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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Feb 25. 2019

골목, 침묵 그리고 빈틈



너의 말을 듣고 있기 때문에, 듣고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어떠한 편견도 없다.

너의 이야기 속에는 그저 너만 있다.


한 문장을 이루고 있는 단어 하나하나 속에는

네가 지금까지 이루려했던,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이룰 수 있었지만, 차마 용기내지 못했던,

그리고 곧 이루게 될 것이 틀림없는 미래의 모든 의도가 담겨있다.


네가 미래에 두려고 하는 형상들은

아직 너무나 불투명하고, 결정내려야 할 것들이 많지만

길목 곳곳 놓여진 돌부리들이 너를 넘어지게 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너에게 부정적인 판단은 보류해두고

조곤조곤 들려오는 이야기를 귀에 소중히 담는다.


바닥에 발을 디딘줄 알았는데 사실 그건 계단이었고

내리막 길인줄 알았는데 사실 오르막이었고

소나기는 흠뻑 내려 곧 무지개가 뜰 것 같았지만

현실은 너와 나에게 그렇게 쉽게 원하는 것을 줄만큼

우리를 길들일 수 없었고,

우리는 길들여질 수도 없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순응을 해야할 지 데드라인을 정하지 못한 채

현실과 이상을 번갈아 헤매이면서.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겨주기에도, 답을 주기에도

우리에겐 너무 벅찬 일이라서.


차가운 골목 어귀에서 헤어져서는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는

뜨겁게 피어오르는

새벽공기의 잔인함과 고요함 속에서.


내가 너의 달에 착륙하기 위한

더 이상의 이유는 없다.

내가 너의 달에 착륙할때 필요한

더 이상의 편견은 없다.

그러한 존재는 존재 자체로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그러한 너를 조건없이 조심스레 들여놓을

마음의 빈틈을 마련해두는 일 뿐이다.

사이사이 스며드는 너를 기쁘게 맞이하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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