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르 Jan 03. 2018

어느 관종의 고백



나는 초중고 시절, 주로 한 두명과만 어울리는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단체 생활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흔한 동아리 생활도 1년 후 잠수를 타게 된다. 혼자인 시간, 함께인 시간을 철저히 분리해서 즐기다보니 나의 대학시절은 완전히 혼자이지도, 완전히 함께이지도 않은 뭉근하고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끝이났다. 왜 나는 단체생활을 잘 못하는걸까, 의문이 가득한 나의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교 졸업 후 입사라는 걸 했다. 회사에 들어가면 그저 돈을 열심히 벌어 승진을 빨리해서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야지 했다. 그것이 인생의 종착역인것만 같았다. 하지만 회사에 입사하자 마자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내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는걸 깨달았다. 사회생활에서의 좌절은 길에 치이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웃으며 밥을 먹고, 일하는 모습을 늘 다른 세계에서 지켜 보았다. 나는 왜 회사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할까? 왜 사람들과 어울리지를 못할까? 성격에 문제가 있는걸까? 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혼자서 끙끙 앓아보기도, 정면으로 부딪쳐보기도 했지만, 결국 나의 첫 회사생활은 저항할 틈도 없이 가볍게 나에게 K.O.를 날렸다. 회사라는 공간은 머리 좀 큰 사람들이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우연히 모인 단체생활의 연장선임을 깨닫는데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메일을 보고 같은 시간에 회의를 하며 일주일에 적어도 세 끼이상은 함께 밥을 먹는. 만만해보이지 않으려 온갖 개인기를 펼쳐내며 손해보지 않으려 온갖 권모술수와 잔머리를 동원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이직 후, 이전 회사에서의 실패를 겪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라는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사실 그때는 어떻게 변해야하는 지도 몰랐다. 아무도 나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나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해도 "나" 라는 인간의 본질까지는 헤치고 싶지 않았으므로 회사에서만 쓸 수 있는 '오피스 가면'을 장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실패를 재료로 촘촘히 만들어진 가면은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먹고 싶은 것을 말하거나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 하지 않기, 기쁘거나 슬픈 모든 감정들을 숨기기, 모든 사람들에 말에 웃으며 맞장구치기, 가자하면 따라가기, 무조건 대세에 따르기, 튀지않기.. 사람들은 이전과 다르게 나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꽤 귀여워해주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예전과 똑같이 가면을 쓰고 회사에 가도 즐겁지 않았다. 그저 회사에 적이 없을 뿐, 즐겁지 않은 출근길과 성취감 없는 퇴근길, 매일매일 퇴사를 고민하는 나날들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그저 부드러운 커뮤니케이션이 장점인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 두루두루 어울렸으나 내게 먼저 손을 내미는 동료는 없었다. 괜찮았다. 굳이 그래주기 바란 건 아니었다. 회사에서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는 척 하며 친목질하는 인간들이 같잖을 뿐. 회사생활은 나에게 갈등도 없고 기쁨도, 아니 아무것도 없는 무색무취무미 그 자체였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아기가 찾아왔다. 초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초기에 급하게 무급휴직을 냈다. 한참 심리적으로 공허하고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가식적으로 보이던 그 때, (나라는 인간부터가 넘버원 가식덩어리일지도) 나는 문득 주변 동갑내기 동료들과 유독 친하게 어울리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내 주변 동갑내기들은 나와 같이 20대 후반 여성, 한참 상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하며 자신이 한 일에 칭찬받고 예쁨받고 싶어하는 또래들의 집단이었다.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들보다 더 이른 나이에 가정을 이루었고, 그들보다 이 회사에서 더 빨리 입사했으며, 더 일을 잘한다는 걸 대놓고 칭찬받고 싶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속 마음은 내가 1등이기를 바랐던 욕심. 남들과의 비교레이스에서 뒤쳐지기 싫었던 마음이 내 자신을 늘 불안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상황으로 몰았던 것이다. 내 선택이 옳다고, 멋지다고 항상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인정받고 싶었다. 내 인생이라는 시험지를 내가 아닌 남이 채점하도록 권한을 넘겨버린 것이다.


과거의 나는 회사에서 관심을 받지 못해 안달 난 신입사원이었고, 이런 욕심 많은 나를 선배언니들이 미워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두 번째 회사에서는 관심받고 싶어하는 것을 티내지 않는 가면을 쓰고 있었으나, 나는 그 누구보다 관심받고 싶어하는 관종충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관종의 적은 관종. 내 주변에 있는 적들에게 나는 절대로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늘 그들이 먼저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나의 성격적 결함을 글로 써내는 것이 결코 자랑스럽지 않다. 다만 나의 이런 관심결핍은 자연스럽게 나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이 역시 결코 즐겁지 않은 이야기다. 가족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은 느낄 수가 없는, 그런 사람들에겐 이미 충분히 면역되어 있는, 애정결핍이라는 바이러스를 아무리 주사해도 반응조차 없는 부류에게 나는 제 3세계의 외계인일 뿐이다. 어떤 사람을 싫어할 때 그 사람이 나의 단점을 반사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단점을 극복해야하는 대상으로만 보는데, 굳이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살아야만 하는걸까. 현상을 인지하고 눈 앞에 닥친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든 해결해나갈 수 있다면, 단점도 전화위복이 되지 않겠는가. 관심 받고 싶어서 매사에 절실하게 매달리고, 처절하게 헌신했던 내 모습이 지금의 나를 만들기도 한 것처럼.


어쩔수 없는 나의 치부를 스스로 까발리고 나니 부끄러우면서도, 속이 후련하다.

하고싶은 말은 이거였다.

"이런 사람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우리 조금 더 앞으로 나가봅시다"

Show me your attention, please.



이전 11화 발자국 같은 내 인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