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은 왜 몰아서 생길까?

8

by 고성프리맨

“희수 밥 잘 챙겨 먹이고. 어젠 내가 말이 좀 심했어 미안해. 나 출근할게.”


아내의 사과하는 말에 마음은 이미 다 풀어졌지만 괜히 앙금이 남아 있는 듯 마지못한 척 고개만 끄덕였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참 잘 지어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희수와 같이 있다 보면 해야 할 일을 못할 테니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켜야 한다. 너무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문득 부모님 생각이 떠올랐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모두가 감사한 일이었다는 걸 지나고 나니 깨닫는다. 철이 들었을 땐 늦었다고 하던가. 이제는 더 이상 만나 뵐 수가 없어 마음속으로만 말을 걸어야 한다. 점점 과거에 빠져들려던 그때 희수가 우렁차게 운다.


“갈게 희수야.”


기저귀에 거하게 응가를 싸 놓았다. 냄새가 고약했지만 사랑하는 딸이라 참을 수 있다. 결혼 전에 아이를 싫어하던 내가 이렇게 기저귀를 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등원 준비를 잘 마치고 근처에 위치한 어린이집에 희수를 데려다주었다. 아침 시간에는 대부분 엄마 손을 잡고 애들이 등원하는데 남자는 보기가 드문 편이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괜히 민망해 눈을 피하게 된다.


“아버님. 혹시 오늘 희수 데리러 누가 오시나요?”

“오늘은 제가 데리러 올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밝게 말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희수를 맡기고 주변을 살피지 않은 채 급하게 발걸음을 옮겨 뛰었다.


“아버님!”


‘아차..’


주변을 좀 살펴봤어야 하는데.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다. 선생님의 비명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눈앞이 흐려져온다.



머리가 지끈 거리며 아픈 느낌이 들고 목에는 기분 나쁜 가래 같은 게 들끓었다. 나쁜 꿈에서 깨어나듯 조금씩 눈이 떠지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어? 설마..’


희수를 데려다주고 나서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급하게 나를 부르던 선생님의 목소리 그리고 뭔가에 부딪친 듯 바닥에 누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사고라도 당한 건가?


“희.. 희수 아빠! 어.. 눈. 눈을 떴어요! 엄마. 잠깐만 선생님 좀 모셔올게.”


‘지은이?’


다행스럽게 고개는 돌릴 수 있었다. 일단 눈을 뜨고 주변을 한 번 살펴보는 데 장모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시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입안에 물려 있는 게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아.. 힘들어. 조금만 다시 잘까.’



“다행입니다. 환자분께서 조금만 더 정면으로 충돌했다면 그 자리에서 사망하실 뻔했는데 이 정도면 다행을 넘어 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을 뜨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은이 그리고 누구.’


의사겠구나라는 짐작이 간다.


‘사고가 났었구나.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눈을 떴을 땐 지은이가 서 있었다.


“오빠! 좀 어때? 나 알아보겠어?”

“지.. 은아.”

“어 나 여기 있어.”

“미안해.”

“아니야. 깨어나줘서 고마워.”


내 손을 잡고 지은이가 울고 있는 게 느껴진다. 괴롭다. 그토록 신경질적이던 아내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도 몰라준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럽다.



얼마나 흘렀을까? 꽤나 오랜 시간 병원에서의 생활이 지속되었다. 언제 퇴원 가능하냐는 내 물음에 지은이는 괜찮다며 더 있어야 된다고 한다. 하지만 얼굴 표정이 밝지 않다. 가끔은 장모님이 오셔서 식사도 먹여주시고 희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러다 정적이 찾아오면 한숨을 살짝 쉬시곤 한다.


‘이 모든 게 사고당한 나 때문이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신이 또렷해져 가는 것에 비해 몸의 회복 속도가 더디다. 아직 일어나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이제 겨우 부축을 받고 화장실에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모두를 위해서라도 빨리 회복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을 듣지 않는 몸 상태가 원망스럽다.



자다가 눈을 떴을 땐 지은이가 와 있었다. 병실에 불이 꺼져 있는 걸 봐서 저녁 시간대인 듯하다.


“지은아.”

“응 깼어? 더 자지.”

“실컷 잤어. 피곤할 텐데 집에 가 있지 그랬어.”

“희수는 엄마가 봐주기로 해서 괜찮아.”


꺼내지 않고 싶었던 말이지만 결심한다.


“병원비.. 많이 나왔지?”

“됐어. 그래도 보험이랑 차주가 치료비 지원해 주고 있어서 돈은 거의 안 들었어.”

“그랬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이게 전부였다.


“병원 생활한 게 벌써 2개월이 넘어가는데 이제 퇴원해도 되지 않을까?”

“오빠. 선생님이 그랬잖아. 재활에 좀 더 신경 쓰고 회복되는 거 보고 가야 한다고. 지금 무리해서 퇴원하는 게 오히려 안 좋아.”

“미안해서. 빨리 취업도 해야 하고.”

“그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지은이도 마음이 복잡한지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 뒤로도 2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다. 재활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회복에 신경 썼고 다행스럽게 걸을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걸을 때마다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 싶다. 하지만 슬프게도 예전처럼 직장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리자 불안감이 밀려든다.


‘아니야. 할 수 있어. 아니해야 해 꼭.’


불안감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너지지 않게 마음을 잡고 있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찾아온 조급함. 가장으로서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초조한 마음은 결국 곁에 있는 아내에게 불똥이 튀며 상처를 주었다.


“오빠! 내가 언제 지금 당장 일하라고 했어? 건강해져야 일도 하는 거잖아. 사람이 왜 그래.”

“알아. 안다고. 근데 내가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맞잖아. 장모님한테 들었어. 생활비 계속 마이너스라는 거. 너한테 엄청 고마워. 그래서 그래. 이젠 나도 내 몫을 해야 해 하루라도 빨리.”

“말만 빨리한다고 하면 다 해결되는 거야? 뭘 어떻게 빨리 하겠다는 건데. 몸도 성치 않으면서. 그 상태로 회사 나갔다가 못 버티고 다시 그만두면 그땐 어떡할 거야? 오빠 자존심 엄청 센 사람인 거는 알아? 아마 자존심에 상처받게 되면 그때 어떻게 변할지도 장담 못하잖아.”


맞는 말이라 논쟁을 벌이는 의미가 없다. 알량한 자존심 그거 하나 때문에 아내한테 징징거리는 모습이라니. 시간이 흐를수록 장모님을 보는 것도 괴롭다. 볼 때마다 딸 고생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어느 사위가 곱게 보이겠는가. 그걸 떠나 집에 돈이 부족하다. 회사를 다녀도 늘 부족했지만 내가 쉬는 만큼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어져 간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 어떻게든 붙어 있을걸.’이라는 후회도 밀려온다. 그랬더라면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까지 든다. 후회를 아무리 한다 해도 벌어진 일을 돌이킬 방법은 없다.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지은이의 걱정을 뒤로하고 빨리 직장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이유가 존재하니까.



퇴원 후 집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컴퓨터 앞에 앉은 일이다. 그동안 써버린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빨리 이력서를 넣고 취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아내는 조금 더 쉬라고 성화지만 구직 활동을 강하게 말리지는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파도 계속해서 쉴 수 없다. 아프더라도 회사에 가서 아파야 한다. 최소한 희수가 다 클 때까지 만이라도.


회사의 업종이나 기술적인 요구사항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작은 곳부터 큰 곳까지 걸리는 데로 이력서를 다 넣었다. 제발 어디 한 군데라도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작업해 이력서를 수십 군데에 넣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으으으.”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고통스러웠다. 문득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니니 너무 오래 한 자세로 있으면 안 됩니다. 조금씩 걷기도 하시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스트레칭도 계속해주셔야 합니다. 부득이하게 오래 앉아 있거나 해야 한다면 타이머라도 맞춰 놓고 짬짬이 움직이세요.”


‘아뿔싸. 내가 너무 경솔했어. 나도 모르게 집중하다 보니 그만.’


더 이상 예전에 살던 모습대로 살아가서 안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고통스러운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땀이 비 오듯 등 전체가 젖어 있었다. 지금 상태로 취업을 한다면 최소한 하루에 7시간 이상은 앉아 있어야 할 텐데. 가능한 일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불안감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신도 모르는 새 자신감이 떨어져 간다. 갑자기 죄책감이 들어 동네 산책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재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몸이 최대한 회복되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밖으로 나가 천천히 동네를 걸어본다. 늘 똑같은 자리에 있었던 집, 가게, 나무 같은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특별할 거 없이 지나치던 것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특별해 보이는지. 아프고 나면 사람이 변한다던데 그런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 도중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김선호 님. 저희 회사에 지원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면접 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네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일단 저희가 사전 인터뷰를 먼저 진행해야 하는데 이번 주 가능한 날이랑 선호하는 시간대가 있으시면 3개 정도 뽑아서 문자로 보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기술 면접 진행하기에 앞서 간단하게나마 확인할 사항들이 있어서요.”

“제가 그럼 정리해서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저 혹시.”

“네 말씀하세요.”

“전화 인터뷰는 어떤 걸 주로 물어보는지 간략하게라도 알 수 있을까요?”

“음. 네. 자세하게는 기밀사항이라 다 알려드릴 순 없지만 저희 실무 담당자가 30분 정도 질문을 드릴 예정입니다. 기술적인 질문을 드릴 예정이며 개인의 경력에 따라 질문의 난이도는 상이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군요. 따로 뭐 더 준비할 건 없을까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라도 정보를 더 캐내고 싶었다.


“특별히 준비하실 건 없으실 거 같고요. 조금 부탁드리자면 조용한 공간에서 인터뷰 진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인터뷰 요청에 다시 마음이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인터뷰를 해야 해서 긴장이 된다.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해. 잘 해내야 한다. 꼭. 무조건. 중압감이 커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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