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내가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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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그렇게 몇 번의 면접과 채용을 겪으며 한동안 여러 회사를 떠돌았다. 급하게 취업했던 곳은 막상 다닐 수 없는 환경이거나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다. 그나마 괜찮았던 곳은 2주 정도 다녔는데 야근하던 중간에 기억을 잠시 잃기도 했다. 눈을 떴을 땐 병원 응급실이었고 지은이가 울고 있었다. 몇 차례 이직을 반복하며 하나 느낀 게 있다.


‘더 이상 정상적인 회사 생활은 할 수 없겠구나.’


비참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응급실에서 일어났을 땐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다. 더 이상 직장 생활을 못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은아..”

“오빠.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봐봐. 결국 이렇게 응급실행이잖아. 오빠 잘못되면 우리 희수는 또 어떡해? 난 어떡하고.”

“미안하다. 내가 못나서.”

“그런 소리 들으려고 말하는 거 아니야. 이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해. 그래 솔직히 오빠가 일 안 하면 우리 사는 게 많이 힘들어질 거야. 내가 버는 것보다 오빠가 벌어 오는 게 더 많았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예전을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바뀌었다.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저 날 돈 벌어오는 기계로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은이가 말없이 날 안아준다. 아내의 품에서 그렇게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퇴원하고 나서 더 이상 구직활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건강이 따라주기 전까지 하지 않겠다는 거다. 어차피 지금 몸 상태로 취업해 봤자 회사에도 우리 가족에게도 민폐일 뿐이니까.


‘도대체 난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아무리 머리를 써봐도 앞이 캄캄하다. 스스로를 늘 송충이라고 생각했다. 송충이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솔잎을 먹는다. 그런 과정에 한 치의 의심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계속해서 직장인의 모습으로 월급이라는 솔잎을 먹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사고와 함께 그 바람은 이제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예전 회사에서 부업을 하던 동료 앤디가 떠올랐다.



“내가 말이죠. 요즘 온라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쏠쏠한 거 있죠.”

“겸업하는 거예요 앤디? 그거 불법 아닌가.”

“아.. 좀 봐줘요. 회사일에는 지장 안 가게 퇴근 후에 잠 못 자가면서 하는 거니까.”

“근데 뭘 어떻게 파는데요?”

“다들 N사 알죠? 거기에서 개인도 온라인 판매할 수 있게 서비스 제공해 주는 게 있어요. 거기에 중국 쇼핑몰에 올라오는 물품 가져다가 대신 구매해 주는 거예요. 대신 구매해 주면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꿀꺽하는 거죠.”

“에이. 요즘 누구나 다 할 줄 아는 거잖아요. 그게 무슨 돈이 된다고. 괜히 힘만 들겠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닌데. 제프 해본 적은 없죠?”

“그거 할 시간에 일이나 하는 게.”


내 말에 앤디는 살짝 기분이 상한 듯하다. 하지만 이어서 말을 한다.


“많이 벌려고 하라는 게 아니라 몇 만 원이라도 벌면 치킨이라도 사 먹을 수 있잖아요. 그 돈이 어디 공짜로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그깟 치킨 그냥 사 먹으면 되는데. 열심히 하세요.”


무시당한 앤디는 더 이상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몇 달 흘렀을까.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 마시며 잡담하던 날이었다.


“요즘 새로 시작한 게 있는데 이게 진짜 대박이에요.”

“아 또 뭔데요. 저번엔 쇼핑몰 얘기하더니 그거 계속해요?”

“음.. 사정이 좀 생겨서 접었어요.”

“거봐. 금방 접었네. 돈이 안되니까 그렇지.”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암튼 접긴 접었어요. 아 그러니까 그거 말고 잠시만.”

“알았어요. 말해요.”

“우리가 무슨 일 하죠?”

“개발하죠. 아 혹시 뭐 투잡 뛰라고요 프리로?”

“아니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그건 좀 논외고. 맞아요 개발자잖아요.”

“그래서요.”

“우리가 생각할 땐 별거 아닌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와하는 것들이 있어요.”


앤디는 말을 하며 탄력이 붙었는지 얼굴까지 벌게지기 시작한다.


“그냥 우리가 하는 전문적인 영역 말고. 조금만 생각을 틀면 돼요. 가령 디자이너나 일반 사무직에 다니는 사람을 위한 맞춤형 강의 제작 같은 거 하는 거죠.”

“하아. 그것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요.”

“전문 강의가 아니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업무 자동화에 대한 거, 구독형 홈페이지 생성 및 운영법 이런 거 공부해서 강의로 만들면 수요가 있다니까요. 내가 해봤는데 벌써 80명 정도 강의 듣고 있어요.”

“휴.. 80명? 그게 돈이 돼요?”

“제 강의가 보통 3만 원 정도 거든요. 80명이니까 정산하기 전 금액은 240만 원 정도 되네요. 수수료는 아직 정산 전이라 확인 안 해봤는데 뭐 절반 정도 떼간다 치면 100만 원 정도는 받게 되지 않을까요?”


100만 원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비웃음이 나왔다. 그 돈이 있다고 뭐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하고 나중에 연봉 인상받으면 100만 원 이상으로 돈 버는 효과가 난다. ‘그 시간에 일이나 열심히 하시죠!’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그렇네요. 열심히 해봐요. 나중에 술이나 한 번 사줘요.”

“나쁘지 않은데. 뭐 어쩔 수 없죠. 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하게 할 수도 없고.”


그 뒤로도 앤디는 틈만 날 때마다 부업에 대해 얘기했다. 근데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꼭 행동으로 옮겼다. 분명 실패했던 게 참 많았는데도 꿋꿋했던 친구다. 언젠가는 한 번 무인점포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이번에 무인 아이스크림 점포 하나 창업했어요.”

“어? 사업자 냈어요?”

“아니 제 앞으로는 못하죠. 엄마 명의로 했어요.”

“와. 신기하네. 사장님이잖아. 돈 많이 벌었나 봐요?”

“아니에요. 월세내고 점포 구해서 하는 거예요. 그리고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안 들어갔어요.”

“그래도 최소 몇 천은 쓴 거 아니에요?”

“전 아직 싱글이니까 괜찮아요. 다 제 돈은 아니고 엄마랑 반씩 해서 3천 좀 안되게 썼어요.”

“앤디는 참 용감하네요. 맨날 잘 안되면서 왜 이렇게 시도해요 귀찮게.”

“제프는 계속 직장 다닐 거예요?”

“당연하죠. 정년까지 어떻게든 다닐 생각이에요. 가족이 있으니까요.”

“가족이 있으니.. 뭐 그렇죠. 전 계속 다니고 싶지 않아요.”

“근데 돈이 될만한 걸 해야 돈이 벌리는 거 아니에요? 왜 맨날 잘 안될 거 같은 것만 하는 거예요.”

“돈이 벌릴 게 어떤 건지 우리 같은 사람이 알 수는 있나요? 직장 안에서 갇혀서 일만 하는데 우리가 아는 세상이 얼마나 되겠어요. 뭐 저도 실패를 계속하고 있어서 좀 그렇긴 한데. 그냥 학습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단 뭐라도 조금씩 해봐야 늘겠죠.”

“결혼을 안 해서 그래요. 결혼하면 생각이 바뀔 거예요 분명.”

“휴.. 암튼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 뒤로 일 년 정도 앤디는 여전히 새로운 부업을 계속 만들고 실행하고를 반복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무인점포가 잘되면서 6개까지 늘렸다고 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그는 어느 날 퇴사를 했다.


“고마웠어요 제프.”

“고생 많았어요. 어디 좋은 데로 가는 거예요?”

“아니요. 이제 제 일 해야죠.”

“어? 무슨 일이요?”

“그간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요. 이제 도저히 회사 다니면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거든요. 하하.”


‘무인점포 얘기하는 건가?’


“아이스크림 가게요?”

“그것도 있고요. 저 이제 법인을 내야 할 거 같아요.”

“법인이요? 그걸 낸다고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직장인도 법인을 낼 수 있다는 걸. 그저 나와 같이 월급 받으며 생활하던 사람일 뿐이었는데 어느샌가 다른 레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상경한 느낌이 들며 그가 하는 말이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나중에라도 사업 생각 있으면 연락하세요. 감히 얘기하자면 이미 월급 이상으로는 번지 오래됐거든요. 제프도 할 수 있어요.”


분명 허세다. 그래봤자 잠시 반짝 버는 게 전부일 텐데. 순간의 유혹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앤디와 헤어졌다.



‘창업?’


머릿속에 창업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뭘 할 수 있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돈도 없지만 무슨 창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 자체가 없다. 그냥 관성처럼 듣던 창업 아이템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치킨!’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 창업이라더니. 결국 나도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는구나.’


밈처럼 얘기하던 치킨집 창업에 대해 순간이지만 진지하게 생각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니 쓴웃음이 지어졌다. 막상 하라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해온 것처럼 계속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며 코딩하는 자신의 모습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의 방해 없이 컴퓨터와 마주한 조용한 그 시간만큼은 어떤 걱정도 들지 않았다.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할 때의 만족감이 상당히 컸다. 지난 수년간 그 일로 가족을 먹여 살리지 않았던가.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하고 싶지만 한동안은 아니 어쩌면 이대로 평생 동안 다시는 못할 수도 있다. 그저 취미 생활 정도로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취미로 할 만큼 좋아하는 건 또 아니니까.


막상 창업을 떠올려 보지만 막막하기만 하다. 직장인으로 살아온 세월 동안 창업만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시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벌어 놓은 돈을 다 없애버리는 괴물 같은 행동이라고 여겼다.


‘창업은 아무나 해? 나 같은 사람이 뭘 하겠어.’


당장에 아내에게 창업에 대한 얘기를 꺼내도 좋은 소리가 돌아올 거 같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얘기해 봤자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설령 구체화한다고 해도 돈은 또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허튼 생각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에 남아 있던 창업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생겨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앤디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이에요 앤디. 잘 지내죠?]


막상 문자를 보내놓고 나니 괜히 보냈다 싶어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폰에 알림이 왔다.


[와! 제프 맞죠? 이게 얼마 만이에요. 구조 조정 소식은 들었어요. 휴.]


자. 뭐라고 답을 보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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