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이야기 19
백일홍
이 놈도 멕시코 산이네?
배우자가 백일홍에 올라탄 개구리를 발견했다.
"개구리다."
"어디 어디?"
그는 손짓으로 개구리를 가리켰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고 아이는 벌써 그의 곁에서 개구리의 궁둥이를 바라보며 기웃댔다.
"아빠 앤 되게 작다~"
그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우리나라 토종 개구리야"
그의 말에 내가 옆에서 아이에게 다시 소곤거렸다.
"귀엽지?"
아이는 그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개구리를 구경했다. 이렇게 작은 개구리는 처음일 테니 우리의 목소리에 이 귀여운 개구리가 펄쩍하고 놀라 도망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건만, 이 관종 개구리는 단 한 번의 미동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꽃이다. 나는 꽃이다. 나는 꽃이 다를 읊으며 지나가라 지나가라 이 또한 지나가라를 저 작은 머리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귀여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 엄마 웃지 마. 도망갈지도 모르잖아."
아이는 개구리를 자신의 폰에 연신 담으며 신기해했고, 우리가 그러든가 말든가 아무런 미동이 없는 개구리의 궁둥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미끈한 도자기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버린 것이었다. 또는 정교하게 만들어낸 유리 공예품 같은 느낌이 들어 만져보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엄마 만지면 도망갈까?라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더니 척하면 척. 아이는 안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검지로 개구리를 램프 문지르듯 문지르면 어째서인지 윤기가 나며 반질반질한 것들에게서 나는 삐끄삐끄 하는 소리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거듭 나에게 안된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아.. 아까비.
그러다 개구리의 종류가 궁금해졌다. 이렇게 귀엽고 앙증맞은 사이즈는 분명 그의 말대로 토종 개구리는 맞을 텐데 어떤 종일까. 나는 그때부터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국립생물자원관 홈페이지를 열었다. 우리나라의 청개구리 종류에는 세 종류가 존재했다.
내가 찍어온 사진과 개구리들을 대조한다.
마치 범인을 색출하듯 예리한 눈빛으로 살펴본다.
너 인 것 같기도?
너 인 것 같기도?
아 몰라.
에라이.
아니면 말고의 정신을
여기에서도 발휘하며
포기한다.
도망가지 않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점점 더 가까이 개구리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 본다. 이렇게 보니 그냥 청개구리 인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못 느꼈지만, 사진에 찍힌 개구리님의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인다.
저리 안 꺼져?
썩 안 가?
문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고, 귀찮아 죽겠네라는 눈빛을 뒤늦게 읽어버린 기분이다. 요즘 말로 '씨눈새'라고 한다지? ㅆ / ㅂ... 눈치 없어서 미안해. 하지만 너의 궁둥이가 너무 귀여웠는 걸 어떻게 해. 네가 이해해.라고 사진에 대고 이야기해 본다.
갑자기 개구리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우리 셋 다 개구리가 어디론가 튈까 몸을 움츠렸다. 도망가지마아아아 아 더 보고 싶단 말이야아아아아를 눈빛으로 쏘며 갑자기 분위기는 얼음땡 놀이가 되었다. 술래는 개구리. 나는 얼음이 되어 마젠타색과 연둣빛에 가까운 개구리의 조합에 홀리해져 자꾸만 빠져들었다.
계속 개구리만 볼 수 없어 아이와 아쉬운 마음을 하고 개구리를 돌아섰다. 그렇게 돌아선 나의 시선에 호랑나비가 날아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한 호랑나비는 백일홍 여기저기 마음에 드는 꽃을 찾아 간택 중이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백일홍을 발견했는지 자신의 몸을 맡겼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 얼룩무늬가 호랑이 등에 난 무늬를 닮아서 호랑나비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호랑나비는 호랭이 기운을 받아 내가 사진을 찍든지, 말든지 자신의 취향껏 꿀 삼매경에 빠졌다.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옆, 뒤, 앞 꼼꼼하게 그 찰나를 기록해 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나비를 만지면 어떤 질감일까. 러그 같은 질감일까. 곧 바스라 질 것 같은 가을 낙엽의 질감일까. 포카칩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뭐가 어찌 되었든 곱다 곱아.
이 사진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나를 못 마땅하게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 나는 어쩌면 이 자연들에게 불청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듯 든다. 하지만 어쩌리 이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고, 태도인 것을. 호랑나비를 뒤로 하고 또 걷는다.
나비와 개구리의 질감이 자꾸만 떠 오른다. 종이 다르다는 것은 삶의 방식도, 질감도 다르다는 것이겠지. 그러다 코스모스 밭을 만난다.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코스모스의 곁에 커다란 대포가 꽃 위를 샅샅이 훑는다. 귀를 쫑긋쫑긋 가져다 댄다. 변태처럼 다른 가족의 말을 훔쳐 들었다.
"아빠 여기 개구리가 있어!"
오호라! 개구리로구나!
어디 어디?
그 가족이 떠나고 우리 가족이 그 개구리를 찾아 드드드 들러붙었다. 개구리의 수난시대라고 해야 하나. 노안이 왔나. 개구리를 찾지 못하는 나에게 그가 말한다. 12시 방향. 아! 찾았다.
완전히 다른 생김새의 청개구리 한 마리가 코스모스의 가지에 보호색을 하고 붙어 있다. 아무래도 새벽에 비가 왔고, 구름에 햇빛이 가려진 탓이겠지. 우리가 개구리를 구경하고 있다 생각하겠지만, 개구리는 무심하게 우리 모두를 구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차영차.
개구리가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아까 그 개구리도 이렇게 꽃의 목을 붙들고 영차영차 조금씩 올라와 백일홍 꽃 향을 맡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개구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목적지는 코스모스 꽃 위일까. 그의 재촉에 나는 개구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고마워 개구리야."
아이도 나의 인사에 자신도 덩달아 인사를 건넨다.
"잘 있어 개구리야."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개구리는 그 자리를 떠났다. 삶은 이렇게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하나씩 던져준다. 살아 있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많은 찰나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 다음 예고편은
안동 600장 중에 또 다른 찰나.
꼭꼭 숨어라!
날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