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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안동, 꽃, 곤충, 찰나

사사로운 이야기 18

by Jin

윤문, 퇴고 없는.

가을, 안동, 꽃, 곤충, 찰나

지금 시작합니다.





개미취에 만족할쏘냐. 두 손에 카메라를 꼭 쥐고 음흉하게 웃으면서 하회마을을 걸어 다녔다. 하회마을 안은 열어 둔 대문이 있는 집은 들어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담장 위로 보이는 풍경만 구경할 수 있었다. 키 작은 나에겐 너무나 버거운 담장 위의 세상.



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까치발로 뷰파인드로 확인도 하지 못한 상태로 겨우 겨우 노란 코스모스(Cosmos sulphureus Cav.)와 하회마을의 가을 풍경을 사각 프레임에 담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끙끙대며 기록한 찰나를 열어본다. 씨익 하고 미소가 지어진다. 안동의 가을이 가득 담겨있다. 저 멀리 감나무가 '지금 가을 맞아. 가을~' 하고 알려온다.



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골목의 담벼락마다 감나무에 주홍빛 감이 익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수확은 하지 않은 듯했다. 하회마을 담벼락 위에서 감이 식초 냄새를 내며 익어간다. 아이는 으힉. 소리를 내며 감이 푹 익어가는 냄새에 질겁을 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이제 감을 따야 할 텐데, 더 익으면 먹지 못 할 텐데?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 남겨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길바닥 여기저기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퍽 소리를 내며 떨어져 형체를 잃어버린 감을 바라보았다. 달콤한 감의 냄새 대신 진한 식초 냄새에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간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다 형체를 잃은 감 위에서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식사 중인 나비를 발견했다. 아이가 뛰어서 지나가도, 내가 가까이에 다가가도 눈치채지 못한 채 흡족한 듯 식사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니, 감은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 누군가를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는 건 분명한 듯 보였다.



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카메라 전원을 켜고 사각 프레임 속 찰나를 기록한다. 프레임 속 감은 이미 형체를 잃었지만, 그 위에 앉은 나비 한 마리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했을지언정, 자신에게 주어진 감이란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낸 치열한 흔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톡 쏘는 듯한 감 익은 냄새가 코 끝을 맴돌아도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냄새라 생각하니 나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감을 뒤로 하고 다시 걸었다. 비가 내리는 안동은 너무 이쁘구나. 흐린 하늘마저 정취가 있구나. 팔자걸음을 하고 엣헴. 엣헴. 하고 없는 수염도 한번 만져야 할 것 같은 이 기분. 그러다 어떤 담벼락 가득 흐드러지게 핀 유홍초가 눈에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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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유홍초



옆을 지나가는 아이가 '할머니 이거 뭐에요?' 라고 하자 아이의 할머니는 '별꽃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붉은 별 모양을 닮았기에 저 어린 친구가 별꽃으로 기억해도 괜찮겠지 싶었다. 담장에 별이 내려 앉은 듯한 유흥초가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처럼 느껴졌다.


마치 부처님 오신 날, 절 앞마당에 한가득 매달린 등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처럼, 유홍초마다 누군가의 바람이 매달려 있는 듯했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꽃잎마다 그런 기도가 스며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정말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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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둥근잎유홍초



바람은 서늘했고, 아무렇게나 흐드러지게 핀 모든 것들이 그저 아름다웠다. 걸음걸음마다 풍경이 나를 붙들었다. 나팔꽃도 많았는데 초가집과 꽤 어울려 그 자리를 오랫동안 서성서렸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그 나팔꽃이 나팔꽃이지 하는 눈빛이었지만, 하하하하하. 마음대로 할테다라며, 모른 척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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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담벼락 가득 빗방울을 머금고 활짝 핀 나팔꽃을 만나는 게 쉬운 기회인 줄 알아?” 라며 셔터를 눌렀다. 뷰파인드로 보이는 유흥초와 뒤섞여 피어난 보랏빛 나팔꽃이 둥근잎나팔꽃인지, 미국나팔꽃인지, 그냥 나팔꽃인지 헷갈렸다. 궁금증이 돋긴 했지만 이내 머리를 저었다. 나팔꽃이 어떤 종류가 무슨 상관이람. 나에게도, 저 날아오르는 등에에게도, 박각시나 나비의 삶에도 그것이 무엇이 소용 있으랴. 그들은 꿀이나 얻으면 그만이고, 나는 그 찰나들이 중요한 거지. 프레임 한 가득 예쁘면 되지.



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그 자리에

묵묵히 피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이 위안이 된다면

그걸로 족한 걸.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하회마을 관련

게시글이 또 무한 증식 중이잖아!?

그러기엔 거기서 600장 찍고

카메라 배터리가 나갔고,

그와 아이는 그 순간

만세를 외쳤다는

그런 슬픈 전설이 있어.



IMG_9888.JPG Photo by Jin / 안동하회마을



하마터면 널 놓칠 뻔 했잖아?!


퀴즈!

이 친구는 누구일까요.

요즘 통 안보여서

살아 생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꽃 위에서 나는 꽃이다. 꽃이다.

하고 있지 뭐에요.

엉덩이 너무 귀여움.


다음 안동의 찰나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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