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이야기 17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처음으로 “안녕”을 고해야 했던 친구의 출산 예정일이 추석이었다. 비교하지 않고 살아간다라는 가치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4인 가족을 바라보며 올해도 어김없이 우울해졌다. 연휴 내내 우울감을 숨기지 못했고, “안동에 개미취 이쁘겠다.” 말 한마디에 그는 안동으로 운전을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아이와 나를 깨워 한 시간 반을 달려 휴게소에서 밥을 먹이고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했다. 아홉 시 반. 햇빛이 쏟아지진 않았지만, 날이 흐리면 흐릴수록 나는 좋았다. 오히려 행운처럼 느껴졌다. 비를 머금은 흐린 날엔 자연의 색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이런 날에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찰나가 있기 때문이었다.
안동 하회마을 입구에 도착해 몇 걸음 걸으니 내가 좋아하는 풀내음이 나에게 짙게 스며들었다. 나는 깊이 숨을 쉬며 눈을 감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이 순간을 음미한다. 천천히 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사각의 프레임 속 풍경을 바라본다.
뷰파인더로 기록되는 찰나의 시간은 나에게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경계에 발을 딛고 서는 시간이었다.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경계에서 나의 현실을 망상으로 덮어버린다. 그제야 나는 어떤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숨 쉴 수 있었다. 호흡을 고르며 사실이기도, 사실이 아니기도 한순간들을 찾는다. 하지만, 올해는 시기가 조금 늦어 버린 것일까.
추석 내도록 세차게 쏟아진 비에 개미취는 상당수가 목이 꺾인 채 바닥을 향해 있다. 모니터 너머로 보았던 연보랏빛 꽃잎 안. 찬란한 별처럼 빛나던 노란 환상은 사라진 상태였다. 너무 늦었나. 라며 허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지만, 십오 년 만에 다시 마주한 안동 하회마을의 찰나를 그냥 흘려보내기엔 나를 위해 오랜 시간 운전해 온 그의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아직 생생한 개미취를 찾아 한참을 다 져버린 개미취 꽃밭을 헤맨다. 이윽고 하나의 활짝 핀 개미취 꽃다발을 찾아내었다. 가까스로 찾아낸 개미취 꽃 위 밤새 내린 빗방울이 방울방울 무게를 더 하며 꽃잎에 내려앉아있다. 어떤 개미취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했지만, 내가 찾아낸 개미취는 오히려 빗방울이 반갑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개미취를 사각 프레임에 담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늦게 피어줘서 고마워.
생생한 연보랏빛 꽃잎 위로 등에가 날아올랐다. 메밀꽃밭에서 느꼈던 공기의 진동으로 느껴질 만큼 큰 웅웅 거리는 삶의 소리를 들을 순 없었지만, 왜인지 웅웅 거리는 소리가 귀 옆에서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나는 귀여워를 연신 외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셔터를 눌렀다. 지금 이 순간은 개미취, 등에, 나만이 존재하는 찰나였다.
뷰파인더 너머로 연보랏빛 꽃잎이 물결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초점은 흔들리는 연보랏빛 꽃을 잡았다 놓쳤다를 반복했다. 네모난 사각 프레임 안에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농밀한 색감이 천천히 나에게 아스라이 스며든다. 연보랏빛 융단 위로 물방울이 데구루루 굴러가며 작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누가 보라색이
미친 색이라고 했어?
보라색은 황홀의 색이야!
하고 소리 치고 싶다.
하회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보랏빛 꽃을 사각 프레임 안에 날씨, 온도, 습도, 바람과 함께 담았다. 눈을 감으면 지금 이 순간이 생생히 떠오를 만큼. 하나하나 새겨 넣었다.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이 한 찰나처럼 지나갔다. 한계점에 맞닿은 그와 아이의 재촉에 못 이기는 척 걸음을 옮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에도 생생히 새겨 넣었다.
그러다 문득, 윤기 작가님께서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사진에 흰 프레임을 넣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느냐고.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사각 프레임에 넣는 건 제 사진이라는 하나의 표식이기도 하지만, 현실과 사진의 경계를 잊지 않기 위해서예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흐흐흥.> 그렇다. 사진에 사각 프레임을 두르는 건 브런치에서 나만의 시그니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프레임 속의 모습은 현실일 수도, 혹은 거짓일 수도 있는 하나의 표식이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자, 나 외 타인은 볼 수 없는 나만의 세계이기도 하달까. 이 흰 사각의 프레임을 왜 두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표현할 언어가 내겐 아직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네모난 프레임 속에 담긴 그 찰나의 행복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문에 걸쇠에 건다.
다음의 찰나의 행복은
가을, 안동, 꽃, 곤충, 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