 최대치를 사용하거나 넘어서진 않으려 한다. 하루 이틀 하다 말 게 아니니까.


글 처음에 적어놓은 원칙은 날 정상 상태로 돌릴 수 있는 탈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뭔가를 할 때는 즉흥적으로 시작해 몰입하더라도 탈출 조건이 발동되는 순간은 다 접고 잠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하.. 이게 무슨 말이야 대체."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망한 거 같다. 역시 무계획은 이게 좋다니까? 때마침 나의 탈출조건 중 하나가 발동됐다‼️


[잠에서 깰 시간입니다. 온전히 하루를 살아내세요.]


"아? 내가 잠시 꿈을 꾸고 있었구나.."


꿈꾸듯 글을 쓰던 자판을 멈추고 이제는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아이들에게도 영양가 높은 음식을 챙겨줘야 하고. 안 그러면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잠시 동안 즐거웠다. 꿈꾸듯 즐거웠던 글쓰기를 멈추고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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