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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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맞아요. 저도 그렇게 됐어요.]


한참 동안 답변이 없다. 할 말이 없어서인가? 오히려 답변이 오지 않자 기분이 이상하다. 마치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거 같다. 솔직하게 말하지 말 걸 그랬나. 괜히 자책을 하고 있는 중에 답변이 왔다.


[유감이네요.]


‘유감? 겨우 이 말이 끝인가?’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닐까 싶어 쉽게 답을 못하겠다.


[혹시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한 거죠?]


맞긴 하는데 대놓고 물어봐도 될까? 과거에 앤디가 했던 말에 동조는커녕 비웃기 바빴던 모습 때문에 물어보는 게 민망하다.


[전 괜찮으니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하게 말해요 제프.]

[맞아요 앤디. 뭐 이런저런 개인사정이 좀 있긴 했는데. 저도 어쩔 수 없이 창업이라는 걸 좀 생각해 봐야 하게 됐거든요. 근데 제가 뭘 해봤어야죠. 문득 혼자 고민하던 중에 제 주변에서는 유일하게 앤디만 사업가로 변신한 케이스라 생각이 났어요.]

[제프가 사업을요? 뭔가 큰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나 보네요. 생각해 둔 아이템이 있어요?]

[부끄럽지만 아무것도 없어요. 솔직히 뭘 시도해야 하는지조차 감도 오질 않네요. 미안해요. 갑자기 이상한 소리나 하고.]

[아니에요. 흠. 근데 뭘 해보고 싶은지에 대한건 어느 정도 마련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어요?]


앤디에게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까. 개인사를 얘기하는 게 민폐일 거 같은데. 오랜만에 연락해 놓고 뻔뻔하게 어떻게 창업해야 하는지나 묻고 있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대화를 중단할까 생각이 들다가 문득 아내와 희수 생각이 났다.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백수로 있을 순 없잖아? 어차피 취업도 힘든데 모르면 배워서라도 길을 만들어야지. 그깟 자존심이 뭐 대수야?’


[제가 최근에 건강이 악화됐어요. 어떻게든 회사 취직해서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몸이 안 따라주니 방법이 없더라고요. 근데 제가 평생 해본 거라곤 개발자로 월급 받던 생활이 전부다 보니. 앤디한테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데 유일하게 생각난 사람이 앤디라서.]

[헉.. 지금은 건강이 어떠세요? 많이 안 좋아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재활 기간도 충분히 가졌고 앞으로 관리만 잘하면 괜찮을 거 같아요.]

[그러셨군요. 에효. 건강이 최곤데. 혹시 돌아다닐 수는 있는 상태세요?]

[그럼요.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고 그러는 건 힘들지만 돌아다니는 건 충분해요.]

[다행이네요. 솔직히 제가 일이 많이 바쁘거든요. 시간만 괜찮으면 직접 가서 얘기를 나누면 좋은데. 한동안은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보니. 혹시 제프가 괜찮다면 저희 회사로 한번 오실래요? 제가 2시간 정도 시간을 비울 수 있는 날이 있거든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창업과 관련해서 조금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저야 앤디만 그래준다면 너무 고맙죠.]


앤디는 오랜만에 연락해서 부탁하는 날 따뜻하게 대해줬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앤디는 그때도 진심이었다. 본인이 실행하고 행동하고 실패한 걸 숨기지 않고 공유해 줬으며 좋은 게 있으면 같이 해보자고 제안도 했다. 무시한 건 바로 나였다. 후회가 살짝 들었지만 만약 지금처럼 건강이 악화되지 않았다면 앤디 생각이 났을까? 그렇게 질문을 해보니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은 필요할 때가 되어야만 해결책을 찾는 거구나. 그게 사람이든 방법이든. 아직 구체적으로 뭔가를 들은 건 아니지만 왠지 앤디를 만나고 나면 쉽게 창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지은아. 나 할 말이 있는데.”


그날 밤 희수를 재우고 밤에 얘기를 요청했다. 할 말이 있다고 하자 이상한 소리를 할까 봐 벌써부터 아내의 표정은 밝지 않다.


“오빠. 일한다는 소리 할 거면 하지 말아 줄래? 같은 소리 반복하면서 싸우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런 거 아니고. 아니다 조금 비슷할 수는 있는데 암튼 한번 들어봐 주면 안 될까?”

“휴.. 고집쟁이네. 뭔데?”

“실은 나 창업을 좀 고민해 봤어.”

“무슨 창업?”


창업이라는 말을 꺼내며 눈치를 살폈는데 생각보다 놀라는 반응은 아니었다. 의외라고 생각하며 말을 좀 더 이어가 본다.


“솔직히 말하면 창업 아이템은 아직 없어. 이렇게 들으면 한심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상황은 그래. 이 상태로 무작정 아무거나 창업해 봤자 내 생각에 99%는 망할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잠시 길게 숨을 들이 마셨다 내뱉는다.


“지인 중에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이 있어. 같은 개발자였던 사람인데 일단 이 사람을 한번 만나볼 예정이야. 워낙 바쁜 사람인데 그래도 옛정이 있어서 2시간 정도 컨설팅을 해주기로 했거든. 그전까지 일단 필요할만한 지식을 빠르게 학습하고 가보려고. 일단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가이드라인이라도 좀 알면 앞으로 방향 정하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난 또 오빠가 일 벌였을 줄 알고 철렁했는데 아직 일 벌인 건 아니라 다행이네.”

“내가 상의도 없이 나 혼자 일을 어떻게 벌이겠어.”

“다행이야. 오빠. 솔직히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야. 가장 좋은 건 취직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몸 상태면 취업하라는 건 오빠 보고 죽으러 가라는 말 밖엔 안되잖아. 그렇다고 계속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고. 나도 오빠도 창업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 우리 둘이 머리를 아무리 맞대봤자 좋은 방법은 안 떠오를 거라고 생각해.”


아내는 생각보다 미래를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면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는데.


“잘된 거 아닐까? 일단 만나봐. 그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오빠가 그렇게 얘기한다면 분명 괜찮은 사람이겠지. 근데 큰 기대는 하지 말자. 어차피 얘기 듣는다고 우리 상황에 다 맞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렇지? 일단 공부한다 생각하고 그렇게 해. 그리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우리가 일하는 것도 결국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건데. 나 오빠 쓰러졌을 때 다짐했어. 다시는 생계 문제 때문에 다그치지 않겠다고. 전에 육아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맨날 짜증 냈던 거 미안해.”

“지은아.. 너한테 정말 미안해.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알아. 앞으로 잘 살자.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잖아. 분명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내 생각보다 아내는 훨씬 성숙하게 말을 해줬다. 언젠가부터 맨날 싸우기만 했던 우리였는데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을 다 쏟아내고 이해하고 나니 나빴던 감정도 어느새 눈 녹듯이 다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서로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잊고 지냈던 사랑하는 마음도 다시 느껴졌다.


“잘할게. 분명 먹고는 살 수 있을 거야. 내가 꼭 그렇게 만들게 조금만 기다려줘.”



며칠 후 앤디가 있는 회사에 갔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는데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 때문에 만나러 들어가는 게 잠시 고민됐다.


‘이렇게 성공하다니.. 나 같은 사람이랑 대화 나누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괜한 열등감이 생겨나며 자신감도 꺾였다. 하지만 힘들게 시간을 내주는 앤디를 생각해 심기일전하고 입구로 걸어갔다. 입구문은 자동문인데 벨을 눌러야 열어주는 구조였다. 면접자가 된 기분으로 긴장하며 벨을 눌렀다. 지나가던 남자 직원이 입구에 서 있는 날 보고 문을 열어준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 오늘 앤디. 아. 송형민 대표님을 보기로 해서 왔어요.”

“그러시군요. 잠시만요. 들어오시겠어요?”


남자 직원은 2층까지 걸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어떤 여직원 앞에 데려다줬다. 그리고 여직원에게 가서 이런저런 설명을 대신해준다.


“안녕하세요. 김선호 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앤디 보러 오신 거 맞으시죠?”

“네에.”


‘여기서도 앤디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구나. 사람 참 안 변하네.’


“절 따라오세요.”


여직원이 회의실로 안내해 준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앤디한테는 연락해 놨으니 곧 들어오실 거예요. 잠시 바깥이라고 하셨는데 들어오시는 중이시라고 하셨거든요.”

“감사합니다.”


여직원을 따라오며 사무실을 슬쩍 훑어봤는데 생각보다 직원이 많아 보였다. 어림잡아 2층에만 10여 명은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성공했을까? 앤디에 대해 너무 몰랐기도 했고 무시를 너무 크게 했나 보다. 앤디는 내가 생각하던 구멍가게 사장 느낌이 아니었다. 10분 정도 지났을 때 ‘똑똑똑’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제프! 오랜만이에요. 하핫.”

“와. 앤디 이게 얼마만이예요. 성공하셨네요.”

“성공은요 무슨 아직 멀었어요. 혹시 녹차 괜찮으시죠?”

“다 괜찮아요. 저 무슨 죽을병 걸린 거 아니에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신경 쓰여서. 녹차랑 커피 사 왔는데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그럼 녹차 마실게요. 일부러 신경 써서 사 오셨는데.”


오랜만에 만난 앤디는 어딘가 모르게 위압감이 느껴졌다. 여전히 그는 날 친근하게 대했지만 과거의 동료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성공한 사람은 역시 다른가?


“부끄럽게 왜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세요.”

“아아. 저도 모르게 그만. 잘 생겨졌네요?”

“푸핫. 농담까지 하시고! 운동을 꾸준히 하긴 했는데 살이 빠져서 그런 가 싶어요.”


잠시 티타임을 가지며 우리는 잡담을 잠시 나눴다. 잡담을 나누던 도중 앤디가 어떤 사업을 해서 규모가 커졌는지도 듣고 새삼 실행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디는 나랑은 다른 부류의 소위 말하는 난 사람이었다.


“멋지네요. 예전부터 앤디는 이것저것 참 많이 시도했었죠. 그때 조금이라도 귀담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전 애송이였어요. 그냥 이것저것 잘 모르면서 행동만 했죠. 그래서였나 사건 사고도 진짜 많이 생겼었어요. 어떤 때는 금전적으로 너무 크게 손해를 입어서 다시는 사업을 하지 말아야겠다 싶기도 했었거든요. 근데 그게 또 맘처럼 안 되는 거 있죠? 전 직장인이 체질에 정말 안 맞는지 어떻게든 직장인으로 살자고 마음먹은 게 며칠을 못 가더라고요.”


‘난 반대 성향인데..’


꿈꾸던 것과 반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와 성공한 앤디의 모습 속에 묘한 질투심이 느껴졌다. 나도 앤디처럼 될 수 있을까?



“혹시 창업 아이템 좀 생각해 봤어요 제프?”

“이것저것 많이 알아는 봤는데 여전히 어렵네요. 솔직히 무턱대고 아이템을 찾아봤자 잘 안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초 체력부터 좀 키워야 되지 않나 싶어 책을 몇 권 읽어봤어요. 오늘 앤디도 귀한 시간 일부러 내줬는데 너무 준비 없이 오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책이라도 읽긴 했는데 사실 내용도 잘 와닿진 않네요. 미안해요.”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그래도 접근 방식이 나쁘진 않은데요? 사실 오늘 만나자고 한 건 제가 주제넘게 뭘 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어요. 제프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문득 과거의 제 모습도 떠올랐거든요.”

“좋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조금 제 얘기를 해주면 제프가 창업 방향 정할 때 도움이 될까 싶네요. 전 처음에는 무조건 투자금을 최대한 안 쓰는 방향으로의 사업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구매대행이나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움직였어요.”

“아.. 온라인 쇼핑몰 말하는 거죠?”

“맞아요. 제프도 알겠지만 결국 접었죠 하하.”


과거에는 궁금하지 않았었는데 쇼핑몰 사업이 어땠을지가 궁금해졌다.


“그때 접은 이유가 있어요?”

“아 제가 이유까진 얘기한 적 없었죠?”

“네. 갑자기 엄청 궁금한데요.”


앤디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구매대행을 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일이 있었는데 몇 가지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계속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잘될 때는 한 달 월급보다도 많이 번 적이 있다고 해서 속으로 크게 놀랐다. 보기에는 별 볼일 없어 보였는데. 앤디의 구매대행 전략은 단순했다.


1. 정해진 개수만큼 상품을 쇼핑몰에 올린다.

2. 문의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하는 즉시 답변을 단다.

3. 리뷰 남겨주는 고객에게는 무조건 적지 않은 리워드를 준다.

4. 반품이 들어오면 이유를 들어보고 2차로 딜을 한다. -> 사유에 따라 구매가격의 10 - 70% 선으로 돈을 환불해 주기

5. 그럼에도 반품을 원할 경우 받아들인다.

6. 리뷰에 대해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을 남긴다.

7. 관심 있는 카테고리의 트렌드를 매일 확인하고 공부한다.


전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런 형태로 접근을 했다고 한다. 막상 듣고 나니 크게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결국 사람들 눈에 띄거나 원하는 상품을 찾아내는 안목이 중요한 거 아닐까?


“앤디. 좋은 상품을 찾지 못하면 판매도 못하는 거 아닌가요?”

“반대로 물어볼게요. 어떤 게 좋은 상품인지 제프는 아나요?”


‘좋은 상품이 뭐지?’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다. 아이폰, 맥북, 고프로, 허먼 밀러 의자. 일과 관련되거나 평소 관심 가지는 전자 기기 생각만 떠오른다. 문제는 그런 제품은 구매대행으로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다시 다른 상품을 떠올려 보려고 해 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아는 상품이 이렇게나 적다니..’


“떠오르는 상품이 별로 없죠?”


앤디가 이미 알겠다는 듯 웃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좋은 상품이라는 건 몇 개 없었다.


“많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머리가 하얘지네요. 쇼핑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가 쉽지 않네요. 어떻게 했어요 앤디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아까 얘기한 거처럼 저도 돈 쓰는 거 정말 싫어하거든요. 오죽하면 창업하면서도 돈 안 쓰고 할 만한 거 찾으려고 했겠어요. 암튼 다시 돌아와서 좋은 상품이라는 건 애초에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상품을 모른다고요?”

“네. 한 개인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품목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정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전에 제프가 그랬죠. 그딴 거 소싱하면 누가 사가냐고요.”


과거에 막말했던 모습이 떠올라 겸연쩍어졌다.


“제프한테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고요. 솔직히 저도 그랬어요. 상품을 올리면서도 팔릴 거라는 기대감이 1도 안 드는 거 있죠. 근데 사람 마음 모르는 일이더라고요. 그렇게 올렸던 물품 중에 주문 들어온 게 꽤나 있었거든요.”

“정말요? 운이 좋아서였을까요?”

“운도 작용했겠지만 단순히 운만으로는 팔리지 않아요.”


일단 상품을 올릴 때 앤디는 최대한 경쟁사가 있는지 확인을 했고 가격은 비슷한 수준 또는 조금 더 싸게 파는 전략을 택했다. 물론 싸게 파려다 손해를 보면 안 되기 때문에 마진 계산을 해서 수익률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해당 상품은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마진 계산은 어떻게 했어요?”

“마진 참 중요한 부분이죠. 특히 우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회사원은 가격 정하는 게 진짜 어렵거든요.”


구매대행 업이란 기본적으로 외국에 있는 상품을 대신 구매해서 배송대행지를 활용해 국내의 고객에게 발송하는 프로세스다. 이때 배송대행지를 이용하면 당연히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보통은 배를 이용하는 게 가성비가 좋다. 대신 배송기간은 꽤나 오래 걸리는 편이며 그 나라의 연휴나 특수한 상황과 맞물리다 보면 고무줄처럼 들쑥날쑥해진다.


“듣기만 해도 복잡한데요.”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아무튼 상품 판매가를 정할 때 고려할 게 몇 가지가 있어요. 배대지 수수료, 10% 부가세, 혹시 모를 반품 수수료, 마지막으로 제프가 생각하는 마진율을 더해야 해요. 제가 처음 소싱할 때 가장 큰 실수한 게 부가세의 개념을 몰랐다는 건데. 이것 때문에 나중에 벌은 것보다 더 많이 토해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짓이었죠. 남 좋은 일만 시킨 셈이니.”


단순해 보였던 구매대행이었는데 생각보다 따져볼 게 많았다. 앤디는 어떻게 다 아는 걸까? 역시 쉽게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풀이 죽어 있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앤디가 헛기침을 한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뭐든지 이론으로 배우면 쉬운 게 없어요. 그리고 제프한테 구매대행을 꼭 하라는 뜻은 아니니까 교양처럼 참고만 해주세요.”

“네.. 별거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네요.”

“그럼요. 세상에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막상 경험해 보면 다르거든요.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르는 장벽이 꼭 있어요. 그때 손해라도 입게 되면 다시는 창업 생각 안 하는 경우도 생길 테고요.”

“휴 너무 쉽게 생각했네요. 근데 구매대행은 정말 왜 접었어요? 잠깐 듣기만 해도 엄청 전문가 같은데.”

“하핫. 저 전문가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실수가 많았는데요.”


앤디가 구매대행을 접게 된 이유는 소송 때문이었다. 본인도 몰랐던 상표권 침해나 전안법 등에 걸리면서 과태료 폭탄을 맞기도 했다. 어디다 물어볼 곳도 없어서 카페나 오픈채팅방 등을 수소문해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나마 과태료 금액을 줄이기라도 할 수 있었다. 때로는 구매대행으로 올린 물품이 특정 회사와 독점 계약을 한 거라 국내에 팔면 문제가 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고 무턱대고 올려서 판매하다 보니 피곤한 일이 많이 생겼다. 나중에는 좀 더 욕심을 내서 남들이 판매하지 않는 비싸고 무거운 것도 소싱을 했는데 몇 번의 반품 사태를 맞이하면서 멘털이 크게 흔들렸고 결국 회사와 겸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들었다고 한다.


“오늘 모든 걸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정도만 아셔도.”

“그걸 혼자 다 감수한 거예요?”

“제가 벌인 일이었으니까요. 덕분에 회사에서 업무에 집중 못한다고 혼나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그래서 더 회사 생활을 빨리 접고 싶게 되었지만.”

“그때의 앤디는 참 용감했네요.”

“하핫 맞아요. 무모했죠. 그나마 지금보다 젋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거 같아요. 그렇다고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손해나 봤으니.”

“그래도 경험이 쌓였으니. 전 그때 왜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건지..”

“제프 탓이 아니에요. 제 친구 중에서도 아무도 귀 기울인 애가 없었어요. 다들 그냥 술안주 삼아 질겅질겅 씹고 즐기기만 했거든요. 한 번은 친구한테 돈 꿔달라고 까지 했다가 절교당하기도 했어요. 그땐 당장 틀어막아야 될 일도 많았어서.”


앤디가 지금 회사를 만들어 내기까지 그냥 된 게 아니었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본인만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기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니 2시간이 짧았다. 마치 30분 정도 지난 거 같은데 벌써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시간 엄청 빨리 지나갔네요.”

“제프가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주실 줄 몰랐어요. 저만 너무 신나서 떠들어 댄 건 아닌지.”

“아니에요. 재미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흥미진진했어요. 그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이 저였으면 싶어서 괜히 부럽고 질투 나고 그러네요.”

“할 수 있어요. 제가 크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얘기를 계속해드릴게요. 제프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비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질까요? 온라인으로도 만나서 얘기할 수는 있지만 전 에너지는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전달된다고 믿거든요.”


앤디의 말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전 대환영인데 앤디가 괜찮겠어요?”

“그래서 비정기적이라고 얘기드린 거예요. 잘난척하는 건 아니고요. 그래도 제가 한 달에 최소한 2번 정도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할게요.”

“그 정도만 돼도 바랄 게 없어요.”

“대신 이제는 제프도 마음을 좀 바꿔야 해요.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앞으로 제가 하는 말이 와닿지 않을 거예요.”

“그렇겠죠. 일단 실패하더라도 오늘 얘기해 준 구매대행이라도 한 번 과정을 겪어 볼게요. 다음 만날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재라도 만들어서 올게요.”

“좋아요. 뭐라도 상관없으니까 한 번 고민하고 시도해 보세요. 형태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분명 제프가 하고 싶다거나 괜찮을 거 같은 게 보이는 날이 올 거예요. 그럼 담에 봐요. 날짜 정하는 건 메시지로 얘기 나눠요.”


여전히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앤디와 나눴던 대화는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심어줬다. 돌아가는 길에 그냥 들어가는 게 좀 그래서 도서관이라도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구매대행과 관련한 책이라도 좀 봐보자.’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감이 오진 않는다. 그래도 막연함을 걷어내려면 해보는 수밖에. 어떻게든 시도를 해보자. 지금의 마음이 식지 않도록 스스로 응원하는 모습이 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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