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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Nov 27. 2024

몰래 본 핸드폰, 저질 농담, 피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죠? 그래요. 이쯤에서 한 번 정리를 해보도록 하죠. 대구의 술집을 갔다가 경찰서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는 고소를 진행하지 못하겠다 했어요. 당시 남자친구와는 헤어졌고(지금은 결혼함) 몇 년이 흐른 뒤 취직을 했고, 마녀와 친해지는 과정에서 B를 만났죠. 연애를 하던 중 B의 도우미 사건이 있었고, 그 뒤로도 사귀지는 않는데 몇 번 만나는 의존관계를 이어가다 초등학생 동창의 형과 사건이 있었어요. 조사를 받았고, 그래요. 그 뒤의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혹시 읽고 싶지 않으시면 절대 읽지 마세요.




블로그에 글을 썼어요. 저는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상당한 사람인가봐요. 제 안에 있는 건 먼지 하나까지 낱자들로 표현을 해 내야 비로소 편안해져요. 앞서 말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제 안에는 먼지가 너무나도 쌓였고요. 뽀얀 먼지를 후-불어 블로그에 토해냈어요. 한결 가벼워지더군요. 그 글을 엄마가 읽어버렸지만 말이에요.


엄마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날라오셨어요. 제 글을 읽고선 괴로워서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았대요. 제가 무슨 얘기를 더 하겠어요. "엄마, 나 괜찮아." 옆에 있던 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어요. 뭐가 괜찮느냐고요. 그냥 다 괜찮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냥 섹스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내 삶에는 아무런 영향이 가지 않는다고. 언니가 "엄마, 안개가 지금 윤리 의식이 다 사라진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맞아요! 언니가 정확했어요. 저는 더이상 B가 노래방 도우미를 만나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럼 B를 만나는 것에도 문제가 없어지잖아요. 대구에서 있었던 일도, 그 경찰도 자신의 일을 한 거라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 형도 그냥 여자랑 섹스를 하고 싶었겠죠! 거기에 재수없게 제가 걸려든 것이고요. 인간의 존엄성은 성관계 따위로 파괴될 수 없는 거잖아요. 그건 그냥 이 시대의 똑똑한 사람들과, 우둔한 사람들이 모인 문화에서 결정한 사항 뿐이니까요.


"그 나쁜 놈,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제가 초등학생인 것처럼 엄마와 언니가 물어봅니다. 저는 음...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나랑 더이상 관련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 사람이 벌을 받든, 받지 않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엄마가 물어봅니다. "그럼 돈이라도 받을래?" "그게 낫겠다!" 합의를 하기로 했어요.




B가 술에 취해 있어 전 두근거리는 도전을 하기로 했어요. B의 핸드폰을 열어보기로 한 거에요. 지금도 도우미를 만나고 있나, 아닌가, B의 마음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 나랑 얘기하는 다정한 B의 뒷모습이 궁금했나봐요. 아, 엄청 떨리더라고요. 남의 걸 이렇게 추잡스럽게 엿보게 되다니. 안 보면 그만이다 싶다가도 핸드폰이 꾸물꾸물 자기가 알아서 열리길 바라고도 있었어요.


B는 조금 멍청해요. 제 지문을 본인 핸드폰에 등록을 해줬었거든요. 그러면 제대로 삭제라도 하던가요. 난 B를 사랑하고 싶었으니까요. 홈버튼을 길게 눌러 원래 켜져 있던 앱 순서를 확인한 뒤, 노란 카카오톡 앱을 눌렀어요. 어떤 거 먼저 보지, 잠시 손가락을 멈칫하다가 마녀와의 카톡방에 들어갔어요. B는 언제 깰지 모르니까, 다른 여자와 한 카톡보다 그게 더 궁금했어요.


어떤 대화들이 있었냐면요, 저질 농담들이 있었어요. 그 사이로 보이는 내 이름을 볼 때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어요. 마녀는 B가 여자들, 도우미 여자들을 만나는 걸 원래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 편이 아니라 B편이었던거죠. 마녀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도 웃으며 신기해하는 저를 보고, B의 이런 면도 받아줄 수 있는 애라고 생각했나봐요. 마녀와 B에게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던 거죠. 그대로 걸려들었고요.


간간이 보이는 제 욕들을 보면서 이 사람은 못 쓸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물론 제 핸드폰을 보여주면 저도 당당할 자신이 없지만요. 몇 가지를 더 보다가 다시 앱 순서를 원래대로 되돌려놓고 지문까지 싹 지운 뒤 B 손에 핸드폰을 쥐어줬어요. B는 여전히 저에게 매달린 채로, 6개월 정도가 더 흘렀어요.




울리는 벨소리, 적혀있는 "연주"라는 두 글자. 저는 성이 붙어서 저장되어 있을 지언정 연주는 성 없이 이름만 적혀있네요. 이 글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본명, 연주. "오빠, 전화왔어." "으응? 누구..." "연주한테." "......"


속절없이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B는 체념한 듯 말을 꺼냈습니다. "지난 주말에, 친구들이 부르더라고." 저는 B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걸 내가 다 아는데, B 자신을 던지면서 나를 사랑하는 걸 정말로 아는데, 왜 그렇게 도우미를 못 놓냐고. 난 키도 크고 어리고 예쁜데 이런 내가 도우미에게 밀렸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B는 되려 화를 냅니다. 니가 날 아냐고 화를 냅니다. 어머니가 바람 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낯선 남자 차를 타고 이 지역까지 내려왔던 자신과, 그런 어머니를 찾아와 얼굴로 무거운 재떨이를 던진 아버지, 중학생이 되어 가족도 돈도 없이 친구들과 자라온 시절, B는 울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나 모르잖아. 너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버지 어머니한테 사랑받고 자라와서 밑바닥 삶을 모른다고. 니가 이해할 수 없는 삶도 있어. 너를 만나면서 최선을 다해도 너한테는 닿지 않아. 그래도 나는 이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미친 듯이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여기까지 올라왔어. 그 친구들은 아직 저 밑에 있다고." 저는 B를 만나기 전 사랑이 뭘까 궁금해하며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봐야지 하고 다짐했었습니다.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이 사람의 이런 모습은 타협이 안 됐습니다. 제 아이의 아버지가 이런 사람인 건, 싫었거든요. 그래서 그대로 말했어요. B와는 완전히 헤어졌습니다.


B는 내내 마음 아파했습니다. 대구 이야기를 듣고 엉엉 울며 저를 지켜주겠다 했는데 저를 힘들게 했고, 저는 방황했고, 성폭행 사건까지 터져버리니 아주 오래 힘들어했습니다.




B는 저를 자극하고 도발합니다. 니 까짓 게 이런 걸 할 수 있냐고. 아파하는 저를 보면 그 정도로 아프기나 하겠냐고. 저를 알아서 더 하는 말인가봐요. 한강 라면을 끓이다 뽀글이를 보고 신기하다 생각했어요. 이게 어떻게 끓지, 물에 새끼 손가락을 아주 잠깐 담갔다 뺐어요. B는 "그 정도로 되겠어? 검지 손가락으로 3초는 담궈야지." 합니다. 도발에 넘어가버린 저는 부글거리며 오기를 부립니다. 그새 끓기 시작한 물에 1초도 못 버티고 앗 뜨거워, 빼서 호호 붑니다. 이미 화상이 나버렸습니다. 저는 몇 시간을 아프다며 얼음컵에 손을 넣고 있었습니다. B는 내도록 마음 아파하며 얼음 컵을 사다줬습니다.


또 한 번은 편의점에서 사온 칼날을 만지고 있던 저한테 "그 정도로 피가 나겠어? 3cm는 휙- 길게 찔러야 나지."라고 무시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 순간적으로 피가 터져나왔고, B는 제 손목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저는 눈물이 안 났어요. 며칠 뒤엔 피부과에서 치료 비용을 듣고 낙담하여 아무런 처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모든 게 싫었나봐요. 흉터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아직도 80만원이 아까워서 흉터치료는 한 번도 받지 않았어요.


이 글을 읽고 저를 바보같다고, 이상하다고 욕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어두운 곳을 죽을 힘을 다해서 빠져나와서 이 글까지 쓰고 있는 걸요. 저 응원해주세요. 지금의 저도 저 때의 제가 이해되지 않아요. 그래도 저는 저 시절의 저를 욕하지 않을래요. 쟤도 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죠. 지금의 저와 저 때의 제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이 느껴져요. 저는 B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B는 제 마음을 아프게 한 동시에 그 시절의 저를 살게 해 준 장본인이었어요. 같은 사람을 두고서도 B를 오전에 만난 사람은 B는 최고의 사람이라 말하고, 저녁에 만난 사람은 보통 사람이라 하며, 밤에 만난 사람은 최악의 사람이라 해요. B가 어떤 사람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중도인 사람, 그 정도로 하는 게 좋겠어요. 제발 B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면 저는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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