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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Apr 12. 2019

상자와 나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를, 꼭꼭 감춰져 있을 무언가를 담고 있는 상자의 겉면을 예쁘게 포장한다.

리본을 묶으니 숨이 막힌다. 화려한 색감은 피부를 상하게 한다.

매일 아침 새롭게하여 매대에 진열된다. 매대의 상자는 오늘도 신선하다.

팔리지 않은 저녁. 그 날의 먼지가 뽀얗게 가라 앉았다. 그것을 그대로 품에 안고 다시 잠이든다.


아침이 밝자 어제의 먼지가 어딘가에 숨어버렸다. 그래서 먼지의 존재를 잊었다.

오늘도 여전히 상자를 예쁘게 포장하여 매대 위에 올렸다.

꾸며진 상자는 오늘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화려한 상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낡는다. 껍질을 벗기니 실망하고 버려지고 외면받는다.

상자는 가능하면 오랫동안 껍질을 벗지 않기로 한다.

언제까지고 화려한 상자로 남아있기로 한다.


상자는 오늘도 먼 길을 돌아 골목 한 구석에서 잠시 껍질을 벗어보았다.

상자는 포장을 벗긴 후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 지 모른다.

그래서 상자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렵다.


오늘도 상자는 잠시 껍질을 벗을 수 있는 구석을 찾아 나선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편히 숨은 쉴 수 있을거라 믿으며

어디인지 모르는 어두운 심연으로 작은 몸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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