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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달의 찰나

사사로운 이야기

by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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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리운 이에 관한.

절망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에서

전부 다 다루지 못한.

마음.


보너스 번외 같은 느낌?







달이라는 것이 어느 날엔 보이지 않고, 어느 날엔 보인다. 어느 날엔 품에 다 안을 수 없을 만큼 크고, 어느 날엔 품에 다 안을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졌다. 달이 주는 그 묘함이란. 나는 달이 좋았다. 그래서 어떠한 곳이든 습관처럼 그곳의 하늘을 올려다 보고 달을 찾았다. 그날도 늘 그렇듯. 서울의 하늘을 훑으며 달을 찾았다. 하얗고 커다란 달을 발견하고 너무 좋아 발을 동동거렸다.


그리고는 프레임이란,

이름을 가진 그물망을 펼친다.

나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by. Jin




걸려드는 것마다 월척?!


사각 프레임 한가득 찬 차가운 낮 달을 보니 만족스러운 포만감이 밀려들었다. 햇빛이 나의 눈에 속절없이 밀려드는 것처럼. 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속도 없이 밀려들었다. 노란빛을 내는 밤의 달도 좋아하지만, 푸른 하늘의 빛을 고스란히 흡수한 것처럼 느껴지는 차갑고 하얗게 빛나는 낮의 달을 10g 정도 더 좋아했다.




by. Jin




입에 가만히 넣고 굴려본다.

파란 하늘에 뜬 하얀 낮 달.

파란 하늘에 뜬 시리도록 하얀 너.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우두커니 앉은 저 잡상(雜像)이 달과 함께 내 시선이 닿았다. 저 잡상들도 나와 같이 빛나는 낮 달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잡상은 저 달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달을 떠나보냈을까. 돌고 도는 달이라지만, 매일 같은 달 일 수 없지 않은가.




by. Jin




우두커니 앉은 잡상과 달이 사선으로 만난다. 이들은 어쩌면 우리가 들을 수 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야, 너 오랜만이다. 오늘 초과 근무야?" "야, 너도?" 이런 상상을 했다. 매일 만날 수 없는 사이에 인사가 빠지면 섭섭하니까. 실은 너무 보고 싶었어.라는 말이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눈을 살포시 접으며 웃었다.

나의 마음을 감추기 위해.




by. Jin




우리는 저 달이 밤에도, 낮에도 어떻게 빛을 내는지 알고 있다. 햇빛의 빛을 반사시켜 내는 것뿐이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히 밤과 낮 달이 가지는 색에 대해 정의 내리고 싶지 않았다. 시리도록 하얀 낮 달과 그 달을 좋아하는 나. 우리 사이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관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너와 나 사이에

너무 쓰고 싶었던 단어.




by. Jin





하지만,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쓸 수 없는 단어.




by. Jin




몇 명이나 하늘을 올려다볼까 싶지만, 저 낮의 달을 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필요했다. 달과 해가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었고, 너무 멀어도 안 되었다. 낮게 떠서도, 중간에 떠서도 안 되었다. 높이, 아주 높이 떠야 그제야 낮의 달을 볼 수 있다. 달과 나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본래의 시리도록 하얀 회백빛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에 나는 조금 슬펐졌다.




by. Jin




아무리 바라봐도, 간절히 원해봐도.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는 그 거리가. 다 식어버렸다 생각했던 마음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숨겨지지 않는 내 마음이, ‘지금이 기회인가?’ 하며 한달음에 달려 나오려 해. ‘아니야. 진정해.’라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입술 안 쪽을 지그시 깨물었다.




IMG_1434.JPG by. Jin




입안을 지그시 깨물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시리도록 하얀 낮 달은

“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는 여기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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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생각했다. 달이 너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달은 나 일까? 아니면 둘 다 달인 걸까. 평생 달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너의 마음을. 너는 나의 마음을 평생 알 수 없겠지. 너와 나는 서로의 앞모습만 볼 수 있겠지. 지구에서 달이 매년 3.8cm 멀어지고 있다는데, 너는 왜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지?


아니면, 내가 너를 놓지 못하는 것일까.




IMG_1496.JPG by. Jin




멀어지는 달을 향해 한껏 줌을 들이밀어 보는 것은, 어쩌면 나의 마지막 미련인 걸까. 내 사심을 담아 괜히 낮 달의 빈틈을 채워본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닿을수록, 달의 모양은 조금씩 어그러졌다. 그래, 이게 너와 나 사이의 결말이었겠지 싶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슬픔이 저 푸른 하늘만큼이나 짙어졌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어딘가 사이에 달을 걸쳐놓고 이 마음을 찰나로 남겨두는 일뿐이다.


언젠가 이 마음이
나의 거름이 되는 날이 오겠지.




IMG_1534.JPG




떠나보낸 달이

다시 올 때까지,

잡상(雜像)은

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하염없이 달을

기다리겠지.


그리고 다시
자신의 앞에

달이

제 모습을

드러났을 때,

잡상은 속도 없이

달을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네겠지.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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